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최고령 대법관이면서 진보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87세)이 18일 별세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이날 긴즈버그 대법관이 전이성 췌장암의 복합증세로 워싱턴DC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지난 2월 건강검진 때 간에서 암 병변이 발견돼 5월부터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긴즈버그 대법관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자리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대법관을 지목할 수 있게 돼 주목된다. 이 경우 현재 보수성향 5명, 진보성향 4명인 대법원 구성이 보수 6, 진보 3으로 압도적인 보수 우위의 구조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20명 차기 대법관 후보 명단 이미 발표...낙태 반대론자 등 보수층 유권자 겨냥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20명의 '차기 대법관 후보' 명단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법원에 결원이 없는 상태에서 새 대법관 후보 명단을 밝힌 것은 미국 사법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보수성향 유권자들의 결집을 꾀하기 위한 선거 전략 차원에서 이를 발표했다. 이 20명의 후보군에는 테드 크루즈(텍사스주), 톰 코튼(아칸소주), 조시 홀리(미주리주) 공화당 상원의원 등도 포함됐었고, 강경한 낙태 반대론자들도 다수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들을 의식한 것으로 분석됐었다.
<USA 투데이>는 이날 긴즈버그의 후임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할 가능성이 높은 4명의 여성 대법관 후보들에 대해 소개했다. 에이미 코너 배럿은 보수적 기독교신자들이 가장 선호할 후보로 강력한 낙태 반대론자라고 설명했다. 조안 라센은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법무차관보를 지냈으며, 법 해석에 있어 원칙적이며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한다. 브릿 그랜트는 조지아주 법무장관 출신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브렛 캐버노 대법관과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캐버노 대법관은 임명 당시 성폭행 미수 의혹이 제기됐지만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원에서 인준을 받을 수 있었다. 엘리슨 이드는 콜로라도주 법무장관 출신이다.
대법원 구성은 낙태, 성소수자 인권, 이민 문제 등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정치 어젠다를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또 팬데믹 상황에서 치러지는 올해 대선에서 특정 후보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법적 이의 절차를 제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내가 질 경우는 선거는 조작된 것"이라면서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혀왔다.
'진보의 아이콘'으로 사랑과 존경받은 긴즈버그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임명된 긴즈버그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다. 그는 "대법원에 여성이 몇 명 필요하냐는 물음에 9명(전원)이라고 답하면 모두가 놀란다. 하지만 전원이 남성일 때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통해 남성중심적 법조계의 현실에 대해 꼬집기도 했다.
그는 변호사 시절부터 대법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여성, 소수자의 인권 문제에 전향적인 판결을 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긴즈버그의 말> 라는 책 등을 통해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다.
진보적 성향의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로터리어스 RBG'(악명 높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기득권층이 싫어하는 판결을 한다는 의미)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18일 밤 긴즈버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그를 추모하기 위한 사람들이 연방 대법원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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