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하버드대 생물물리학 박사 출신의 뤄린자오(羅林姣)가 광둥(廣東)성 선전(深圳) 난산(南山)구 타오위안(桃源) 가도판사처(街道辦事處, 주민센터)로 이직을 하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런데 '하버드' 박사가 주민센터로 이직하는, 이러한 행보를 보여준 고학력자는 뤄린자오만이 아니다.
중국 국내 일류 대학의 부교수 한 명도 가도판사처로 자리를 옮겼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중국 각 지역의 가도판사처에서 근무하고 있는 칭화(靑華), 베이징대(北京大學)의 석박사 출신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 고학력자들 실업 심각'이라는 측면에서 국내에 보도되기도 했는데, 이것이 과연 고학력자들의 취업난만을 보여주는 문제일까?
고학력자들의 엉뚱한 선택
뤄린자오의 행보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그의 고스펙 때문이다. 무려 하버드 박사에다가 졸업 후에도 하버드에서 포닥 과정을 마쳤고 귀국해서는 남경대학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남경대 물리학과 교수자리를 마다하고 가도판사처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뤄린자오 뿐만이 아니다. 구글 차이나에서 근무하던 장쿤웨이(張昆瑋) 역시 어느날 갑자기 회사를 사퇴하고 고향의 작은 지방대학 교수로 이직을 하였다. 그의 이런 행보 역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수많은 언론기관의 인터뷰 대상이 되었다.
언론과의 인터뷰 내용은 간단했다. 장쿤웨이는, 자신은 베이징에서 미래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베이징 지하철 연선의 아파트들은 이미 수백만, 심지어 수천만 위안으로 올랐고 그 아파트를 30년 할부로 살 경우 그는 해마다 연봉의 거의 전부를 아파트 할부에 쏟아 부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살 수도 있지만 만약 어느날 갑자기 예고 없는 경기 불황이 시작된다면 자신들은 아마 일본 거품 경제 시기의 일본 젊은이들처럼 길바닥에 나앉고 말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속적인 시각에서의 "성공" 기준으로 "성공"을 가늠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떠난다는 것이 곧 도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이 또 하나의 다른 선택일 수도 있다고 담담하게 털어 놓았다.
뤄린자오나 장쿤웨이 같은 경우는 중국 내에서 이른바 '스펙'이 높은 사람들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장쿤웨이는 칭화대학 '야오반(姚班)' 출신이다. 중국의 영재는 칭화로 몰리고 칭화의 수재는 '야오반'으로 모인다는, 최고의 이공계 수재들만으로 구성되는 '야오반'은 칭화대학 컴퓨터과학실험부의 한 특수한 조직이다. 그들은 입학 전형부터 달라서 구성원의 대부분은 중고등학교 과정에 이미 수학 올림피아드, 물리 경진대회, 정보 올림피아드 등에서 1,2등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자격자들이다.
그렇다보니 이런 경력이 없는 오직 순수 성적으로 '야오반'에 들어가는 학생은 극히 소수다. 2018년 '야오반'의 정원은 50명이었는데 일반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은 단 6명뿐이었다. '야오반'의 모든 학생들은 대학과정 중에 해외 연수의 기회를 가지며 졸업 후에는 고액 연봉이 보장되었다. 그런데 장쿤웨이가 글로벌기업인 구글 차이나를 포기하고 지방의 작은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최근에는 또 중학교 교사 지원에 석박사생들이 몰려들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선전(深圳)의 한 공립중학교에서 2020년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교사 채용 공고를 올린 적이 있는데 지원자만 3만 5000여 명이 몰린 가운데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한 491명 중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자가 423명이었고 그중에 박사가 23명이었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졸업생이 각각 6명과 5명을 차지했다.
선전은 대도시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도시가 아닌 일반 중고등학교에서도 베이징대, 칭화대 출신의 교사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럼 베이징대, 칭화대가 아닌 졸업생들은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이것을 과연 그저 엉뚱한 선택이라고만 볼 것인가?
그래도 '삐앤즈(編制)'가 있는 게 좋지!
하버드 박사의 동사무소 취직, 구글 차이나보다도 지방대학을 선택한 아이티 인재, 중학교 교사직에 몰리는 석박사생들, 어찌 보면 중국 고학력자들의 취업난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이들의 선택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선택한 자리는 모두 정년이 보장되는 자리라는 점이다.
동사무소 직원은 공무원이다. 뤄린자오는 비록 남경대학 물리학과에 재직하고 있으면서 적지 않은 논문도 함께 산출했지만 연구자의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자신만의 연구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 채 진을 빼고 있는 중이었다. 장쿤웨이는 글로벌기업에 몸담고 있으면서 적지 않은 연봉을 받고 있었지만 늘 안정감을 느끼지 못했다. 수많은 석박사생들이 중학교 교사직에 목을 매었던 것 또한 마찬가지 원리다. 교사직은 안정적일 뿐만 아니라 연봉 또한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재의 상황은 흥미롭게도 개혁개방 초기였던 1990년대와 완전히 반대된다.
1990년대의 화두는 단연 '시아하이(下海)'이었다. '시아하이'의 원래 의미는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1990년대의 '시아하이'는 개인사업 열풍을 지칭하는 또 다른 표현이었다. 수많은 교사들이 교단을 떠났고 더 많은 공직자들이 개인의 사업 개척을 위해 직장을 떠났다. 농촌의 젊은이들까지도 너도나도 도시로 향했다. 시장경제가 몰고 온 진풍경이었고 이는 중국사회주의 특색의 시장경제에 전에 없는 활력을 불어넣었다. 누군가는 크게 성공하였고 누군가는 다시 빈털터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이 시기 어른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너 나중에 동사무소 가서 일하고 싶어?"라고 했다. 동사무소 직원,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불과 30년의 세월이 채 흐르기도 전에 완전히 역전됐다. 동사무소 직원이 이제는 하버드 박사가 마다하지 않는 자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젊은이들은 '카오삐앤(考編)'에 목숨을 건다. 즉 '삐앤즈 시험을 본다'라는 뜻인데 말하자면 정년이 보장되는 기관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시험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공무원 시험이나 임용고시에 비견되는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지금의 어른들은 다시 말한다. "그래도 삐앤즈가 있는 게 좋지!"
삐앤즈(編制)가 뭐길래?
선택에는 항상 이유가 있는 것이고 비슷비슷한 선택은 하나의 경향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젊은이들은 왜 다시 공공기관 취업에 목숨을 걸고 있나? 그 첫 번째 이유는 아마도 공무원을 비롯한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처우 개선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선전의 가도판사처를 비롯하여 항저우(杭州)의 일부 가도판사처에서 제시하는 연봉은 교수에 뒤지지 않는 고액이었고 연봉 외에 함께 누릴 수 있는 각종 혜택도 나쁘지 않았다.
반면에 교수직의 경우 예전에는 학교에 취직이 되면 그대로 정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업적 평가를 받아야 하고 국가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등 각종 다양한 조건이 추가되었으며 그 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승진도 어렵고 정년도 보장받을 수 없다. 때문에 교수는 더 이상 헐한 자리가 아니게 된 것이다.
교사에 대한 대우는 지난 20여 년간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개선되어 왔다. 이와 같은 경제적인 원인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핵심은 '삐앤즈'의 유무에 있었다.
두 번째로는 가치관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90년대 사람들은 개인사업자를 선호했다. 시장경제의 논리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능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경제적인 능력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을 원한다. 그것이 바로 공무원인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공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제도적인 측면이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를 부추기는 면이 없지 않았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고학력자들의 관리직 진출은 자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생물물리학박사가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고, 박사학위자가 중학교 교사직에 지원할 정도로 중국에 그렇게 인재가 넘쳐난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 불편한 현실이 오늘날 중국의 모습이며, 이는 우리로 하여금 과연 '인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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