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금희의 2018년 작 <경애의 마음>(창비 펴냄)을 거칠게 요약하면, '과거의 상처를 공유하는 상사와 부하가 그 상처를 견디며 살아내고, 함께 일하다가, 결국엔 사랑할 수 있게 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이 작품에 대한 많은 리뷰들은 '상처'나 '살아내기', '사랑', 마음 같은 것들에 대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인물들의 '노동'에 더 많은 눈길이 갔고, <경애의 마음>을 '화이트칼라 노동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직에서 아웃사이더가 되는 방식
경애와 상수는 1953년 설립된 후 미싱기를 만들어 판매하는 반도미싱이라는 '보수적인 분위기'의 회사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회사와 동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실패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경애는 노조의 파업 과정에 적극 참여하던 중 회사와 노조 양쪽의 비난을 받게 된 인물인데, 좌천성 인사로 홍보부에서 총무과로, 총무과에서 다시 영업부로 전보되어 팀장인 상수와 함께 일하게 된다. 상수 역시 경애만큼이나 회사에서 아웃사이더로 취급되는 자로서,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아버지의 '빽'으로 입사했다는 오명 아래 이렇다 할 실적이 없는 무능한 영업사원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상수의 경우 그의 무능함은 실적의 문제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일하는 방식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정상적'인 영업사원의 방식-여자가 있는 술집에 가기, 물품계약서를 '가라'로 작성하는 융통성의 발휘, 중간관리자들에게 뒷돈 챙겨주기,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기-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일하는 '비정상'이 그를 회사 바깥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이러한 배제는 그와 경애에 대한 베트남 전보 발령으로까지 이어진다.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묘사되는 세 명의 영업팀(기술자 '조선생'이 합류한다)이 베트남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까. 영화와 달리, 상수 팀의 일관된 영업 방식은 같은 회사의 김부장에게 중요한 거래처를 빼앗기는 등 '실패'를 거듭한다.
작가가 묻는 노동의 윤리
마치 실패가 예정된 것처럼 보이는 이 방식이란 무엇인가. 상수에게 일하는 방식이란, '묵묵히 맡겨진 주된 일에 임하는 주임(主任)의 의무를 다하는 자세'를, 계산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믿으며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 태도는 김부장들이 적당한 부패와 거래로 회사의 인정을 받는 방식, '잿밥이랑 줄서기'를 내세우는 정치적인 방식의 정반대에 위치한다. 그래서, 상수는 베트남 오지 거래처를 직접 찾아가고 그들의 어려움을 마음으로 해결해주는 방식을 견지해내고, 결국 실패하는 것이다.
상수와 경애가 끝내 지키려 하는 노동의 태도는 '상품은 팔되 인격은 팔지 않는다'는 선언과 맞닿아 있다. 임금에 대한 대가로 성실하게 노동을 제공하지만 회사가 실제로 요구하는 실적과 질서에는 무감하게 반응하는 어떤 태도가 그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노동 윤리는 회사와의 불화를 내재하고 있다. 회사의 윤리란 상사가 업무 지시를 하면 그 정당성을 떠나 그것을 수행하는 것, 업무와 무관하게 노래를 시키더라도 웃는 얼굴로 노래하고, 사장과 말없이 탁구를 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상수와 경애는 모두 '더딘 속도'의 인물이다. "모든 이가 따라야만 한다고 종용되는 표준적인 일상의 패턴을 기준으로 삼을 때, 더디게 가는 이"로서 "처음부터 목표가 정해져 있는 직선 같은 삶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 대신에 눈앞에 놓인 사건의 덩어리를 상대하고 조각해가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자들이다(양경언, 문학동네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 소설을 새로운 노동소설로 보는 것은, 작가의 '더딘 인물'이 다양한 상수들로 변주되며 일관된 문제의식을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말하자면 상수는 '조중균'(<조중균의 세계>)과 '필용'(<너무 한낮의 연애>)에게 연결되어 있다(어떤 이유에서든 회사와 불화하는 이들은 작가의 소설들을 읽으며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보 명령과 명예훼손의 문제
마지막으로, 작품 속 몇 가지 법률적 문제들을 살펴보자. 먼저, 이야기 전환의 계기가 된 전보 명령의 경우, 회사가 부장을 통해 상수로 하여금 베트남으로의 이동을 명령한 것은 근로 장소의 변경에 해당하는 배치 전환으로써 경영권 행사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인사명령에 대해 근로자는 순응해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사용자는 채용, 배치, 이동, 고과, 승진, 해고 등의 인사권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행사할 수 있지만, 나름의 한계를 갖는다. 이를 규정하는 조항이 바로 근로기준법 제23조다.
우리 법원은 전직의 '정당한 이유'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회사의 업무상 필요성'과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을 비교하여 판단하는데, 상수와 경애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베트남 전보 명령을 받았을 때엔 이들의 생활상 불이익이 회사의 업무상 필요성보다 더 크게 인정될 것이다. 다만, 소설에선 상수가 전보 명령에 동의하는 것으로 그려지므로 부당 전보는 문제되지 않는다.
어색한 법률용어가 사용된 장면은 있다. 상수가 동료 직원의 맞선 현장에 찾아가 소동을 일으키고 주선한 거래처 사장에게 찾아가 욕설을 퍼부은 사건에서 거래처 사장이 상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은, 고소를 하더라도 사실관계 자체로 구성요건에 해당하지(죄가 되지) 않는다. 그의 행위가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단지 맞선 현장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허위)사실의 적시라는 죄의 요건에 맞지 않고, 거래처 사장에게 욕설을 한 것 역시 모욕죄의 여지는 있지만 명예훼손에 해당하진 않기 때문이다(p. 13). 이것을 결정적인 서술의 오류라고 볼 순 없을 것 같고 문학적 허용 범위 안에 있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하지만, 이어지는 상수 어머니의 고소 취하를 위한 노력과 함께 읽으면 법률적인 어색함이 드러난다고 지적할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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