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수계 입장에서 연방 하원의원 1명이 있을 때 정치적 영향력은 100점 만점에서 90점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의원 1명이 435명(하원의원 전체 숫자)의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입법 과정에서 의원들 사이의 상호 협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1명의 존재는 우리가 원하는 의제를 입법화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2020년 선거에서는 한국계 하원의원이 3-4명 탄생할 전망입니다. 이건 지각 변동 수준의 변화입니다."
2020년 11월 3일 선거는 미국 유권자들이 새 대통령을 뽑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연방 하원의원(435명), 일부 상원의원(100석 중 3분의 1) 등도 선출한다. 이번 선거에 연방 하원의원 후보로 5명의 한국계 미국인이 나왔다. 앤디 김(뉴저지주 3지구·민주), 메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주 10지구·민주), 영 김(캘리포니아주 39지구·공화), 데이빗 김(캘리포니아주 34지구·민주), 미셸 박 스틸(캘리포니아주 48지구·공화). 이들 중 민주당의 앤디 김, 마릴린 스트릭랜드의 당선이 유력하며, 공화당의 미셀 스틸 박, 영 김 등도 당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역 의원인 앤디 김은 당선될 경우 재선에 성공하게 되며, 스트릭랜드는 타코마 시장 출신으로 당선되면 첫 한국계 여성 연방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된다. 공화당의 미셀 스틸 박, 영김도 마찬가지로 당선될 경우 첫 한국계 여성 연방의원이라는 기록을 공유하게 된다. 데이빗 김은 기본소득 도입, 대학 학자금 채무 탕감 등 진보적인 공약을 통해 젊은 유권자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북핵 문제 해결에 한인들의 정치력 중요해져"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29일 <프레시안>과 전화 인터뷰에서 이처럼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한국계 정치인들의 존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김 대표는 또 정치인들 뿐 아니라 이들을 지지하는 한인 유권자들과 시민운동의 영향력도 과거에 비해 커졌다고 지적했다.
"인구 센서스 조사에서 2018년 기준으로 한인이 210만 명 수준입니다. 센서스를 통해 조사된 인구가 이 정도니까 실제로는 30% 정도 더 많을 것입니다. 이들 중 투표권자가 110-120만 명 정도 됩니다. 미국은 모든 투표권자가 투표를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본인이 유권자로 등록을 해야 하니까,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 등록 유권자수는 35-40만 명 정도 됩니다. 이들 유권자가 결집된 힘을 보이면 정치적인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한인 정치인과 유권자의 존재는 한반도 평화정착 문제에 있어서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미국이 과거에 비해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접근하면 점점 불리해진다. 과거 미국이 관용적인 태도로, 또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한국의 입장을 많이 들어줬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려졌고, 그래서 한인들의 정치력이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 마지막 TV토론(10월 22일)에서도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에 대한 질문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공화당)과 조 바이든 전 부통령(민주당)에게 주어졌다. 최근 CNN,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언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하든,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집권을 하게 되든 북한 비핵화 문제가 매우 '골치 아픈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는 세계평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됐고, 이 문제를 협상하는 상대는 미국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 이슈는 현재 완전 동네북 신세가 됐습니다. 트럼프 정부에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서 정상회담을 진행한 것은 분명 의미가 있는데, 트럼프 반대 입장에서는 그 의미를 폄하합니다. 트럼프 쪽에서도 지난 해 이후로 교착 상태에 있는 북미관계를 정치적으로만 활용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이런 점에서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차기 정부에서 이 이슈를 정부간 외교로 접근하는 것과 더불어 하원의원들을 통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들 의원을 움직이는 일차적인 힘은 한인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인 사회가 미국 사회의 인종, 문화, 역사 등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지식을 가진 지혜로운 리더십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현재 정치적으로 보면 한인들은 세대별로 입장과 견해가 크게 차이가 납니다. 60대 이상은 종교적인 이유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지만, 젊은 세대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소수계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이들이 다수입니다. 데이빗 김 후보가 이런 흐름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최근 들어 한인 뿐 아니라 아시안들의 정치적 목소리가 크게 성장하고 있다면서 "2020년대는 아시안이 정치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유권자들을 인종별로 구분해보면 흑인들은 숫자도 많고, 투표율도 높고, 투표 쏠림 현상도 강합니다. 반면 아시안은 숫자도 많지 않고, 투표율도 낮고 쏠림 현상도 없었습니다. 나라 별로 갈라져 있었어요. 하지만 2010년 중반 이후부터 소수계 정체성과 지향이 분명한 이민 2세, 3세로 세대가 교체 되면서 정치력이 향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불붙었던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등을 통해서도 미국 사회에서 인종 문제에 대한 집단적 학습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다수의 젊은 한인들이 BLM 운동에 적극적으로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김 대표는 하원의원 중 아시안계인 주디 추, 그레이스 맹, 앤디 김 등이 모두 민주당의 진보(progressive) 그룹에 속해 있다면서 소수계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트럼프 정부 4년이 지난 뒤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 정치권 안에서 다양성에 대한 입장 차이가 더욱 선명해지고 명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인종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트럼프 정부는 정치철학적으로는 반(反) 연방제와 작은 정부, 인종적으로는 백인, 종교적으로는 배타적 기독교, 거주지로는 시골 지역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선이 매우 명확하고 세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4년전 이들을 세력화해서 트럼프가 대선에서 이겼고, 2020년 재선 전략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미국 시민사회의 흐름은 인종주의적 갈등을 조장하고, 미국의 정체성이자 경쟁력인 다양성을 부정하는 트럼프 정부를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한인 사회만 거꾸로 갈 수는 없습니다. 일부 한인들은 종교적인 정체성에 근거해 트럼프를 지지합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실제로 미시간 등 일부 지역에서는 백인 민병대들이 자동소총으로 무장을 하고 다니면서 불안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4년 전엔 얼굴도 못 내밀었던 네오나치 등 극우집단들이 버젓이 거리에 나서고 있습니다. 한인들은 대도시에 많이 거주해 피부로 못 느낄 수 있지만 백인 극우 무장세력에 대해 실제로 연방수사국(FBI)에서 국내 테러 위협으로 지적하며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정부가 4년 더 집권하면 이런 병리적 현상이 심화될 것이고, 소수계인 한인들도 피해를 보는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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