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이 대중화 되기 이전, 강남역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해당 사건의 여성혐오적인 특징에도 놀랐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남녀의 시각 차이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 더욱 충격이었다. 한쪽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된 피해여성을 추모했지만 다른 한쪽은 천안함에서 희생된 군인들을 추모하는 화환을 고 노무현 대통령 이름으로 보내거나 인형 탈을 쓰고 나와 여성혐오 범죄를 희화화하거나 무화시키려고 했다.
지난 7월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여권 유력 정치인도 있다. 오랫동안 진보한 사회를 위해 앞장섰던 그였기에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죽음 이면에 그의 성추행 피소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도 2016년 현장에 나와 추모 쪽지 보존을 언급했었다. 서로 다른 두 사건이 중첩되면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만큼 여성을 향한 폭력이나 차별은 너무나도 일상화되어 있다. 가해자인 남성들이 그것에 대한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나도 한때 존경했던 그 유력 정치인의 유언에서도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를 불특정 다수, 즉 모든 분에 대한 죄송함은 있었지만 정작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폭력의 진부함>은 모든 계층에서 일상화된 폭력을 가시화시키고 침묵하지 않고 행동할 용기를 주는 책이다. 1부 '복기'는 일상생활에서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폭력이 어떻게 일상화되고 있는지 연도별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과거를 책을 통해 함께 복기하면서 내가 과거에 직간접적으로 겪었던 폭력을 복기할 수 있었고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편의를 위해 침묵했고 때로는 외면했던, 비겁했던 내 자신의 민낯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녀의 사적 역사를 복기하면서 내 자신의 사적 역사도 다시 복기할 수 있었다. 농담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던 일상의 폭력에 놓인 여성들 앞에 나는 얼마나 많이 침묵하거나 모른 척 해왔던가. 또는 내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그 폭력을 함께 저지르던 가해자는 아니었을까.
1부 '복기'를 읽으면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나를 감싸왔다. 남성성을 자랑하던 선배나 동기들을 보며 느꼈던 혐오와 그 상황에서 침묵했던 연약한 내 자신에 대한 분노가 양가감정처럼 다가왔다. 수많은 이라영을 외면하면서 나는 그렇게 남성이란 집단에 남아있었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이유는 기억이 곧 역사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개인의 기억은 복기의 과정을 통해 더는 사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그 복기의 과정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기억도 복기하며 일상의 폭력을 다시 환기하게 된다.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힘은 자신이 지나쳐 버린 또는 잊으려 애썼던 기억을 소환하는 과정 속에 있다.
2부 제목은 '얼굴, 이름, 목소리'다. 너무나도 흔해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모른 척 해왔고 보지 못했던 수많은 순간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은 지워졌고 이름은 사라졌으며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두 사건을 통해 남성권력으로 대표되는 사회가 어떻게 여성의 '얼굴, 이름, 목소리'를 지우고 왜곡하는지 이 책의 한 문장을 통해 명확하게 다가왔다.
강남역 살인사건(여성혐오 범죄)이 여성혐오 범죄인지 아닌지 상당히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 논란의 과정에서 언론이나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남성 권력은 '보편적' 인권을 끌어왔다. 그러면서 가해자의 정신병력을 부각한다. 과거사건을 되짚어보기 위해 인터넷으로 해당 사건을 검색해보니 여성 혐오가 원인이었다고 보는 입장과 여성 혐오가 원인이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후자는 사건 원인을 여성 혐오로 보는 입장에 피해의식과 과잉 반응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이 사건에서 중요하게 부각된 것은 여성에 대한 무차별 폭력이 아니라 남녀공용화장실의 도어록 설치 문제였다. 그렇게 '목소리'는 지워졌다.
고 장자연 사건을 제보했던 윤지오씨도 지워졌던 '얼굴, 이름, 목소리'를 찾기 위해서 용기를 냈다. 하지만 남성권력은 지명수배라는 방식으로 그녀의 이름을 가둬버렸다. 여권 유력 정치인의 성추행을 제보했던 피해자에 대해서도 이 사회는 그녀가 '피해자'인지 '피해호소인'인지 정의 내리는 데 열을 내고 있다. 그렇게 지금도 곳곳에서 집요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얼굴, 이름, 목소리' 지우기는 이루어지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부단한 삭제와 왜곡의 과정에서도 '얼굴, 이름, 목소리'들이 계속해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기는 것이 두려운 남성들의 백래시가 더욱 심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수많은 얼굴들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주 만물이 중력에서 벗어날 수 없듯이 변화라는 중력 속에 우리는 놓여있다. 많은 '얼굴, 이름, 목소리'가 엄청난 중력을 지닌 거대한 블랙홀처럼 진부해져버린 폭력을 삼켜 소멸시켜야 한다. 그런 변화의 과정에서 <폭력의 진부함>이 여성들의 '얼굴, 이름, 목소리'를 찾는데 또 하나의 이정표로 자리 잡기를 희망한다. 지금이야말로 서로에게 침묵하는 목격자가 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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