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아직도 일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단어가 많다. 오늘은 흔히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고쳐야 할 것을 골라 보았다. 사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생활용어 중 명사는 거의 일본어를 사용했던 기억이 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교육을 받은 선친의 영향으로 의복에 관한 것도 거의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했고, 신체에 관한 것도 그냥 의미 없이 사용해 왔다. 그것이 일본어인 줄도 모르고 써 왔던 것이다. 필자의 친구들은 지금도 ‘도시락’이라는 말보다는 ‘벤또’라는 말을 많이 썼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다꾸앙’도 꽤 오래도록 사용했던 것이나 지금은 ‘단무지’라는 말로 바뀌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우와기’, ‘에리’, ‘소대나시’, ‘가다마이’ 등의 말들은 지난 세월 우리말처럼 쓰던 것들이다. 한복만 입다가 ‘가다마이’를 처음 입었으니, 그 주변 용어들은 다 일본어일 수밖에 없었다.
낭만이라는 말도 그렇다. 뭐라 설명하기도 참으로 힘든 단어가 바로 낭만이라는 말이다. 영어도 아닌 것이 불어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딱히 일본어도 아닌 일본화된 우리말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는 필자도 노래방에 가면 자주 부르는 곡이다. 로망을 일본으로 발음할 때 浪漫(낭만)이라고 썼을 뿐인데, 우리나라에 와서 그대로 굳어진 것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로망을 ‘낭만’이라고 쓰고 발음하는 것은 아무 근거도 없고 의미도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로맨틱(romantic)하다.’는 표현도 자주 하는데, 이 또한 콩글리시다. 외국에서는 이런 말을 쓰지 않는다. ‘로맨티스틱(romantistic-로맨티스트(romantist) 같은)’이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을 걸쳐온 이상한 ‘낭만’이라는 글자가 우리말화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사전에는 “1.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 2.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낭만이라는 일본식 표기는 차라리 ‘감상적’이라고 하든지 ‘로망’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렇게 일본을 거쳐 와서 우리말로 안착(?)하기는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낭만적이라는 말은 국적이 없는 단어임이 확실하다.
노견(路肩) - 길섶, 갓길
한때는 노견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방송에서도 ‘노견주차’라는 말을 수시로 들을 수 있었으니 우리말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한자로 ‘길어깨’라는 뜻이니 얼핏 들으면 길가(갓길)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한다. 우리말 중에는 일본에서 유래한 한자어들이 참으로 많다. 노견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가 어려서 많이 쓰던 말 중에는 ‘길섶’이라는 단어가 있다. 길섶은 ‘길의 가장자리. 흔히 풀이 나 있는 곳’을 말한다. 지금이야 도로가 다 포장되어 있으니 길섶이라면 어색하지만 그래도 ‘길가’라는 단어와 함께 정겹게 사용하던 말이 아닌가? 지금 사용하기에는 조금 어색하지만 자꾸 사용하다 보면 정이 들 것이다. 그래서 ‘갓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고속 도로나 자동차 전용 도로 따위에서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폭 밖의 가장자리 길을 ‘갓길’이라고 정의한다. 위급한 차량이 지나가거나 고장 난 차량을 임시로 세워놓기 위한 길이다.(<표준국어대사전> 참조) 참고로 ‘고속 도로’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고속국도’가 맞는 표현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속국도법(고속 국도를 정비하고 자동차 교통망을 원활하게 할 목적으로 제정한 법률)이 생겼다.
아무튼 지금은 노견이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갓길이나 길섶과 같은 정겨운 우리말을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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