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신간 <격노>에서 미국이 2017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때 80개의 핵무기를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보도하자 한국 정부는 사전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이라고 밝혀 파문이 일고 있다.
우드워드는 자신의 저서에서 "미국 네브래스카주 전략사령부가 북한의 정권교체를 위한 작전계획 5027을 주의 깊게 연구·검토했다. 이는 공격이 있을 때 미국의 대응에 대한 것으로 핵무기 80개의 사용 가능성이 포함된다. 또 지도부 타격을 위한 '작전계획 5015'도 업데이트됐다"고 밝혔다<뷰스앤뉴스. 2020-09-14>.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공격할 때 한국의 동의를 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러시아 측의 주장은 밥 우드워드의 '80개의 핵무기' 주장과 맞물려 더 의구심을 키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14일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핵폭탄 80발 공격' 발언과 관련해 "핵무기 사용은 우리 작전계획에 없고, 한반도 무력사용(검토) 발언은 우리의 동의 없이 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당시 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전쟁 불용 입장을 천명했다. 한반도에서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내 군사 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 정부는 모든 걸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최근 개발한, 'W76-2'로 불리는 저위력핵무기("low yield" nuclear weapon)에 관심이 모아지는 배경이다.
이 새 핵무기는 폭발력이 5~6.5킬로톤으로 19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무기 3분의 1~2분의 1 정도의 위력을 지녔고, 핵 낙진 등이 기존의 핵무기보다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트라이전트 잠수함에 탑재된 것으로 알려졌다<AP통신, 2020-02-04>. 트럼프 행정부는 이 탄두를 2018년 2월 러시아의 선제공격에 대한 방어용으로 개발할 계획을 발표했으며 2019년 1월 생산을 개시해 실전용으로 배치하고 있다<the bulletin January 28, 2020>.
미국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선제타격을 가할 최상의 방법으로 선호한다. 미국 전략사령부는 장거리 핵 폭격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SLBM의 3대 핵전력을 운용하는 곳으로, 한국 등 동맹국이 핵공격을 받으면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을 때와 같은 수준의 전력으로 응징, 타격한다는 핵 확장억지력을 제공하고 있다.
저위력핵무기의 살상력이 히로시마의 경우보다 약하다 해도, 80개가 북한 지역에 투하된다는 것은 북한 주요 지역이 완전 초토화된다는 것이며, 남한도 핵 낙진 등의 피해를 피할 수 없다는 의미다. 미국이 북한을 일거에 무력화해 남한 등을 향한 보복 공격 능력을 제거하기 위해 남한의 피해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한반도 전담 부서인 '코리아미션센터'는 2017년 북한 정권 교체를 염두에 두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는 것부터 CIA의 비밀공작이나 군사 공격을 통한 정권 교체까지 다양한 옵션 9개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시했었다. 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9월 북한이 5번째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 선제 타격을 검토했던 다음 해에 취해졌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미 국방부가 북한을 선제 타격할 경우 북한 핵 시설의 85%만 파괴되고, 북한의 보복 공격으로 한국과 일본이 막대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우려해 중단했다. 당시 미 국방부는 육상공격만이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는 방법인데, 이는 북한의 반격을 낳아 자칫 핵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음을 우려했다<japantimes Sep 12, 2018>. 앞서 밥 우드워드가 언급한 "코리아미션센터가 2017년 작전계획 5015를 업데이트"했다는 주장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해당 작계는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파괴하면서 북한의 군사적 대응력을 무력화할 방안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017년 북한이 수소폭탄 시험을 위협한 다음 날인 9월 23일, 전략폭격기 B-1B 랜서 등을 북방한계선(NLL) 너머로 보내 북한 쪽 공해상을 비행한 뒤 한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미국 측 조치에 대한 불만을 직간접적으로 표시했다. 한미 간 협의를 통해 마련된 대응이 아니라, 미군 측에서 사실상 통보만 했다는 것이다<조선일보 9월 14일>.
미국이 2017년 한반도 전면 전쟁으로 직결될 두 개의 중대 군사적 계획이나 조치에 대해 한국정부에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은 사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미국이 자국의 판단에 의해 독자적으로 대북 군사작전을 전개할 가능성이 구체화되어 있지 않느냐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미군사력을 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권리(right)로 보장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찰스 리처드 전략사령관은 14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것을 대비해 한국과 미국이 마련한 군사작전계획을 수행할 준비가 돼있다"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은 한국과 매우 긴밀한 동맹 및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과 미국이 한국에 핵확산억지력(extended nuclear deterrence)를 제공하며 안보공약을 지킬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자유아시아방송 2020년 9월 14일>.
저위력핵무기의 한반도 실전 사용 가능성을 흘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한국 정부는 정확히 사실 파악을 하는 것과 동시에 한반도 공멸을 초래할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근본적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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