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시장의 유해가 13일 오후 5시 30분께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생가에 도착했다.
유족들은 고인이 1970년 중학교를 졸업한 후 상경하기 전까지 살았던 생가에 들러 집 내부에 영정을 모신 뒤 술을 올리며 절을 하고 장지로 향했다.
이날 운구 행렬이 도착하기 전부터 지지자 등 400여 명이 생가 주변에 모여 고인을 추모했다.
앞서 이날 오전 8시 30분 향년 63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 박원순 시장의 영결식이 13일 오전 8시 30분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에서 딸 박다인씨는 유가족을 대표해 "서울시장 박원순은 더는 없다. 그 자리에 시민들이 있다. 여러분들이 바로 서울시장"이라며 "서울시민이 꿈꾸던 행복한 서울, 안전한 서울, 이제 여러분이 시장으로써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아버지는 언제나 시민 한명 한명이 소중했다. 항상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민의 결정에 따르던 시장이었다"면서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들으려던 모습, 귀한 시민 한명 한명이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 아픔이 채 가시지 않은 눈빛, 미처 다하지 못한 말들을 들으며 제가 모르던 아버지를, 그 삶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박 시장 유해는 유언에 따라 생가 인근에 있는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산 43번지 부모 합장묘 인근에 묻혔다.
묘소는 얕고 살짝 땅 위로 솟은 봉분 형태로 마련됐다.
장지에는 유가족을 태운 버스 3대와 박 시장이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많은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 장지에서 만난 박 시장의 고향 친구 김덕수(72) 씨는 “박 시장이 후배이긴 하지만 고향 창녕의 미래, 시민운동가로 인권변호사 시절의 어려움,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앞으로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라는 번뇌 등 일일이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만큼 많은 고뇌를 얘기로 풀어 왔었다”고 밝혔다.
또 “박 시장의 성격은 내가 잘 안다"면서 "자신보다 명예를 더 존중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그는 시민운동가로서 명예가 정치를 통해 훼손되는 것을 걱정했는데 그 기우는 현실이 돼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그를 이끌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대쪽같던 사람이 이러한 불상사에 휘말려던 자체만으로도 견딜 수 없이 괴로워했을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자신보다 명예를 선택해 구차한 변명보다 죽음으로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길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했다.
박 시장과 초등학교 동기생인 진영철(63) 씨는 “고향은 항상 어머님 품 같은 곳이다. 전국적인 명산이고 창녕의 상징인 화왕산에서 기운을 받아 항상 고향산천을 생각하고 고향 사람들을 생각해 힘을 내겠다던 그는 열정만큼 순수하고 부끄럼이 많은 사람이었기에 마지막 길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며 "나의 오랜 친구 박 시장, 한평생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장례가 치러지는 동안 경남지방경찰청은 인력 120여 명을 투입해 교통 안내와 차량 진입을 통제했다.
창녕군도 서울과 지역 방문객들을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응 임시검사소를 선영과 생가 주변에 3개소를 설치해 코로나 19 확산에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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