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이었다면 대꾸하거나 비평할 가치조차 없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 나라의 대통령을 넘어 세계 유일 최강 국가의 최고 지도자이다. 아직까지는. 트럼프 이야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 난데없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한국의 사망자 통계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뚱딴지같은 이야기다.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사람도 이런 말은 하지 않을 터이다. 적어도 방송에 출연해서는 말이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뉴스 ‘악시오스 온 HBO’(Axios on HBO)는 지난 3일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을 주제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가진 인터뷰를 내보냈다. 이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이루어졌다.
인터뷰를 맡은 조너선 스완 기자는 미국의 코로나19 재확산 심각성에 대해 공격적인 질문을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인구 대비 사망자 비율’이 아니라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 통계가 적힌 종이를 가지고 나와 계속 미국의 수치가 나쁘지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스완 기자가 “인구 대비 사망자 비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구 대비 사망자 비율은 미국이 정말로 나쁜 지점이다. 한국, 독일 등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하다”고 되받으며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 기자 "코로나19 한국 사망자 적어 정말 대단해"
스완 기자는 코로나19의 심각성을 평가하는 잣대를 가지고 트럼프 대통령과 설왕설래를 하다 “확진자 대비 사망자 비율을 산정한 통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취지의 트럼프에 맞서 “예를 들어 한국을 봐라. 인구 5천100만명에 3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대뜸 “그것은 모를 일이다. 그것은 모를 일이다.”라고 되풀이해 말하며 “그들(한국)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엉뚱한 주장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에도 코로나19 국면에서 대응 부실 논란으로 수세에 몰리면 “미국이 잘 하고 있다.”고 자화자찬을 해왔다. 또 코로나10 대응 모범국가로 한국과 비교되면 “미국이 한국 등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훨씬 더 많은 검사를 해 미국의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많이 드러났다”는 식으로 비교 국가를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을 하곤 했다.
이어 스완 기자가 “한국이 통계를 날조했다는 말이냐”고 되묻자 트럼프 대통령은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나는 그 나라(한국)와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된 지도자라면 한국의 통계를 믿는다고 말해야 하는데 얼버무리고 만 것이다.
트럼프의 장기(?)는 주장만 하고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말라리아 약 클로로퀸이 코로나19에 매우 잘 듣는 약이라거나 인체에 살균제를 투입하자는 식의 발언 등 그동안 많은 식언과 행동을 보여왔다. 또 음모론을 말하거나 전문가들의 조언을 한 귀로 흘려듣는 등 미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국 검사 잘 하지 않는다"는 트럼프의 비뚤어진 인식
현재 세계 각 국은 코로나19 의심자에 대해 유전자검사법 또는 핵산검사법 등으로 줄여 말하는 ‘역전사효소 중합효소연쇄반응검사법(RT-PCR)’으로 확인해 최종 확진자를 가려내고 있다. 따라서 만약에 어느 나라에서 실제로 환자나 감염자가 만연하고 있는데도 능력이 없어서거나 일부러 검사를 하지 않는다면 또는 검사 대상 기준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한다면 거기에서 나온 통계는 믿을 수 없다. 그동안 검사를 일부러 축소해왔다고 의심받고 있는 일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국은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인정하고 그 나라들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검사 모범국에 속하고 세계에서 가장 일찍부터 검사를 열심히 해온 국가로 평가를 받아 왔다. 이 때문에 한국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매우 축소됐을 거라는 뉘앙스의 트럼프 발언은 미국 대다수 언론한테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 대비 확진자 수와 사망자이다. 그 다음 확진자 수 대비 사망자 수, 즉 치명률이다. 현재 인구 대비 확진자 수와 사망자, 그리고 치명률은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그 나라의 절대 확진자수와 사망자 수는 그 나라의 유행 정도를 가늠하는 핵심 잣대가 될 수 없다.
인구 1억이 되는 국가에서 10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거나 숨지는 것과 인구 100만 국가에서 10만 명의 확진자와 사망자자 나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인구 대비 확진자와 사망자 규모가 100배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물론 확진자 수 대비 사망자 수도 중요하다. 만약에 두 나라가 확진자 수는 1백만 명으로 똑 같은데 사망자는 10만 명과 1천명으로 서로 차이가 난다면 치명률이 1백배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한 나라는 실패 국가로, 한 나라는 상대적으로 성공 국가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가 싫어하겠지만 미국과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계를 비교해보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두 나라의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절대 수치를 비교하면 안 된다. 두 나라의 인구가 각각 3억3천만 명과 5천1백만 명이므로 이를 보정한 통계가 잣대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19 세계 현황을 매일 집계해 발표하고 있는 <월드오미터스(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의 8월 5일 현재 통계를 보면 미국은 확진자 4,918,420명에 사망자 160,290명으로 확진자는 5백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사망자는 16만 명을 훌쩍 넘겼다. 절대 수치 면에서만 볼 때 세계 1위인 미국은 세계 2위인 브라질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74위로 확진자 수 14,456명에 사망자 302명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인구수를 보정한 과학적 비교를 해보자. 인구 10만명 당으로 환산하면 미국의 확진자는 14,904명이고 사망자는 486명이다. 한국의 확진자는 283명이고 사망자는 6명이다.
미국의 인구 대비 사망자 한국의 81배, 확진자는 30배
따라서 미국과 한국의 인구 당 코로나19 실태를 보면 확진자 수의 면에서는 미국이 한국보다 30배, 사망자 수의 면에서는 81배나 더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로서는 인정하기 싫은 과학적 분석 결과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방송에서 앵무새처럼 되풀이한 확진자 수 대비 사망자 수, 즉 치명률은 미국과 한국이 어떻게 차이 날까? 이를 계산해보았다. 미국의 치명률은 3.26%이고 한국은 2.08%로 미국이 한국보다 1.6배가량 더 높다.
따라서 미국의 코로나19 치명률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치명률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인구 대비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크게 낮추는 것이다. 이 수치가 높다는 것은 계속해서 지역 확산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과 함께 많은 사람이 죽음과 질병의 위험에 놓여 불안에 떠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지도자라면 자신의 국가가 처한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하루빨리 코로나19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문가, 보건의료인, 시민, 언론, 정치인과 하나가 되어 파고를 헤쳐 나가는 지혜를 짜내어 이를 실천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이를 즉각 시인하고 사과하며 이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애꿎게 한국을 걸고넘어지는 것만 보아도 그의 마지막 모습이 연상된다. 그가 실패한 정치인으로 막을 내릴 가능성은 100%에 가깝다. 미국을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남은 기간만이라도 정신을 차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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