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사망했지만 성추행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규명돼야 하는 걸까. 박 전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그를 둘러싼 성추행 의혹 사건은 '공소권 없음' 종결될 것으로 보나 피해자는 서울시와 박 전 시장 지지자들로부터 심각한 2차 가해를 겪고 있다. 여성계에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289개 단체가 연대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공동행동(공동행동)이 17일 실체진실과 책임촉구를 위한 온라인 토론회를 열고 "성추행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사라지고 위력만 남았다"며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2차 가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규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김재련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은 채 사망하고 그 지지자들은 피해 사실을 부인하는 취지로 '기획 미투'를 운운하는 상황"이라며 "사실 규명이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포렌식을 통해 규명됐으면 한다"고 했다.
피해자 측은 지난 10월 박 전 시장의 지지자를 2차 가해(성폭력특례법상 신원누설금지 혐의)로 고소했다. 피해자의 실명과 소속이 박 전 시장 지지자 모임의 네이버 밴드와 블로그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네이버 밴드의 경우 회원이 1300여 명으로 피해자의 신상은 메인화면에 해시태그와 함께 공개돼 회원이 아니어도 누구든지 볼 수 있었다. 피해자 측은 실명이 게재된 걸 8월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이는 2차 가해라는 추상적인 말이 아니라 성폭력특례법을 위반한 분명한 범죄행위"라며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력 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실명과 직장을 공개하는 건 그 자체로 피해자에게 협박"이라면서 "이런 행위를 경미한 벌금으로 끝낸다면 앞으로 어떤 위력 성폭력 피해자도 용기 내 법의 도움을 호소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2차 가해가 계속되는 이유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피해자 측은 지난 7월8일 박 전 시장을 업무상 위력 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으나 다음날인 7월9일 박 전 시장이 사망하면서 수사가 중단됐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형사 고소한다는 건 두 가지 법적 의미가 있다. 범죄 사실을 규명하는 것과 가해자를 기소해 형사 처벌하는 것"이라며 "이 사건의 경우 박 시장의 사망으로 형사처벌은 불가능해졌지만 범죄 사실 규명은 가능하다"고 짚었다.
그는 "통신매체이용음란의 경우 박 전 시장의 사망과 상관없이 휴대폰 포렌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며 "박 전 시장의 사망이 사실을 규명하는 데 장벽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에서 사실관계를 꼭 발표해 2차가해가 더 양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이 회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기에 피해자를 피해자로 부르지 않고 '피해호소여성', '고소인' 등으로 부른 것, 박 전 시장의 장례식이 서울특별시장으로 치러진 것, 또 박 전 시장의 장례식장에서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사건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후레자식"이라고 한 것 등을 언급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사건에 대해 묻지 말라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라며 "그런 의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위력은 실체가 강력하게 다가온다"며 "박 전 시장은 사망했지만 박 전 시장의 측근과 지지자로 이뤄진 네트워크가 적극적으로, 또 조직적으로 피해자를 부정하고 피해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의 신상을 유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건 초기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로부터 똑같은 내용의 항의전화를 수없이 받았다"며 "조직적으로 전달된 내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특히 지난 2일과 3일에 오성규·김주명 두 전 서울시장 비서실장이 입장문을 내고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피해자 절대주의'를 언급한 점, 민주당이 당헌 개정을 강행하며 의미 불분명한 사과를 한 점도 "위력"이라고 평가했다.
송 사무처장은 "이 사건은 처음부터 피소 사실이 유출된 데다가 증거물인 업무용 휴대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도 기각되면서 증거에 접근하는 것도 원천적으로 차단됐다"면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상황에 진실은 은폐되고 위력만 남았다.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호소할 수도 없고 조직적인 2차 가해의 위협에 놓여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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