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공유경제의 시대라고 한다. '물건을 소유하는 개념이 아닌 서로 빌려 쓰는 경제활동'이라는 의미다. 그 의미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어찌됐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플랫폼이다. 공유경제를 플랫폼 경제라고 일컫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플랫폼은 사람과 집단 간 내지는 집단과 집단 간 소통하는 틀이다. 일종의 디지털 인프라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플랫폼은 스스로 시장을 만들지는 못 한다. 다양한 집단 내지 사람을 연결해주는 인프라만 제공할 뿐이다. 배달앱을 예로 들면 이 플랫폼은 자영업자와 소비자, 그리고 배달원을 연결하는 역할만을 한다. 문제는 그렇게 연결하는 역할만으로 자체적인 시장이 형성된다는 점이다. 배달앱에서는 이를 시장이라 부르지 않고 '공동체'라고 한다.
이런 '공동체'에서 일하는 이들을 '긱(gig)' 노동자라고 한다. 어딘가에 속해있지 않고, 필요할 때만 일하는 노동자를 말한다. 배민라이더스, 쿠팡이츠 등에서 배달 일을 하는 노동자가 여기에 속한다.
이런 노동형태는 전통적인 노동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노동공간과 개인공간의 경계, 노동과 휴식의 경계, 고용주와 노동자의 경계…. 이렇게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전통적으로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이나 법적 의무도 마찬가지로 모호해지고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9월 한 달 동안 배민커넥트와 쿠팡이츠를 통해 배달 일을 직접 해보았다. 자동차, 자전거, 도보를 수단으로 다양한 날과 시간대(주말, 평일, 저녁시간, 주문이 밀리는 시간 등)에 배달 일을 해보았다. 여러 조건과 시간대를 바꿔가며 한 이유는 배달앱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를 통해 <프레시안>은 공유경제를 표방하는 플랫폼이 배달 노동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문제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배달 '혁신'의 민낯 上] ① 벽 뚫고 철로 가로질러 배달하라?...배달앱 지도엔 좌회전도 우회전도 없다
벨소리와 함께 스마트폰 화면 하단에 노란색 글씨가 떴다. '밀어서 배달 수락'. 명지대 앞에서 커피와 츄러스를 픽업(pick up)한 뒤, 인근 빌라로 배달을 마친 직후였다. 가는 길이 고지대라 자전거 페달을 굴릴 때마다 허벅지가 터질 듯 했다. 30도를 육박하는 날씨였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렇게 힘겹게 배달을 끝내자 곧바로 다음 '콜(call)'이 떴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2시간 넘게 1분도 쉬지 못하고 배달을 이어왔다. 물 한 모금은 고사하고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요령이 없으니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어디 잠시라도 쪼그려 앉아 땀이라도 식히고 싶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무의식중에 기자의 손가락은 '배달 수락'을 향하고 있었다. 화면 왼쪽 상단의 '거절' 버튼은 언감생심. 콜을 거부할 경우, '다음 콜 배정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거절' 버튼을 애써 외면하게 했다. 취재로 배달을 하는데, 본업은 뒷전이고 배달에 오롯이 집중하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잡은 콜은 소위 '똥콜'이었다. 명지대 앞에서 햄버거 셋트를 받은 뒤, 백련산 인근 빌라까지 배달해야 했다. 2km가 넘는 거리였다. 게다가 끝이 안 보이는 오르막길이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깜깜이' 배달콜, '똥콜' 걸리면 육두문자 나와
화제작 <부부의 세계> 출연 배우인 한소희 씨가 이 문구 옆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쿠팡이츠의 배달파트너(배달원) 광고다. 쿠팡이츠는 유통계 최강자 쿠팡이 배달앱에 진출하면서 만든 서비스다. 다른 배달앱과는 다르게, 한 번에 하나의 배달만 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그간 묶음배달로 늦게 음식을 받은 고객 입장에서는 한 집씩만 배달한다는 쿠팡이츠의 서비스 방식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기다리는 배달시간이 그만큼 단축되기 때문이다.
반면, 배달원 입장에서는 문제가 생긴다. 배달할 때, 사람을 가장 지치게 하는 건 소위 '똥콜'이다. 기자가 배달했던 지역은 명지대 인근으로 각종 음식점과 커피가게가 즐비했다. 서대문구 내 '주문 집중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 음식을 픽업한 뒤, 인근 주택가로 배달하는 식이다.
문제는 거리다. 음식을 배달해야 하는 곳이 명지대 인근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마음이 착잡해진다. 어차피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배달 초기였다. 명지대에서 홍제동 쪽으로 음식을 배달한 뒤, 그 근처에서 다음 콜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콜은 오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배달앱 AI 알고리즘으로는 음식점이 즐비한 명지대 근처에서 멀리 떨어진 배달원에게 줄 콜은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길바닥에서 스마트폰에 콜이 뜨는지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이후부터는 배달을 한 뒤에는 다시 명지대 인근으로 다시 돌아와 콜을 기다렸다. 배달 횟수가 늘어나는 건 당연했다. 반면, 이러한 AI의 알고리즘을 알게 되니, 먼 거리 배달 콜에 불만이 생기게 됐다. 명지대 인근에서 멀어지면 멀수록, 그 거리만큼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콜을 받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웬만하면 먼거리 콜, 소위 '똥콜'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선택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콜이 뜰 때, 기자가 할 수 있는 건, 배달 수락 버튼을 누를지 말지, 양자 택일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배달앱은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았다. 배정된 콜이 어떤 음식점인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음식을 주문한 고객은 어디 있는지 등 배달 관련 정보는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 콜 '수락' 뒤에야 가게 정보와 고객 집주소 등이 공개되는 식이기에 오로지 배달을 할지 말지만 선택할 수 있었다.
결국, 운이 좋으면 '똥콜'을 피하는 거고, 아니면 육두문자를 써가면서 배달할 수밖에 없었다.
'깜깜이' 평가, 어떤 방식으로 평가되는지도 몰라
만약 배달 수락 버튼을 누른 뒤, 배달 가야 하는 곳이 먼 곳이어서, 즉 '똥콜'이어서 거절할 경우, 이후 콜 배정에 상당한 불이익을 받았다.
쿠팡이츠는 배달원 평점을 매겨, 추후 배달배정에 적용한다. 평점 분야도 세분화돼 있다. △ 고객이 평가한 배달 평점, △ 배달요청 수락률, △ 배달 완료율 등으로 구성돼 있다. 콜을 받지 않을 경우, 배달요청 수락률이 떨어지고, 콜을 받은 뒤, 이를 거절하면 배달 완료율이 떨어진다.
문제는 이 평점이 낮으면, 배달배정 확률도 마찬가지로 낮아진다는 점이다. 심각한 경우에는 계약해지까지도 가능하다. 쿠팡이츠와 배달원간 맺은 '배송사업자 이용약관 제8조 배송사업자에 대한 평가'가 근거다.
물론, 당근 정책도 있다. '최근 10일' 동안 쿠팡이츠에서 공지된 피크데이(보통 오전11시~1시, 오후 5시~7시, 폭염시, 우천시, 폭설시 등)에 10건 이상 배달을 완료할 경우, 주문배정 확률이 올라간다.
이렇게 모인 평점은 녹색(최고의 배달 파트너), 노랑색(좀 더 노력해주세요), 빨강색(개선할 여지가 있으며, 업무가 위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등으로 등급을 나눌 때 사용된다.
일반기업으로 치면, 직원들 개개인의 업무태도를 평가한 뒤, 저성과자일 경우 해고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등급과 평가 점수가 어떤 방식과 기준으로 이뤄지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배달이 늦어지거나 배달 수락률이 낮아질수록, 그리고 그것이 배달앱 측에서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면, '해고'된다는 대략적인 상황만 알 뿐이다. 배달 거부를 몇 번 하면 감점 몇 점이고, 그렇게 몇 점이 모이면 계약해지가 되는지 등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배달앱, 현대판 파놉티콘
파놉티콘(Panopticon). '모두(pan-) 본다(optic)'라는 뜻으로 영국 공리주의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감옥이다. 파놉티콘 구조는 원형 가장자리에 수감실을 놓고, 중앙에 감시탑을 두는 것으로 설계돼 있다. 이 감시탑에서는 수감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시스템의 요체는 수감자들은 감시탑의 감시자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언제 어떻게 감시당하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수감자들에게 중앙탑을 내면화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즉, 감시를 받지 않지만, 감시를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는 이야기다.
이는 적은 수의 관리자들이 감옥 전체를 관리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감시의 사각지대도 줄어든다는 이점이 있다. 관리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인 셈이다.
평가가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모르는 배달원 입장에서는 모든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배달수락에서부터, 배달 시간, 손님 응대까지 모든 것을 신경써야 한다. 내 위치가, 내 점수가 어디쯤이지, 그리고 언제 '해고'되는지 알 길이 없으니, 알아서 넙죽 엎드리는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럼에도 배달앱에서는 이렇게 배달원을 모집한다. 아무런 지시 없이 자유롭게 배달 일을 할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실제로 그런가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배달앱이 현대판 파놉티콘이라 느껴지는 건, 기자만의 착각일까. 노동자는 오늘도 파놉티콘에 스스로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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