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주변에는 벼슬이 높은 양반들이 많다. 가끔 부부 모임도 있고, 때론 모임 후 한 잔 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상당히 직책이 높은 부인이 자기 남편을 부를 때 “아빠!, 아빠!”라고 하였다. 참으로 보기에 민망했다. 아이들의 아빠일 뿐이지 자신의 아빠는 아닐진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빠!”라고 부르는 것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벼슬이 높은 분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이런 경우가 지금 주변에서도 많이 보이고 있어서 안타깝다.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기본이고, 이름을 부르는 것도 많이 보았다. 오늘은 아빠의 어원과 아버지의 의미를 찾아보면서 아울러 호칭도 바로 잡아보자는 의도에서 쓴다. 우리 옛문헌에 보면
“아바 아바 처용 아바.”<고려시대의 처용가>
라고 나타나 있다. 아빠라는 용례로 가장 정확하게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다가 15세기 들어오면서 ‘아바’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에서 즐겨 쓸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유아어’이기 때문이다. 즉 7세 이전에 쓰는 말이라는 뜻이다. 사실 필자도 ‘아빠’라는 말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하고 자랐다. 어린 시절에도 ‘어버지(아부지)’라고 불렀고, 어머니는 ‘엄마’라고 하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머니’로 호칭을 바꿨다. 그리고 엄마라고 부른 기억이 별로 없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립다.)
여인들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친정어머니는 ‘엄마’라고 부르고, 시어머니는 ‘어머님’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된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거의 대부분의 여인들이 친정어머니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친정아버지는 ‘아빠’이고 시아버지는 ‘어버님’인가? 그것은 필자가 정의할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현대의 추세가 그렇다는 것이지 그것이 옳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버지를 ‘아바’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에도 나타나 있다. ‘아바 아버지’라고 했고, 60년대의 유명한 그룹사운드 ‘ABBA’도 거기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아바’라는 단어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두루 퍼져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터키어에서도 ‘abai’(터키어에서 형은 ‘abi’라고 한다.)라고 하고, 몽골어에서도 ‘aba’라고 하니 같은 어원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도 ‘아바’라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수메르어가 널리 퍼진 것으로 유추할 수도 있다.
다문화가정의 이주여성들을 지도하던 때의 일이다. 외국에서 입국하여 한국어를 배우는 길이 막막하던 차에 필자가 한국어 교실을 열었더니 꽤 많은 여성들이 모였다. 한글 공부를 하다가 보면 웃지 못할 사건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들 중에서 어떤 여인이 시아버지를 ‘시아빠’라고 부르고, 시어머니를 ‘시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다. 주로 남편들을 보고 따라하는 것이 그들의 수업방식이었는데, 남편들이 ‘엄마’라고 하니까 여기에 ‘시’자만 붙이면 되는 줄 알고 ‘시엄마’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의 시어머니들은 오히려 그런 호칭을 좋아하였다.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라고 하면서 나중에는 ‘시’자도 빼고 ‘엄마’라고 부르라고 해서 실제로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는 여인들도 있었다. 학교 교육에서 정확한 문법(어휘)만 주장하던 필자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늘 변하는 것이 문화라고는 하지만 너무 빨리 바뀌는 모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요즘 AI(인공지능)로 인해 바뀌는 것처럼 언어세계도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아버님’은 ‘아바’에 존칭접미사 ‘님’이 붙어서 된 것으로 역사가 오래 된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세계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이런 우리말이 호칭에 있어서는 국적 없는 단어가 되어 남편을 지칭하기도 하고, 친정아버지만을 지칭하기도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서 바르게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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