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의 끝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인류가 직면한 혼란에 대처하고 파생된 변수들을 파악하여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공공의료 체계,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 시민의식, 리더십의 적시 대응과 판단력에 따라 세계 각국은 코로나 사태에 달리 대응했고, 그 대응의 실효성이 국가의 위기 대처 능력의 우월성을 결정지었다.
전 세계적 재난 상황에 강대국들은 서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고 가면 뒤에 숨겨진 그들의 취약성을 온 세계가 함께 목도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강대국들이 국제정세에 현실주의적으로 대응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로 아름답게 포장하려던 국제사회는 이제 그러한 노력이 무용지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졌다.
코로나 팬데믹은 반세계화 정서의 확산, 큰 정부의 귀환, 글로벌 리더십과 국제 협력의 부재, 세계적 경기 침체와 저성장, 실업률 증가와 대기근 등 연쇄적이고 파생적으로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코로나 팬데믹은 미중 패권전쟁에서 균형추가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중국에 불리한 방향으로 기우는 결정적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이 더욱 강경해졌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이 '책임 있는 강대국'이 될 기회를 놓침으로써 코로나 팬데믹이 중국의 고립 시기를 앞당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함으로써 포스트 코로나 국제질서의 최대 이슈인 미중 패권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임을 예고했다. 미국은 중국을 협상 대상이 아닌 적국으로 규정하고, 세계 무대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이념적,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총력전에 돌입했다.
미국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두 가지 측면에서 중국을 새롭게 규정했다. 첫째, 정치적 측면에서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미국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세계적 확산이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와 연계된 것으로 판단하고, 미중 갈등을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의 이념 대립으로 확장했다.
초기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중국 정부의 사실 은폐, 역학 조사 거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책임 회피를 언론 통제와 감시, 인권 탄압 등 공산주의 체제의 구조적 문제로 파악하고, 미국은 중국인이 아닌 중국 정부 즉, 공산당의 통제, 억압, 부조리를 공격 대상으로 구체화했다.
둘째, 미국은 경제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 규칙을 활용하여 자본의 이익을 국가에 종속시키는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인 중국을 세계화의 이익을 함께 공유할 수 없는 국가로 규정하고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에서 완전히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가 중국 정부와 국영회사의 정경유착으로 중국 공산당의 힘을 키워 중국이 공격적인 외교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형성하는 근간이 된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을 도운 이후 미중무역분쟁 1차 합의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경제체제를 국제 경제 시스템에 편입시키기 위한 미국의 노력이 헛된 것임을 인정했다. 미국은 지난 40년간 중국의 세계 경제 편입과 미국 시장 접근을 허용한 대가가 가혹하며, 그러한 결정은 옳은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고 중국은 지속적으로 미국을 이용하고 기만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중국의 날개를 꺾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지난 7월 23일 닉슨 대통령 기념관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중공의 행동을 자유세계 최대의 위험'으로 상정하고, 중국 공산당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중국의 보통 시민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힘을 합쳐 중국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연설했다. '아시아의 잠자는 거대한 용'을 깨운 닉슨 대통령의 기념관에서 그는 "닉슨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또한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중국의 악성 공산주의에 대해 순진했고, 냉전 종식 후 승리에 도취했다. 우리는 겁쟁이 자본주의자였고, 중국의 화평굴기라는 말에 속았다", "오늘날 중국은 국내적으로 더 권위주의적인 독재국가가 되었고, 그 외의 모든 지역에서 더욱 침략적인 나라가 되었다"라고 말하면서, 중국을 더 이상 정상국가로 취급할 수 없고, 중국에 대한 포용정책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 자유주의 국가들에게 역사의 실패를 불러오는 비겁함을 버리고 미국과 함께 행동할 것을 호소했다. 미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교류 등 모든 측면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을 선언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8월 5일 왕이 외교부장이 관영 신화통신사 기자의 질의에 대한 응답에서 찾을 수 있다.
왕이 외교부장은 현재가 미중 수교 이후 가장 엄중한 국면이라고 진단하면서 중국은 미국을 대신해 '제2의 미국'이 될 마음이 없다고 밝히고, 미·중 모두 "상대방의 정치제도를 변화시킬 필요도 없고, 변화시킬 수도 없다", "디커플링은 궁극적으로 미국 기업에게 오히려 더 큰 피해가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왕이 부장은 미중관계 관리에 대해 다음 네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서로 간 마지노선을 정해 충돌을 피한다. 둘째, 미국이 중국을 '개조'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셋째, 디커플링을 추구하지 않는다. 넷째. 제로섬게임(zero-sum game) 태도를 버리고 국제사회에서 미·중이 공동 책임을 진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미국과 중국의 상반된 주장 사이에 교집합은 없어 보인다. 당분간 미국과 중국은 군사적 긴장 상태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워 외교전을 통한 강대국 줄 세우기에 몰입하면서 미국의 '중국 때리기', 중국의 '방어와 일대일로를 통한 세력 확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중국 고립 앞당기는 이유
코로나 팬데믹은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중국의 고립 시기를 앞당길 것이다. 첫째, 중국은 코로나 팬데믹 극복을 자화자찬하고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데 이용하여 국제사회에서 신뢰 잃고 있다.
세계적 재난 상황에 그간 중국이 주장했던 '책임 있는 강대국 중국'은 없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 정부가 초기 코로나 바이러스를 은폐하여 통제 기회를 잃었고, 국제사회와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공유를 거부하여 중국이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글로벌 확산에 책임이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오히려 “체제의 우월성 덕에 감염병 조기 통제가 가능했다”고 선전하고 의료용품을 외교수단으로 활용하여 국제사회의 반감을 사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국내적 어려움을 민족주의로 덮고, 중국에 코로나 팬데믹 책임론과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반대를 거론하는 국가에 전랑외교(wolf warrior diplomacy)로 대응하여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류 운명공동체, 화평굴기, 신형국제관계, 호혜와 평등 등 중국이 주장하는 평화 담론과 배치되는 중국의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둘째,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중국의 생산 차질은 중국으로부터 생산공정을 분리하려는 움직임에 더 큰 확신을 주어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 리쇼어링(reshoring), 생산시설의 탈중국화로 중국의 경제적 고립이 촉진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국 제조업의 생산 중단이 세계 각국의 경제적 피해로 이어지면서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가치사슬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미중 무역분쟁으로 글로벌 교역 질서 위축, 세계적 경기 둔화로 제조업이 타격을 받은 데 이어 코로나 팬데믹으로 올해 1월에서 3월 사이 46만 개의 법인이 폐업했고, 약 1억 5000만에서 2억 명의 실업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계 제조업의 핵심 공급자인 중국의 생산 차질은 수입 국가의 최종재 생산에 타격을 입힘으로써 중국 제조업의 안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됐다. 이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높은 인건비, 대중경제의존도 심화에 대한 경계로 매력이 떨어진 중국 시장에서 벗어나려는 해외 기업들의 움직임을 더욱 촉진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코로나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중국 경제 회복의 둔화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가담 여부와 관계없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을 떠날 가능성이 커졌다.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에서 중국을 제외하고 싶은 미국의 바람과 맞아떨어진다. 앞으로 기술, 무역, 금융 등 전 분야에서 미·중 간 디커플링이 진행되면서 중국의 경제적 고립을 촉진할 수 있다.
셋째. 중국·인도의 국경분쟁은 인도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중국이 직면할 군사적 위협이 더 커졌다. 인도가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되면 '네트워크화된 대중국 연합체', 유사시 군사작전을 할 수 있는 '집단 안보 체제', '인도·태평양판 나토' 등의 구상이 가시화될 것이다.
인도는 쿼드(QUAD)에 속해 있지만, 인도·태평양 전략 가담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대중국 해상봉쇄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어왔다. 45년 만에 중·인 국경에서 벌어진 총격전은 인도에게 중국은 '실존하고 직시해야 할 위협'임을 인식시키기 충분했다.
민족주의로 코로나를 극복하려는 중국과 코로나 팬데믹 대응 실패로 23%가 넘는 경제 역성장, 고실업률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외부로 돌릴 대상이 필요했던 인도에게 국경분쟁은 내부의 갈등을 무마할 수 있는 '외부의 적'이 되었다.
그러나 인도 내에서 자발적인 중국 상품 불매운동 등 반중 정서가 최고조에 달했고, 인도 정부는 이번 국경분쟁을 계기로 프랑스와 계약한 라팔 전투기 36대 가운데 5대를 조기 배치했으며 러시아판 사드인 S-400 도입 시기 앞당겼다. 일본과 수년간 군사협력을 강화하던 인도는 9월 11일 일본과 '군사기지 접근을 허용하는 협정'을 새롭게 맺었다.
9월 10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외교장관회의에서 양국은 국경분쟁 악화 사태를 막자는 취지의 공동성명에 합의하면서 전쟁의 위기를 넘겼지만 현존하는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다. 중국은 '진주목걸이 전략'으로 해상에서 인도를 봉쇄하다시피 했고, 최근 중국-파키스탄-이란의 일대일로 협력을 구체화하면서 육상에서도 중국이 인도를 포위하는 형국이다.
인도는 수년간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고, 일본·미국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며 중국을 경계해왔다. 인도가 단독으로 중국을 막기란 역부족이다.
인도는 언제든지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전략에 군사적으로 가담할 수 있다. 대만해협, 남중국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중국과 미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최대한 중립을 지키려던 인도가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다면 '쿼드(QUAD)의 활성화'와 더 확장된 '쿼드 플러스(QUAD+)'추진에도 힘이 실릴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더 큰 적을 상대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미국과 중국의 '강대국 줄 세우기'와 안보 경쟁이 더 심화됨에 따라 인도·태평양 지역에 속한 모든 국가는 양국의 강한 압박과 안보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패권 추구를 시도했던 국가들- 독일제국, 나치스 독일, 유럽을 제패하려던 소련, 아시아 대륙 제패하려던 일본-을 저지했던 것처럼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이 되는 것을 저지할 것이고, 중국 역시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중국 방식의 세계화 전략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중국의 강대국화와 패권국 미국의 대결을 미중 패권전쟁이라 부르지만 사실 양국 간의 전력은 대등하지 않다.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고 중국은 막아내고 있는 형국이다. 혹자는 미국이 중국을 때리는 이유는 그저 중국이 1등인 미국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2등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도 '트럼프 행정부가 진행한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파생된 미국에 대한 불신을 희석하고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라는 여전히 큰 숙제를 안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일본과 호주, 러시아, 이란 등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 미국에 안보를, 중국에 경제를 기대고 있는 한국과 같은 국가들은 열성적으로 어느 한 국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과 미국의 현실주의적 대응은 이미 모든 결론이 그들의 이익에 기인한다는 것이 자명하며 양국 어느 쪽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 팬데믹 이후 거세진 미국과 중국의 여론전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볼 때 유럽과 아세안 국가들은 자유민주주의와 평화 수호 입장을 견지하며 개별 사안에 따라 미·중에 협력과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한국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국제정세에 이분법적인 접근을 지양하고, 넓은 스펙트럼 내에서 국익 우선의 사안별 대응 방안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의 세력 균형이 흔들릴 때 한국의 강점을 살려 남북협력, 신북방·신남방 정책 추진, 중견국 외교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한국의 선택은 자강(自强)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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