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간호사 등 보건의료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덕분에'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간호사들의 노동환경은 바뀌지 않고 여전히 인력부족과 괴롭힘으로 고통 받고 있다. 작년 7월 16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발효됐으나 간호사들이 일하는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 또한 서울시는 서울의료원에서 직장내괴롭힘으로 사망한 고 서지윤간호사에 대한 진상조사와 대책안을 권고했으나 이 또한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다. 이에 서울의료원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고 서지윤간호사사망사건 시민대책위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행동하는간호사회가 공동으로 병원현장에서 간호사들이 체감하는 직장 내 괴롭힘의 실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변화 방향을 담은 글은 6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2019년 1월 4일 서울의료원에서 7년째 근무하던 고 서지윤 간호사가 직장내 괴롭힘으로 사망한지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바로 전해에 고 박선욱 간호사가 사망하고, 한림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에 대한 갑질이 세상에 알려졌다.
직장 내 괴롭힘금지법이 시행을 앞둔 상황이어서 시민들의 충격은 매우 컸다. 평간호사들이 소위 '태움'이라는 직장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퇴사나 죽음을 택하는 현실에 대한 사회적 문제제기가 많았다.
이에 노조와 인권단체, 보건의료단체 등이 모여 긴급하게 시민대책위를 구성했다. 시민대책위는 서간호사의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방지를 위해 서울시가 나서라고 촉구했다.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에서의 간호사 사망에 대해 정부가 손 놓고 있다면, 민간병원에서는 간호사들이 더 힘든 상황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직장내괴롭힘 사망에 대한 공식조사기구
서울시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관련 진상대책위원회'(이하 진상대책위)를 구성했고 3월12일 출범했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지방정부가 만든 직장 내 괴롭힘 사망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진상규명 기구였다. 10명의 보건의료, 법률, 인권 전문가들이 모여 서간호사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면접조사, 설문조사, 서울의료원 자료 분석 등을 했다. 필자도 6년째 직장내괴롭힘 실태조사를 한 경험이 있었기에 인권전문가로서 참여했다.
그런데 참여자들 모두가 처음부터 이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전제하고 조사에 임한 것은 아니었다. 첫 회의에서 진상대책위의 명칭은 조사 내용을 봐야 사망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긴 논쟁 끝에 결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조사를 할수록 수집되는 자료들은 서간호사가 괴롭힘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죽음을 선택하게 됐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실 진상대책위 활동은 쉽지 않았다. 서울의료원이 근무표 등의 주요 자료를 제때 제대로 주지 않아 자료 분석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6개월간의 조사를 마치고 9월 6일 사망의 원인에 대한 조사결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34개의 권고를 발표했다.
34개의 권고가 이행되지 않은 이유
진상대책위는 서간호사 사망사건의 성격을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사망이자 공공기관에서 벌어진 중대재해, 중대사망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직장 내 괴롭힘의 유형과 관련해서는 '환경적 괴롭힘'과 '간호관리자에 의한 괴롭힘'이라는 두 가지 성격이 있다고 보았다. 괴롭힘을 발생시키는 조직적(환경적) 요인은 해당 조직에 괴롭힘 문화를 만연시킬 수 있기에 매우 심각한 것이다.
언론에 알려졌듯이, 고인은 2018년 12월 간호행정부서로 간 후 겪은 2주간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부서이동과정과 병동에서 괴롭힘을 겪었다.
고인은 다른 간호사와 달리 통상적인 부서이동에 따른 면담을 수차례 했으며, 병동에서 일하는 동안 다른 입사동기에 비해 더 많이 야간전담을 하고, 더 적게 휴가를 썼다. 병원과 같은 교대근무환경에서는 어떻게 근무표를 짜는가에 따라 업무가 더 쉬워질수도 있고 더 힘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근무표 작성, 적절한 간호인력의 배치 등을 하려면 간호관리자들의 자질과 능력도 중요하며, 병원의 경영전략도 매우 중요하다. 부족한 인력이나 비합리적인 병원 경영을 유지하려고 간호관리자들의 주먹구구식 행정이나 갑질 행위를 관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34개 권고는 ①서울시 사과와 책임, ②서울의료원의 인적 쇄신, ③고인에 대한 예우와 동료 심리치유, ④서울의료원 조직개편, ⑤간호인력 노동환경 개선, ⑥괴롭힘 고충처리 개선, ⑦서울시 제도개선, ⑧서울의료원 의혹 감사 등 규명, ⑨권고안 이행점검 등 9개 분야다.
약속과 다르게 후퇴한 서울시
먼저 서울시는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에 대한 관리감독의 책임과 의료원장 임명과 사업계획 및 결산 등에 대한 승인권이 있는 실질적인 사용자이기에 중대사망사건에 대해 책임이 있다. 따라서 서울시가 유족에게 사과하고 서울의료원 인적 쇄신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울 것을 권고했다.
이와 관련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발표 전인 9월 2일 유족인 서간호사 어머니를 만나 사과하고, 3개월 내에 권고안을 이행하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지어 권고안에 없던 추모비를 서울의료원에 건립하라고 지시도 했다.
그런데 서울시장의 약속과 달리 권고안 이행은 더디거나 뒤로 갔다. 아직까지 추모비 건립도 되지 않았다. 진상대책위 이전에도 문재인정부가 만든 공식기구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그래서 9번째 권고에 '이행점검 체계를 구축하고 권고이행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할 것을 포함시켰으나 권고대로 되지 않았다.
먼저 서울시는 이행점검체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도 서울의료원의 구조와 상황, 권고를 이해하고 있는 진상대책위 위원이 참여하도록 할 것을 요청했으나 한 명도 참여시키지 않은 채 서울의료원 혁신위를 구성했다. 혁신위에 누가 참여했고 어떤 방식으로 논의했는지에 대해 서울시는 아직까지도 밝히고 있지 않다. 2019년 말 진상대책위원이 참여한 이행점검회의에서조차 참여자 및 논의내용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구성과 논의방식에 대한 불투명성을 차치하더라도 권고안 이행을 위한 혁신위라면, 권고안을 중심으로 논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2019년 12월 2일 발표한 혁신안에는 기존에 서울의료원에서 논의되던 안을 권고이행인양 내놓은 것들이 포함됐다.
괴롭힘 방지 하랬더니..."간호사 임금 낮추겠다"
심지어 직종․직무별 직무분석을 통한 임금체계라는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안이 포함됐다. 직무급제는 성과주의를 기본으로 해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임금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공공성이 주요 가치인 공공병원과는 동떨어진 제도다.
진상대책위는 인력이 부족하고 그에 따른 임금은 낮은 서울의료원의 현실에서 인력 확보와 평간호사의 권한을 강화하고, 공정한 인사제도를 확립하기 위한 간호부원장제도와 상임감사제 등 조직혁신안을 제안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와는 반대되는 내용을 권고하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아무리 인력을 충원해도 해당인력이 간호인력 확충이 아니라 간호 관리 인력으로만 쓰인다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인사이동이 환자와 간호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병원의 외형적인 성과 내기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로 귀결된다면 소용 없다. 그래서 간호행정부의 비합리적 조직운영을 개선하고 간호인력 역량강화를 권고한 것인데 이러한 것들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괴롭힘에 대해 제대로 조사할 수 있도록 고충처리를 개선하라고 했으나 이것도 개선되지 않았다.
책임자 처벌 없는 대안...간호사의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둘째, 서울의료원의 인적 쇄신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서울의료원의 인적 혁신을 권고했던 이유도 김민기 원장이 8년간 병원장으로 있으면서 잘못된 관행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김민기 전 원장은 해임이 아니라 여론에 못 이겨 자진사퇴하는 것으로 그쳤고, 신임원장은 김민기 전 병원장과 함께 경영에 함께 했던 의무부원장이 됐다. 신임원장은 사망사건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을 뿐 아니라 그전부터 해왔던 병원경영의 방향성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인적 쇄신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권고 8번째인 '서울의료원 의혹 감사 등 규명'이 제대로 되기 어렵다. 서울의료원 수의계약 및 각종 계약장비 시설 비리 의혹과 경영진 및 인사부서의 인사전횡 등이 제대로 조사될 수 있을지 더욱 불투명해진 셈이다.
또한 핵심 권고 중 하나인 책임자 처벌도 소홀하게 했다. 사망사건임에도 간호관리자에 대한 인사처분도 솜방망이 처벌로 그쳤다. 이는 사소한 것이 아니다. 서간호사를 괴롭히고 무리한 부서이동을 추진했던 관리자들이 경징계로 그칠 때 병원현장에 전해지는 메시지는 '간호사를 괴롭혀도 문제되지 않는다'이다. 나아가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처벌은 유족들의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행이 되지 않은 이유는 서울시가 서울의료원의 혁신을 이끌어야할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관성대로, 공공기관의 관행을 그대로 용인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문제다. 34개 권고 중 이행된 것은 서울시는 권고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 조례를 만들었다. 그러나 조례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조치는 아직 없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서울의료원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다. 이 책임에서 서울시는 자유롭지 않다.
현재 서울시장이 공석인 상황이지만 서울시가 만든 최초의 병원 내 괴롭힘 조사기구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한 전향적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시민들의 건강과 간호 인력의 안전을 책임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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