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쿠팡이 쿠팡발코로나19피해자모임의 대표인 고건 씨를 해고했다. 고 씨와 같이 활동한 코로나19 확진자 강모 씨도 해고됐다. 쿠팡은 "계약직 노동자와 계약 기간이 끝남에 따라 계약을 종료한 것뿐"이라는 입장이지만, "쿠팡이 코로나19 집단감염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막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18일 쿠팡본사 근처에서 고 씨를 만나 그간 피해자모임 활동과 이번 해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고 씨는 "쿠팡발피해자모임 활동을 멈출 생각이 없다"며 쿠팡의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대책 마련 없이 노동자들이 입은 쿠팡발 코로나19 피해가 묻혀서는 안 된다는 뜻을 전했다.
"쿠팡 코로나 피해자모임 만들었더니 돌아온 건 계약 종료"
고 씨는 쿠팡 부천 물류센터의 계약직 노동자였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지난 5월에는 회사의 지시에 따라 열흘을 연속으로 일하던 중 허벅지 뒤쪽 근육이 파열돼 산업재해 승인을 받고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고 씨는 아직도 당시 입은 부상으로 산재 급여를 받으며 통원 치료 중이다.
고 씨는 집단감염 발생 당시 같이 일하던 동료들에게서 '코로나19가 터졌는데도 회사가 연장근무를 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터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화도 났다. 동료들의 이야기를 언론에 제보하고 오픈채팅방을 개설해 피해 노동자의 사례를 모으기 시작했다. 피해자모임의 시작이었다.
피해자모임을 만들자 쿠팡이 방역을 소홀히 해 사태를 키웠다는 증언이 쏟아졌다. "23일 확진자가 나왔는데도 24일 사람들을 출근시켰다", "쿠팡이 확진자가 어디에서 일했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공용으로 쓰는 작업대, PC, 안전화 등을 소독하거나 세탁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 중 고 씨가 가장 가슴 아프게 기억하는 사례는 남편이 사경을 헤매게 된 전모 씨 이야기다. 전 씨는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다 코로나19에 걸렸다. 이 때문에 전 씨의 남편과 딸도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전 씨의 남편은 지금 의식이 없다. 의사는 식물인간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쿠팡은 전 씨에게 사과 한 마디 건네지 않았다.
피해자모임은 그간 피해 사례를 모아 기자회견, 국회 토론회 등을 열고 쿠팡의 사과와 피해 보상,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를 논의하기 위한 면담도 요청했다. 쿠팡은 이들의 요구에 답하지 않았다.
지난 7월 31일에는 산재 요양 중이던 고 씨를 포함 피해자모임에서 활동하던 노동자 2명에게 '계약기간이 끝났고 재계약하지 않겠다'며 해고를 통보했다. 보통의 경우와는 다른 조치였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대부분 3개월, 9개월, 12개월의 계약을 거친 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
고 씨는 현재 계약직 노동자의 재계약 거절에도 정당한 사유가 필요하다고 보는 법리인 '갱신기대권', 산재 요양 기간과 이후 30일 동안 노동자의 해고를 금지한 근로기준법 조항 등을 토대로 해고에 대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고 씨는 "해고를 하면 겁먹거나 그만 둘 줄 알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며 "지금 우리가 활동을 멈추면 쿠팡에서 일어난 코로나19 피해는 그냥 묻히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쿠팡이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나설 때까지 피해자 모임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80여개 시민사회단체 "쿠팡은 코로나19 피해자와 대화에 나서라"
고 씨를 만난 날 쿠팡본사 앞에서는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지원대책위원회'를 비롯한 80여개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쿠팡에 △ 피해자와의 면담과 진정어린 사과 △ 코로나19 집단감염과 관련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 △ 고 씨와 강 씨에 대한 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요구가 관철되도록 피해자모임과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자리에서 정병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2018년에도 쿠팡이 일하다 인대가 파열된 계약직 노동자와 계약을 종료한 일이 있었다"며 "당시 서울행정법원은 해당 계약직 노동자의 갱신기대권을 인정하고 부당해고로 판결했고 쿠팡은 항소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당시 계약직 노동자의 상황이 이번에 해고된 피해자모임 노동자 2명과 다르지 않다"며 "쿠팡은 부당한 해고를 철회해야 한다"고 전했다.
권영국 피해자지원대책위원회 대표는 "노동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기업은 한국사회와 상생할 수 없다"며 "쿠팡은 코로나19 피해 노동자에게 사과하고 면담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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