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요금 2500원을 생각한다.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 택배 하나당 택배회사에 지급하는 택배비가 2500원이다. 택배회사의 물류센터에서 본인이 배달할 택배의 분류를 포함해서, 최종 배달지까지 배달하는 택배노동자는 택배 하나에 700원에서 800원 정도 받는다. 집하가 많은 대형 쇼핑몰이나 백화점은 여기에도 경쟁이 더해져 2200원에서 1800원 1700원까지 택배비가 덤핑되기도 한다.
지난 8일 배달 중 사망한 CJ대한통운 김원종 택배노동자에 이어 쿠팡 경북 물류센터에서도 야간 분류작업 일을 27세의 젊은 노동자가 퇴근 후 새벽 4시에 욕실에 씻으러 간 후 숨졌다. 야간작업만 하고 작업자들에게 포장재를 갖다 주기 위해 하룻밤에 5만 보를 걸어야 했다는 27살 청년 노동자의 돌연사에 대해 쿠팡측은 주 52시간을 준수하며 과로사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 관련 노동자의 사망이 올해 들어 벌써 아홉 번째이다.
하루 16시간을 일하며 8일 배달 중 사망한 CJ대한통운 김원종 택배 노동자는 산재보험에도 들어 있지 않았다. 명목상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로 되어 있던 김원종씨의 경우는 산재보험료를 회사와 노동자가 반반씩 부담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산재보험 적용제외신청을 해 일반적인 노동자면 누구나 다 회사부담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는 산재보험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었다.
김원종씨의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 대필 논란은 논외로 하더라도 CJ대한통운의 택배노동자는 1만8000명이 넘는데 산재보험에 가입한 노동자는 4900명이다. CJ대한통운에서만 약 1만3000명의 노동자가 산재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유령 노동자이고 회사가 부담해야 할 산재보험료 50%를 회사가 착복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근로복지공단이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산재보험 적용 대상 50만 특수 고용노동자의 80% 이상이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 노동자라 한다. 이들이 진정 본인이 원해서 산재보험 적용 제외를 신청했겠는가? 작년 업계 1위와 2위의 인수합병으로 독과점이 강화된 뒤 올해 4월 바로 수수료 인상 논란을 일으켰던 ‘배달의 민족’에 소속되어 오토바이와 스마트폰 하나로 노동과 생계를 이어가는 플랫폼 노동자들 또한 법적 지위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이다.
근로기준법 뿐만 아니라 사회보험 어디에서도 노동자로서의 지위는 없다. 노동법 바깥의 노동자인 셈이다. 가끔씩 시켜먹게 되는 음식이 늦다는 이유로 짜증을 부리고, 신호 대기하는 차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질주하는 배달라이더들에게 우려와 불쾌의 시선을 보낼 뿐, 그 이유인 이들의 노동과 생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올해는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온 몸을 불 살라 버린 전태일 열사의 50주기가 되는 해이다.
50년 반세기가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실상의 노동자들이 기계처럼 혹사당하며 근로 기준법조차 적용 받지 못하고 있다. 개인사업자라는 알량한 법적지위로 사실상 노동자이면서도 산재보험, 고용보험, 근로기준법 바깥에 놓여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다양해지면 법도 거기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등,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우는 노동법 바깥의 노동자들이 법적 미비로 인해 노동법 바깥에 놓여 있는 사회는 인간의 사회가 아닌 동물의 왕국인 정글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 기준법을 적용하던지, 노동법 바깥의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보호를 위해 특별법이라도 제정하는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또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등의 4대 사회보험도 노동자로서의 지위 안으로 들여 놓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계약의 자유’를 신주단지처럼 모실 것이 아니라 복잡한 시대의 변화에 맞게 공정거래법 또한 ‘사람이 먼저’라는 정신으로 고쳐야 한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플랫폼 노동자, 특수 고용노동자들에게 대기업은 우월적 지위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때 법과 제도는 상대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상생이고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
전태일 50주년, 노동법 바깥의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동법의 울타리 안으로 보호받게 하는 것이 전태일 정신을 살리고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꿈꾼다. 택배요금을 올려서라도 택배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개선되는 사회적 합의는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생수배달 같은 택배는 못하도록 하면 어떨까? 스치는 일상 속에서 나 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한번 씩 돌아보는 함께 사는 따뜻한 세상을 꿈꾼다. 1970년 청계시장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나눠주던 전태일정신은 2020년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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