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관사에서 고의로 사람의 죄를 증감하여 죄가 있는 사람을 무죄로 하거나 죄가 없는 사람을 유죄로 한 경우는 그 증감한 죄로 논죄한다. 만약 경죄를 가중하여 무겁게 하거나 중죄를 감경하여 가볍게 하면 증감분으로 죄를 논하되, 사죄(死罪, 죽음)에 이르게 한 경우는 똑같이 사죄에 처한다. 만약 죄를 처단하는데 잘못하여 실수로 가중하면 각각 3등을 감하고, 잘못하여 실수로 경감하면 각각 5등을 감한다."(정긍식의 논문 '대명률(大明律) 의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 원칙(原則)' 참조)
상기 글은 중국 명나라의 형법인 대명률(大明律)의 해석서로서, 세종은 이 책을 참고하여 조선의 현실에 부합하도록 대명률강해(大明律講解)라는 법전을 만들었던 바, 조선에서는 법의 적용에 있어서 많은 부분을 이 책의 판례에 따랐다고 한다. 한편 위에 기술된 글을 조금 더 쉽게 부연하여 설명하면, '만일 관리가 죄가 있는 사람을 고의로 무죄라고 평결하거나, 혹은 죄가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일부러 유죄로 판시한 경우, 그 관리는 그가 조작한 죄의 증감만큼 처벌받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만약 억울하게 처벌받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되면 그 관리도 똑같이 죽음에 처하게 한다. 만약 벌을 줌에 있어서 실수로 죄인의 벌을 가중처벌하거나, 거꾸로 죄인의 벌을 경감시키는 실수를 범하면 그 정도에 준하여 법을 위반한 관리를 처벌한다.' 즉, 조선시대에는 백성의 죄를 다루는 자(者)가 잘못된 수사를 범하거나 고의로 처벌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히 관리(官吏)를 감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사람이 나오면 그 책임을 철저히 관리에게 물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올해 초 한국법제연구원이 발표한 '2019년 국민법의식 조사연구' 결과에 따르면, 3441명의 응답자 중 무려 58.6%가 사법부 판결을 "불신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나, 국민 10명 가운데 대략 6명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검찰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2020년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 받은 '각 형사사법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추이'라는 자료에 의하면, 검찰은 2012년(47.2%)을 제외하고는 국민 신뢰도에 있어서 줄곧 최하위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20년 신뢰도도 31.0%로 지난해인 2019년의 36.3%보다 더 하락했다(즉, 국민 10명 중 7명이 검찰을 불신). 반면 경찰은 2020년 49.2%의 신뢰도를 보여 그나마 검찰과 법원 대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는 있으나, 역시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경찰을 믿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치권과 부정하게 결탁하여 사법농단을 저지르고, 이로 인해 전·현직 고위법관들이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는 사법부. 이후 파격이라는 말까지 들으며 취임한 대법원장조차 사법개혁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사법부를 신뢰해달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다. 또한 증거조작과 가혹행위로 '살인범'을 만들고, 수사보고서를 위조한다거나, 없던 증거의 날조를 서슴지 않는 경찰에 대한 기사도 언론을 통해 심심치 않게 마주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예, 화성 연쇄살인사건). 문제는 무고한 사람이 경찰에 의해 누명을 쓰고 형을 살거나 심하면 사망하기도 하지만, 뒤늦게 진범이 잡히거나 재조사를 통해 무고함이 밝혀지더라도 피해자의 삶이 회복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한편 대한민국에서는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여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더라도 검사는 이를 불기소 처분할 수 있는 파워를 갖는다. 즉, 기소를 하고 안 하고는 검사의 판단이고 재량이다. 이게 소위 말하는 '기소 편의주의'다. 이로 인해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는 수많은 사람이 '고위직 검사를 안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이것이 검사를 검찰이 절대 기소하지 않는 원인이기도 하다(검사 불기소율 99%).
반복되고 있는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을 극복하고자 독일은 형법 제339조에서 '법왜곡죄(Rechtsbeugung)'를 명시하고 있다. "법관, 기타 공무원 또는 중재법관이 법률사건을 지휘하거나 재판함에 있어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법률을 왜곡한 경우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형에 처한다"가 바로 그 규정이다. 이를 통해 고의로 조작된 수사, 고의로 조작된 기소, 고의로 조작된 판결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고자 노력한다. 독일에서는 거의 매년 10건 안팎의 법왜곡죄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고,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는다고 한다. 사실 독일의 사례를 언급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다. 조선시대 우리 조상들이 현명하게 도입했던 ‘법왜곡죄’를 오늘날 우리도 다시 채택할 필요가 있다. 고의에 의한, 또는 과실에 의해 억울한 사람이 발생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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