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만연한 폭력과 성폭력은 근본적으로 근절돼야 합니다. 스포츠 분야의 성적지상주의, 엘리트체육 위주의 육성방식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고 개선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지난해 1월, 조재범 코치의 폭력 및 성폭력 사건이 보도된 후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를 계기로 민·관합동 스포츠혁신위원회가 구성됐다. 혁신위는 체육계의 폭력과 성폭력의 근본적 근절과 스포츠 분야의 구조혁신을 위한 과제를 발굴해 총 7차례에 걸쳐 권고안을 도출·발표했다.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은 고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체육계는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낡고 후진적인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에 지적한 '성적지상주의, 엘리트체육 위주의 육성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문이었다. 전문가들은 "대책은 이미 제시돼있다"며 "수없이 권고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성찰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수차례 권고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9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 진상규명 및 스포츠 폭력 근절, 스포츠 구조개혁을 위한 국회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발제에 나선 함은주 스포츠인권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초 '조재범 성폭력 사태 근본 대책 마련 긴급 토론회'가 열렸던 자리에 서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참담한 심정을 전했다.
그는 "당시 국위선양과 성과중심주의로 대변되는 대한민국 스포츠의 지향, 선수의 보호 및 관리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대한체육회, 제 기능을 못하고 처리과정도 불투명한 대한체육회의 각종 위원회와 스포츠인권센터의 무용론을 지적·비판했다"며 "이후 7차례에 걸쳐 스포츠혁신위원회가 권고를 내고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으나 이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에 이행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당시 혁신위는 △인권침해 대응 시스템을 혁신하고(1차) △스포츠 인권을 증진할 수 있도록 학교 스포츠를 정상화하며(2차) △모두를 위한 스포츠로의 국가 스포츠 패러다임을 전환하고(3차) △이를 실현하기 위한 스포츠기본법을 제정해야 하며(4차) △스포츠 클럽을 활성화하고(5차) △엘리트스포츠 시스템 개선 및 선수육성체계 선진화에 나서고(6차) △대한체육회와 KOC 조직을 분리해야 한다(7차)는 등 7차례에 걸쳐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 권고안을 냈다. 각 권고안은 단계별로 구체적이고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런 권고안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다는 게 함 연구원의 설명이다.
함 연구원은 "체육계는 선수들이 학대를 받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렀는데도 이를 방조하고 침묵으로 은폐한다"며 대한체육회가 인권침해를 안이하게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 최숙현 선수의 발인 다음날 행사에 참석해 골프를 친 대한체육회장을 보면 체육계가 선수들의 인권침해 사안을 준엄하게 다루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문체부·대한체육회의 '뼈를 깎는 노력' 필요하다
대한체육회는 혁신위의 권고안을 이행하는 데 소극적이었고 문체부는 그런 대한체육회를 관리감독하는데 부실해, 결국 대한체육회와 문체부가 고 최숙현 선수 사망사건에 큰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특히 대한체육회는 혁신위의 권고를 받으며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달라진 것이 없었는 비판이 이어졌다.
함 연구원은 "대한체육회는 혁신위로부터 가장 많은 권고를 받았으나 이행 여부의 관리감독·모니터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대한체육회를 관리·감독해야 하는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체육회를 통해 폭력이나 비리와 같은 사안으로 징계를 받은 지도자의 활동 현황 파악도 못하고 관련 자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을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은 "지난달 합숙훈련에서도, 작년에도, 그 이전에도 체육계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반복됐다"며 체육계의 뿌리깊은 폭력 구조를 지적했다.
유 의원은 "2008년부터 5차례의 대책발표가 있었다. 지난해 조재범 사건으로 만들어진 스포츠혁신위원회 권고안도 최숙현 선수에겐 휴지조각에 불과했다"며 "클린스포츠센터, 인군위, 경찰 무엇하나 피해자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체부와 대한체육회에 혁신위의 권고안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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