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에 가면 108미터 높이의 에펠탑을 볼 수 있다. 이 에펠탑은 19세기 중후반 파리 시장 오스만(Georges-Eugène Haussmann)의 도시 개조 사업으로 만들어진 경관을 복제한 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한 부동산 회사가 파리의 경관을 그대로 모방하여 신도시의 한 구역을 만든 것이다.
서구 도시들의 경관을 그대로 모방한 신도시의 풍경이 관찰되는 중국의 도시들은 한두 곳이 아니다. 텐진에는 이탈리아의 베니스가 있고, 후이저우에는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가 있으며, 선전에는 스위스의 인터라켄과 이탈리아의 포르트피노가 있다. 상하이 근교에는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 있고, 쑤저우에는 런던이 있으며, 창더에는 독일의 하노버가 있다. 청두에는 영국의 도체스터가 있고, 둥관에는 독일의 하이델베르크가 있다.
중국에서 '서구'를 만나고 싶은 이들을 관광객과 거주민으로 불러들이겠다는 계산에 지방 정부들은 계속해서 서구 도시들을 복제했다. 여러 차례의 경고 신호에도 그칠 기미가 안보이자 올해 5월 중국 정부는 경관의 복제를 금지시켰다.
2000년대 초반과 중반 서구 사회는 중국 도시 경관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올림픽을 앞둔 베이징에는 렘 쿨하스(Rem Koolhaas)의 CCTV사옥이나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소호(SOHO) 등 세계적 스타 건축가들의 작품이 하나 둘 들어섰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도시 경관과 베이징올림픽을 보며 이제는 중국이 자신들이 알던 그 중국과는 다른 무엇이 되었는가 하며 자문하기도 했다.
이후에 만들어진 복제 도시들을 보며 많은 서구의 언론들은 '편안함'을 느낀 듯하다. 자신들이 알던 중국의 모습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서구 도시들을 그대로 복제한 중국의 도시들이, '세계의 공장'이 되어 돈은 벌지 몰라도 서구가 지닌 창조성과 세련됨에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하는 '그 중국'을 보여주는 경관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서구의 언론들은 '카피캣(Copycat)', '레플리카(Replica)', '가짜도시(fake city)' 등의 표현과 함께 이들 경관을 가십거리로 소비했다. 하노버의 풍경을 재현하려는 창더에서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엿보던 독일 언론의 기사들은 오히려 예외적이었다. 중국의 황제들이 자신들과 교류하는 주변국의 경관을 복제한 공간을 만들어 왔다는 전통을 고찰하는 일도, 100년 전 유럽인들이 그 시절 새롭게 부상하던 미국의 도시들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역사를 고찰하는 일도 예외적이었다.
한국의 언론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모방의 천국'이자 '짝퉁의 천국'으로 중국을 정의하기에 좋은 소재로 소비하고 만 것이다. 서구와 한국의 언론들은 이들 도시들이 중국을 만나는 공간이라 했다.
어떤 이들에게 이들 도시는 서구를 만나는 공간이고, 또 어떤 이들에게 이들 도시는 중국을 만나는 공간이다. 하지만, 또 다른 시선에서 보자면 이는 동북아시아를 만나는 공간이다. 19세기 서구와의 조우 이후 지금까지도 서구에 대한 동경과 이를 따라잡고 싶어 하는 욕망을 지니고 살아온 동북아시아 말이다.
'탈아입구(脱亜入欧)'를 외치며 노골적으로 서구를 따라가려 했던 지식인부터, 큰 덩치의 서구인들을 때려 눕히는 황비홍을 보며 열광하던 대중에 이르기까지, 동북아시아를 살아가는 이들은 서구인들을 의식하며 20세기를 살아왔다. 서구를 대하는 감정이 단일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서구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 하고 서구를 따라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푸른 눈·슬쩍·뜨끔(青い目・チラリ・チクリ)" 같은 프로그램에 외국인을 출연시켜 일본인들의 행동을 평가했던 일본의 어느 라디오 방송, "외국인의 눈으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겠다"며 어느 호텔 욕실에 들어가 욕조가 작다고 불평하는 <KBS>아나운서의 이야기,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인을 '문명화'시키겠다며 실행했던,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다수의 행동 개조 프로젝트들. 이 모든 역사들이 그 같은 욕망을 보여준다.
복제된 자유의 여신상 뒤로 브루클린 다리의 모조품이 보이고, 멀리 에펠탑을 모방한 도쿄타워가 보이는 1980년대 도쿄의 신도시 오다이바(お台場)의 경관은 어떤가. 온갖 서구어를 조합한 "오투그란데리빙포레", "린스트라우스더레이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같은 이름의 아파트로 가득한 경관들은 어떠하며, 이런 이름을 써야 아파트 값이 오른다는 도시의 삶들은 또 어떤가. 차마 그대로 복제할 수 없어 조합과 재구성을 반복해온 한국과 일본의 도시들에게, 서구의 도시를 복제한 중국의 도시들의 경관은 어쩌면 '억압된 것의 귀환'은 아닌가?
이런 역사를 긍정하자는 것도, 이러한 역사를 청산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20세기 동북아시아의 역사였음을, 동북아시아인들의 일상을 규정하는 힘으로 작용해왔던 사실을 직시하자는 것이다. 서구를 만나겠다며 그곳에 몰려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스개로 여기며 이곳이야 말로 중국을 만나는 곳이라 말하기 보다는, 동북아시아를 만나는 공간으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서구를 따라하려는 동북아시아인 공통의 욕망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이곳을 바라봄으로써 동북아시아인들의 연대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채무에 관한 책임을 함께 지는 행위를 가리키던 민법 개념인 '연대(solidité)'를 사회사상의 영역으로 가져온 것은 19세기 프랑스의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공통성과 동등성에 대한 인식이 연대의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저들을 우리와는 다르다며 타자화하고 차이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는 연대를 어렵게 한다. 우리와 같은 저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문제를 공유하고 있음을 인지할 때,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는 움직임이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항저우의 에펠탑은 20세기의 동북아시아를 더불어 만나고, 새로운 동북아시아를 더불어 상상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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