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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산재·재난 비서관 제도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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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산재·재난 비서관 제도를 제안한다

[안종주의 안전 사회] 무한 반복 산재, 이제는 모든 것을 바꿔야

지난 21일 식사를 함께 하던 지인이 텔레비전 뉴스를 보며 말했다. “아니 또 물류 창고 화재야!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가 얼마 안됐잖아” 그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산재 사망 사고를 소재로 또 칼럼을 써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21일 오전 경기도 용인의 한 물류창고에서 불이 나 5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가 일어난 지 석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안타까운 죽음’ ‘우레탄 폼’ ‘순식간’ ‘ ’합동 정밀 감식‘ 등의 말들이 반복된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천과 용인이란 발생 지역이다.

이천 물류 창고 화재 참사 이후 유사 사건을 막기 위한 전국 일제 안전 진단도 소용없었다. 이제는 전국 유사 작업장 정밀 진단이나 관련 기업 책임자 처벌 등 만으로만 무한 반복되는 이런 산재 참사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는 진단을 해본다.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과 이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 고질병인 산재 사망 대책 성과가 없는 이유

왜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악의 산재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오랫동안 최고의 산재 사망국이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정녕 해법이 없는 걸까?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돼버린 산재 사고 다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김용균 사망과 이천 화재 참사 등이 소설가 김훈과 같은 사람도 거리의 현장으로 나오게 했다. 손에 잡히는 뚜렷한 성과가 아직 없는 것은 왜일까.

국회에서도 21대 들어 우원식 의원 등 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생명안전포럼’을 만들어 본격 활동 채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나라 산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대를 하면서도 걱정도 된다. 우리나라 산재 사고는 워낙 고질병인데다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기업이 위축된 환경에서 정부와 국회가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노동 단체나 산재 추방 단체, 산재 전문가, 그리고 일부 언론 등은 그 어느 때보다 산재 문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나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산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부기관에서 애를 쓰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청와대나 총리실 등 가장 힘 있고 최종 정책 결정권을 지닌 곳에서는 산재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의지나 목소리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시민사회, 전문가, 국회, 정부, 사법부 등 나설 수 있는 모든 곳이 힘을 모아 임시방편 말고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5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경기도 용인시 SLC 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22일 오전 경찰과 소방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 중 점심 식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K-방역 성과를 K-산재 예방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우리 정부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왔다. K-방역이란 국가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국가가 됐다. 이와 유사한 성과를 산재 예방에서는 왜 이룰 수 없는가?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 현황을 매일 언론 브리핑한다. 별도의 전용 사이트를 만들어 신규 확진자 발생과 격리자 수, 완치자 수, 사망자 수를 매일 업데이트한다. 도표나 그래픽 등 방문자들이 일목요연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예방 수칙, 홍보 자료, 보도자료, 코로나19 관련 분석 등도 비교적 잘 해놓았다.

산재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은가. 산재 전용 사이트를 만들어 코로나19 전용 사이트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재 사고, 특히 사망 사고가 나면 정확한 원인 등을 상세하게 분석해 모든 국민이 알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떤 기업에서 어떤 일을 하다가 산재가 생겼는지, 과거 이와 유사한 사건이 언제 어디서 벌어졌는지 비교해가며 산재 발생을 매일 업데이트하자. 사망자가 발생할 때마다,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할 때마다 노동부 책임자가 직접 나와 국민에게 발표토록 하자.

산재 사망 사고를 일으킨 기업 등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도 즉각 알리자. 관련 법령과 노동자 교육을 할 수 있는 자료를 알리자. 동영상과 카드 뉴스, 통계, 사례 분석 등을 올리자. 대한민국에서 산업보건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와 전문가들이 이 사이트에 들르기만 하면 관련 정보를 상세하게 알 수 있도록 하자. 그리하며 그들로 하여금 지금보다 더 나은 대책을 만들 수 있게끔 하자.

대통령 산재·재난 비서관, 특보 제도 마련 검토해야

국회에도 산재·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 연구 단체를 만들자. 청와대와 총리실 등에도 산재·직업병과 재난 발생 등 위기가 생길 때 즉각 대응하거나 이를 예방하기 위한 업무만 도맡는 비서관이나 특별보좌관을 따로 두자. 지금의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나 국정상황실 등이 지금까지 이런 문제를 잘 해내지 못했다. 만약에 그런 조직이 만들어진다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을 그곳에 앉히자.

무한 반복되는 산재 참사의 고리는 분명 끊을 수 있다. 시민 단체나 노동 단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하루 빨리 제정해 산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줄곧 말해오고 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는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통큰 대책을 지금 당장 마련해야 한다. 정부·여당과 대통령은 통큰 결단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통큰 결단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바탕에 깔아야 한다. 더는 ‘안타까운 희생’이란 말이 나오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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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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