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 수급에 관한 국내 여론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당초 예정보다 많은 4400만 명분의 백신을 이미 확보했다고 8일 밝혔다. 해당 백신은 늦어도 내년 3월부터 도입될 예정이나, 접종 시기는 더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제약사에 부작용 면책 특권을 제시할 방침임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
8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9월 15일 국무회의에서 약 3000만 명분의 백신을 우선 확보하기로 했으나, 백신 개발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고 백신 선구매 경쟁도 치열한 상황"임을 고려해 "당초 계획보다 1400만 명분이 많은 최대 44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코백서 퍼실러티를 통해 1000만 명 분의 백신을 확보했으며, 나머지 3400만 명분(6400만 회 분량)의 백신은 글로벌 제약사와 협의로 선구매하기로 했다.
백신 수급 기업은 아스트라제네카(2000만 회분), 화이자(2000만 회분), 모더나(2000만 회분), 얀센(400만 회분) 등 네 곳이다.
당초 국내 일부 언론들은 아스트라제네카와의 계약만 확보한 것 아니냐며 한국 정부의 백신 수급 능력에 의구심을 품었다. 더 정확한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진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을 확보하지 못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반영됐다.
하지만 이날 정부 발표로 관련 우려는 어느 정도 진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초 여론이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 선구매 계약이 체결 완료된 곳은 아스트라제네카 한 곳이며 나머지 기업의 경우 정부는 기업들과 구속력 있는 구매약관 등을 체결해 물량을 확보한 상태라고 전했다. 계약절차가 완료된 것은 아니라는 듯이다.
박 장관은 "이번 선구매 백신은 늦어도 3월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라며 백신 접종이 원활히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정부 부처 발표에서 '내년'으로 도입 예정 시기가 불분명해 일각에서는 내년 봄이 지나도 수급이 이뤄지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이번 발표에서 박 장관은 '3월'로 도입 시기를 못박았다.
한국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제약사에 면책 특권을 부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련 부서 입장을 정리하면, 현재 각국이 백신 물량 선구매에 나서는 배경에는 '백신 개발 실패 위험성'을 떠안겠다는 자세까지 반영돼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경우처럼 코로나19 감염 상황이 워낙 심각해 부작용까지 떠안고 시급히 백신 물량 확보에 나선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다국적 제약사들은 각국에 부작용에 관한 면책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만일 백신이 잘못돼 접종자가 치명적 피해를 입더라도 그 책임을 제약사에 묻지 말아달라는 뜻이다. 대부분 국가가 이를 수용하고 있다.
이에 관해 관련 부처는 "보통 완전히 완성된 형태의 백신 구매와 (코로나19 백신 구매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 만큼, 이런 부분(면책 특권)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혀 사실상 한국도 면책 조항을 수용할 뜻임을 밝혔다.
검증이 완료된 백신을 수급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니만큼, 제약사에 특권을 주더라도 최대한 백신을 확보하자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장관은 "광범위한 면책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 국제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라며 "다른 우리 의약품과 사실 비교가 안 되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고 있고, 워낙 많은 국가가 우선적으로 백신을 구매하려다 보니 불공정한 계약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장관은 "이런 불공정 약관이나 계약을 저희도 일정 부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비록 그렇게 (불공정하게) 계약이 맺어지더라도 우리 정부가 가진 안전성 검증 테스트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상황에 따라 백신 수급은 다른 나라와 보조를 맞추되, 접종에는 더 신중하자는 게 정부 입장으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내년 1분기부터 백신을 도입하되, 백신 접종 시기는 상황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개별 제약사 백신별로 보면, 국내 여론의 가장 큰 관심은 화이자 백신의 까다로운 유통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느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신뢰도가 얼마나 크냐에 집중된다.
화이자 백신은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백신으로 알려졌으나, 영하 70~80도 초저온 상태에서 유통돼야 한다. 백신 보관과 유통에 이르는 '콜드체인'이 매우 까다롭다. 정부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해당 백신 조건에 맞는 유통 전략을 세우기로 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화이자 백신에 비해 효능과 안전성 면에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이에 관해 남재환 가톨릭대의생명과학과 교수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위험하지 않다"며 "모든 백신에는 부작용이 있는데, 아스트라제네카에서 나온 부작용은 그렇게 심각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견과 별개로 정부는 '한국 정부의 백신 물량 확보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것 아니냐'는 우려에 관해 "임상 시험 과정에서 일부 백신은 사망 사고도 있었던 만큼, 더 유심히 내부 검토를 추가로 진행했다"며 "꼼꼼한 검토 절차를 거쳤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 6월 말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백신 도입 특별전담팀을 구성해 관련 협의를 진행해 왔다. 지난 7월 화이자와 처음 백신 선구매 협의를 시작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10월 한국 정부에 사전심사를 요청한 바 있다.
한편 정부는 '러시아와 중국 백신 도입을 논의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중국, 러시아 눈치를 보느라 신뢰도가 떨어지는 나라의 백신을 도입하려 한다'는 세간의 루머에 관한 답변으로 해석된다.
박 장관은 "러시아 백신(스푸트니크V)의 경우 최근 러시아 국부펀드로부터 정부에 협의 요청이 왔고, 실무 차원에서 한 차례 화상 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면서도 "스푸트니크V 백신의 임상 결과가 아직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고, 신뢰도 검증이 끝나지 않아서 정부는 러시아 백신 구매 검토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기존 임상에서 성공률을 보인 미국과 영국 백신 외에도 3상에 들어간 모든 백신을 대상으로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러시아와 중국 백신을 정부 차원에서 구매 계약하거나 구매에 나선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박 장관은 백신 접종 비용에 관해 "필수인력의 접종비는 무료로 정부가 부담할 예정이며, 자원해서 접종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용은 부처 간 협의를 통해 적정하게 (정부가) 비용을 부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접종 우선 대상자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노인, 필수인력, 집단시설거주자, 만성질환자 일부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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