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권자의 62%가 임신 6개월 이전까지 낙태를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 판결이 뒤집어져서 낙태가 불법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이들은 24%에 그쳤다.
또 과반 이상(52%)의 미국 유권자들이 오는 11월 3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별세로 공석이 된 연방대법관 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보수 성향의 판사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지명자를 지지한다는 여론은 44%에 그쳤다. ABC-워싱턴포스트가 공동으로 실시해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하지만 정치 현실은 다수 유권자들의 생각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대통령 선거 22일을 앞둔 12일부터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에서는 배럿 대법관 지명자(이하 직함 생략)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미국 공화당은 오는 15일까지 상원 법사위에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고, 22일 법사위 인준안 표결을 거쳐, 대선 전에 전체회의에 인준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현재 상원은 공화당이 53석을 점하고 있는데, 2명의 의원만 대선 전 표결 반대 입장을 밝힌 상태다. 남은 변수는 공화당 상원의원 2명 이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표결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정도다. 배럿이 상원 인준 과정을 통과하게 되면 대법원 구성은 보수 6 대 진보 3으로 보수 절대 우위로 바뀌게 된다.
지난달 26일 백악관에서 있었던 배럿 대법관 지명식에 참석한 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던 공화당 법사위원인 마이크 리 의원은 이날 '더이상 전염 가능성이 없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았다'는 이유로 마스크도 안 쓰고 청문회에 참석했다.
민주당 "수백만 미국인의 건강보험이 청문회에 달렸다"
민주당은 이번 청문회의 초점을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에 맞추려고 하고 있다. 배럿은 지난 2017년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오바마케어'를 지지하는 판결을 내렸을 때 그가 '보수적 법적 분석의 기초를 배신했다'고 비판하는 글을 썼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은 "수백만 미국인의 건강보험이 이 청문회 달려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의원도 이날 "나는 이 청문회가 이미 21만4000명의 목숨을 빼앗은 치명적인 전염병이 유행하는 미국에서 수백만 명의 의료 서비스를 빼앗겠다는 대법관 후보를 막을 분명한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또 진보의 상징이었던 긴즈버그 전 대법관의 자리를 낙태에 대해 강경한 반대 입장인 배럿 지명자가 채워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해리스는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 지키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싸운 인권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배럿은 노틀담대 법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학교내 ‘프로 라이프’(낙태 반대) 모임의 일원이었으며, 2006년 ‘로 대 웨이드’의 야만적인 유산의 종식을 요구하는 신문 광고와 함께 낙태 반대 서한에 서명한 바 있다. 또 낙태를 제한하려는 텍사스주의 관련 법에 대한 2013년 기고문에서 "법관의 의무는 헌법에 대한 것이며 따라서 명백히 헌법과 충돌하는 선례보다 헌법에 대한 최선의 이해를 강요하는 것이 더 정당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동의한다"며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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