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우리는 미래 에너지 시스템을 전망하면서 '왜 여러 부분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부문 간 연계', 또는 '섹터 커플링'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알아보았다.(☞ 관련 기사 : 그린뉴딜 탈탄소화 핵심은 재생에너지다) 이번 글에서는 에너지 균형(energy balance)에 대한 이해를 통해 탄소중립을 위한 도시의 도전에 대해 알아본다.
화석연료로 공급되는 에너지에 목매는 현실
에너지라는 주제는 사실 이해하기 쉬운 분야는 아니다. 단위도 여러 가지이고, 양적인 개념이면서 동시에 '일'의 단위이기도 하다 보니 처음에는 여간 헷갈리기는 게 아니다. 그래서 에너지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축을 만들고 그 두 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게 좋다. <그림 1>은 우리나라 전체에서 에너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지 에너지 균형(energy balance)을 보여준다.
먼저 제일 왼쪽에는 에너지가 어디에서 수입되는지를 비롯한 수입·생산을 보여주고, 다음 칸은 에너지 공급을, 가장 오른쪽 칸은 에너지 소비가 어떤 용도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석유, 가스(LNG), 석탄(유연탄), 우라늄(원자력) 형태로 수입된 에너지원들은 1차 에너지 형태로 공급된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석유나 도시가스처럼 정유, 정제 과정을 거쳐 그대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전기나 열이라는 형태로 바꿔서 이용되기도 한다. 에너지 형태를 바꾸는 과정을 '전환(conversion)'이라고 하는데, 바로 왼쪽에서 세 번째 기둥의 '전환·손실'이 그 과정이다. 에너지 시스템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탈탄소화하는 변화를 말하는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과는 다르다.
그런데 에너지를 전기나 열로 바꾸는 과정에서 손실이 생긴다. 에너지 효율이 100%가 아닌 이상 투입된 1차 에너지가 모두 최종 에너지가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서 최신형 콘덴싱 보일러는 에너지 효율이 93% 정도 되는데, 온수라는 형태로 열을 공급하면서 버려지는 비율은 7% 수준이라는 뜻이다. 한 10여 년 전에 사용하던 보일러들은 80~88% 수준이었다. 전력을 만들 때 손실되는 비율은 더 높아서 석탄발전소들은 일반적으로 효율이 40% 이하이고, LNG는 65% 수준의 효율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전환부문 효율을 높일수록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게 됨을 강조하게 된다. 에너지 형태를 전환하는 이유는 주로 전력을 생산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우리는 발전 부문을 흔히 '전환 부문'으로 부른다.
마지막 소비 칸에서는 산업, 가정·상업, 수송, 공공으로 나뉜 상자가 두 개 보인다. 아래 있는 상자는 전력이 각각 어느 용도로 어떤 비율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위에 있는 상자는 열이나 다른 형태로 사용되는 에너지가 어느 용도로 얼마씩 사용되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면 전력은 산업에서 53.9%, 가정·상업에서 39.4%가 사용되고 있다. 도시가스와 열에너지는 산업에서 61.4%, 가정에서 17.8%, 수송에서 18.5%가 사용된다.
바로 여기서 분류되어있는 에너지 수요인 '산업', '가정·상업', 수송과 에너지 형태라고 말할 수 있는 열, 전력을 흔히 '부문(sector)'라고 부른다. 가정과 상업시설에서 이용하는 에너지는 사실상 건물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이기 때문에 '건물부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문들을 연결시킨다는 의미는 산업, 건물, 수송으로 분류된 수요부문들이 서로 남는 에너지를 필요한 시기에 다른 부분에 제공하고, 전력망으로 다시 보내기도 하면서 함께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자동차에 사용된 연료는 석유 한 가지였고, 전력은 조명이나 기기를 운영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대신해 재생에너지가 주류가 되는 에너지 전환시대에는 지금까지와 다른 생각들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전력이 불러올 변화
<그림 2>에서 2020년에 우리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방식이 2050년에 탄소중립이 달성된다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표현해 보았다. 2020년에는 석탄이나 가스로 전력을 만들고 온수도 만들어서 난방과 목욕을 한다. 휘발유와 경유로 자동차를 이용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버려지는 열도 너무 많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도 너무나 많이 발생시킨다. 하지만 연료 사용 없이 전력을 생산하는 태양광과 풍력이 중심이 되는 에너지 시스템은 이렇게 만들어진 에너지를 최대한 알뜰하게, 버리지 않고 사용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재생에너지 전력은 전기차의 연료가 되고, 여전히 가정과 상업시설에서 사용하는 조명과 가전기기들을 가동하게 만든다. 재생에너지가 발전에서 주류가 되면 다 쓰이고도 남는 전기도 많아지는데, 남는 전기는 전기보일러나 힛펌프로 열을 만들어 건물부문에서 사용하면, 지금처럼 화석연료에 기대지 않는 난방과 온수생산이 가능해진다. 산업부문, 즉 공단 같은 곳에서는 버려지는 열이 상당히 많다. 왜냐하면 산업용 보일러나 고로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열은 몇 백도℃나 그 이상 수준으로 높아야 해서, 이보다 낮은 열은 사용되지 않고 버려진다. 하지만 100℃ 정도 되는 온수도 가정에서 난방용으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히 뜨겁다. 이런 열들을 지금은 '미활용열'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래서 오른쪽 그림에서는 산업→건물로 가는 화살표가 나타난다. 전기차가 엔진과 연료통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배터리는 전력망에 다시 전력을 송전하는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재생에너지 생산이 풍부한 낮시간이나 풍황이 좋은 시간대에 충전하고 전력소비가 많은 아침이나 저녁에는 송전하는 스마트 충/방전은 그래서 미래가 더 기대된다. 수송에서 전력으로 화살표가 이어졌다.
아직은 잘 가늠이 되지 않는 이런 일들은 대규모로 산업단지에서 열이 남고, 전기차가 많고, 남는 에너지들을 받아줄 수 있는 건물부문이 클 때 더 쉽게 해볼 만한데, 그런 곳은 바로 대부분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이다.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오늘의 도전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도시는 공간이 좁아서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태양광은 낮에만 에너지를 생산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도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거대한 에너지 소비지인 도시도 역할이 있다. 바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자체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90% 이상이 살고 있는 도시는 냉난방을 하고 전등을 켜고, 자동차나 기차, 지하철을 타고, 핸드폰도 쓰고 TV도 본다. 서울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의 67%는 건물부문에서 나온다. 심지어 서울은 이제 공업단지도 없이 소비만 하는 도시이다. 서울 같은 도시가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에 가깝게 줄이려면 우리가 사는 곳에서 사용하는 설비들도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하기 쉽게 바꾸고, 우리가 가진 자동차(전기차)로 필요한 시간대에 에너지를 공급도 해야 한다. 에너지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꾼다면 도시는 전체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지금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저탄소인, 궁극적으로는 탄소배출 제로인 사회로 변해가는 데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는 잘 바뀌지 않는다. 당장 지금 짓고 있는 건물들은 앞으로 몇 십 년은 서있을 것이고, 오늘 산 자동차는 앞으로 십 년은 더 타게 될 테고, 지난 겨울에 바꾼 최신 보일러도 십 년은 써야 할 것이다. 그래서 2050년에 탈탄소를 진심으로 달성하고자 한다면 도시 정책과 공간 계획이 지금 당장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몇 년이 지난 다음 그 효과들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해야 할 일들은 많다.
△ 전기차 보급 목표를 세우는 것은 물론이고
△ 온실가스를 일정 기준보다 많이 배출하는 승용차는 주소지 등록을 어렵게 만들거나
△ 사용하는 에너지에서 실제 재생에너지 소비량이 50%는 되어야 건축허가를 내준다거나
△ 주거지 근처에 있는 산업단지 폐열을 전체 회수하여 난방용으로 공급한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지금부터 추진해야 한다. 그밖에도 해야 할 매우 도전적인 과제들이 많다. 2050년, 탈탄소 사회를 이룩해야 기후변화의 파괴적인 영향을 그나마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완화할 수 있고, 탈탄소 사회로의 변화가 우리의 목표라면, 우리와 우리들의 도시는 '가치 있는 도전'을 계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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