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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라 5년차', 오늘만 사는 여자의 '술땀눈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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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라 5년차', 오늘만 사는 여자의 '술땀눈물' 이야기

[프레시안books] <오늘만 사는 여자>

"'오늘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어. 회사 가기 싫어' 울부짖다가도 막상 출근하면 누구보다 내일이 있는 사람처럼 죽도록 일하는 오늘만 사는 여자의 술땀눈물"

"이건 직장생활 11년 차의 노하우도 아니요, 퇴사 실패 11년 차의 실패담도 아니다"

술 이야기는 조심스럽지만, 술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여기 직장생활 10년 차, 사회초년생 때 가졌던 거대한 포부는 일상의 비루함(?) 속으로 욱여넣은 여자의 이야기가 있다. 조직의 민낯을 마주하며 치솟는 물가, 바닥을 치는 금리, 감당할 수 없는 집값과 다이나믹한 세상사에 한숨짓는 여자. '평생 직장'이란 건 잘못 조합된 언어 배열일 뿐.

<오늘만 사는 여자>(허들링북스) 성영주 작가는 비루한 삶 속에서 견뎌가는 일상을 웃음 섞어 풀어낸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특히 '여자 직장인'이라면 더 공감할 만한 자신의 생활을 풀어 놓으며 '웃으면서 화내기'를 시전한다. 맛깔스러우면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웃음이 툭툭 터지게 만드는 글맛은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가는 데 도움이 된다.

주된 이야기는 '술'이다. '술' 한잔을 위해 오늘도 새벽에 운동하고, 회사에 출근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회의를 위한 회의에 의한 회의, 위아래 샌드위치처럼 끼여 전전긍긍하는 중간관리자의 고뇌, 밥벌이의 고단함, 슬럼프와 번아웃 등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세상에 '재테크' 따윈 언감생심.

나보다 더 발전(?)해가는 세상 속에 뒤쳐진 듯 남겨져 타인의 멋진 이야기만 미친 듯 기록하다가, 어느날 '내 이야기는 뭘까' 고민하며 한잔 두잔, 동료들, 친구들과 기울였던 술잔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 속의 주인공은 나일 수도 있고, 옆자리 동료일 수도 있고, 취업해 만난 학창시절 친구들일 수도 있다. 퇴근 후 술자리부터 귀가할 때까지는 친구들과 주고받는 위로와 용기, 완벽하고 싶어 하는 모자란 인간이 갖는 고뇌와 번뇌, 후배들에게 전하는 임파워링 등의 메시지를 담았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느라 내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오늘만 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누구보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있는 여성 직장인의 리얼한 하루를 읽다보면 술이 당긴다. 작가는 술을 마시는 이유를 거창한듯 포장하지 않는다.

"업무 시간 종료, 6시 땡~! 치면 맛집으로 술집으로 미친 듯이 질주한다. 삶의 불안과 한계치에 다다른 업무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잠시라도 고단한 일상에서 도피해 머리를 비우지 않으면 내일 다시 출근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회사 동료든, 대학 동기든, 적당히 아는 지인이든, 그 지인의 지인이든 누구라도 어떻게든 만나 소맥을 말아대며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그렇게 1차, 2차… 딱 한 잔만 더하고 깔끔하게 헤어지자 다짐하는 3차까지. 김이최박부장 욕도 했다가 강조한차대리 칭찬도 했다가, 저렇게 살진 말아야지 자기 다짐도 했다가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자기반성도 하는 오늘만 사는 여자의 '평생' 같은 '오늘'이 지나간다."

성 작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에게 쉽게 감동하는 모순파다. 텅 빈 워드파일을 채워야 하는 시간이 지극한 고통인 동시에 궁극의 희열을 느끼는 변태다. 술을 사랑한다. 노브라 5년 차, 제멋대로 잘 자란 겨털을 보유하고 있다. 10년이 넘도록 여전히, 아직도, 생판 처음 본 사람에게 이야기를 나누자고 청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음에 감사하다. 말 통하는 친구와 말 안 통하는 나라에서 허술한 민박집을 하며 종일 취해 있는 미래를 그린다."

성영주 작가는 <코스모폴리탄>에서 피처에디터이자 디지털디렉터로 일했다. <여성중앙>, <주부생활> 등에서 기자로 일하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글을 썼다.

▲오늘만 사는 여자 ⓒ허들링북스

"너도 까이고 나도 까이는 이 암울한 직장 안에서, '고생 좀 더 해봐야지'로 점철된 이 구역에서, 승자는 과연 누굴까? 나는 아닌데, 저 말을 한 선배인가? 그렇게 말하면 부장님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는 걸까? 왜 우리는 인정받지 못한 채 인정할 수 없는 자로 나이 들어가는 걸 까. 칭찬할 수 있는 자리에서 칭찬하지 못하는 자로 늙어가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 다. 싹 다 아니다. 선배가 열두 번 까였을 때 후배는 열한 번, 열 번, 아홉 번 까이는 환경이면 나는 좋겠다. 그렇게 한 명이라도 더 나아지면 좋겠다. 나는 나의 개고생은 물론, 누구의 개고생도 당연한 것이라고 함께 하찮아지지 않으련다." 30p, 〈오늘도 그렇게 하찮아지는 중이다〉 중

"책임이 무거워질수록 살짝살짝 피해가는 쪽이 꾸역꾸역 이고지고 가는 것보다 분명 쉬울 거다. 아니 덜 어려울 거다. 나도 분명 꽤나 회피했고, 종종 쉬웠다. 그렇게 많이 부끄러웠을 거다. 회피가 잠깐은 쉬울지 몰라도 계속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되새기는 하루다. 나만 많이 부끄러운 게 모두가 조금은 덜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곱씹는 오늘이다. 컨펌 신생아는 오늘도 부끄러움과의 싸움에 패배하는 중이다." 55p, 〈우리 동년배들 전부 컨펌한다〉 중

"내내 차갑던 너도 오늘 잠시 뜨거운 날일 수 있으니까. 그 마음 풀 데 없이 서성이고 있을지 또 모르니까. 당신이 백 번 거절해도 한 번 함께일 수 있다면 나는 백한 번째 문자를 보낼 것이므로. 그러니 당부한다. “어서 온다고 말해!”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백 번 거절해도 나는 정말 괜찮다고. 마음의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하니 마음껏 거절하라고. 거절할 줄 알아야 우리 만날 수도 있는 거라고."147p, 〈보고 싶은 얼구을, 오라 그래〉 중

"사람이 소중한 걸 알아가는 만큼이나 사람에 기대하는 바가 줄었다. 그래서 상처 받는 일도, 아니 상처 받아도 꽤 잘 빠져나올 줄 안다. 관계 속에서 울며불며 보네 마네 힘들어할 때, 이제는 그게 나의 잘못된 기대에서 비롯된 어긋난 관계였다는 것을 안다. 누가 함부로 기대하랬나, 실망만 커지는 것을. 나는 이제 사람이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모순을 긍정한다." 177p, 〈삼십 대가 되고 보니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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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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