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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경제학 강사의 <자본론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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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경제학 강사의 <자본론 읽기>

[프레시안 books] <성두현의 자본론 읽기>

나는 학원에서 '주류' 경제학을 가르치는 강사다. 신림동, 강남 등에서 오프라인 강의를 하고, 인강사이트에서 온라인 강의도 한다. 강의한 지가 이제 10년이 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강의에서 전달하는 내용에 확신은커녕, 의심만 늘어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주류 경제학은 시장가격이 수요량과 공급량이 일치하는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그건 너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 보는 표면적인 설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주류 경제학은 생산과정에 투입되는 인간의 노력과 자연자원을 구분하지 않고 투입물(input)로 묶어서 인간과 사물을 동일시한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갖는 인간성을 처음부터 무시하고 시작한다.

둘째, 2008년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미친 듯이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주류경제학에 대한 파산선고를 내렸다. 지금까지 시장원리에 모든 걸 맡겨놓고 효율성만을 숭배한 결과가 바로 2008년에 시작된 금융공황이다.

30년 이상에 걸쳐 각 정권이 주류경제학적이고 시장친화적인 관점에서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으나, 부동산 투기의 광풍은 잦아들 줄을 모르고 있다. 우리가 땀 흘려 일해서 겨우 손에 쥐는 돈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울의 땅과 아파트 가격은 한 해에 몇 억씩 오르기도 한다. 노동자가 힘들게 일해서 모은 돈은 은행에서 얻은 빚이 더해져서 투기꾼의 주머니로 손쉽게, 그리고 끊임없이 흘러 들어간다.

정부는 대출 규제가 해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며, 주택공급 증가 또는 보유세 강화 등의 해법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의 대책은 일시적인 땜질이거나 문제의 증상만 완화해줄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낸 가치를 특정 개인이나 개별 회사가 배타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상황이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원인인데, 이것을 허용하는 자본주의 구조를 유지한 채로는 어떤 처방을 하더라도 부동산이 만들어내는 부당한 빈부격차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부동산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가 알고 보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해법만을 찾다보니 해결이 안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 이론도 본래의 문제의식을 잃어버리고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념적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

이러한 생각들은 이미 내가 대학 시절부터 가지고 있었던 고민이었다. 대학생 때도 나는 시장 가격 기구와 소유권을 신처럼 떠받들던 주류 경제학보다는 대안적 경제학에 관심이 많았다. 마르크스 경제학이 특히 대안의 대표격이었다. 전공 수업 중 김수행 선생님의 현대 마르크스 경제학을 먼저 듣고 마르크스 경제학을 나중에 들었는데, 그 수업들에서 <자본론>을 직접 읽지는 않았다. 원전[原典]에 대한 해묵은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자본론>의 첫 페이지로 나를 이끌게 되었다.

학부에서 내 전공은 경제학이지만 자본론을 처음 읽다 보니 새로운 개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신고전파적인 개념과 사고체계에만 젖어있다가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려고 하니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했다. '좋은 안내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생기게 되었다. 내가 읽은 원전은 비봉출판사에서 나온 2015 개역판 <자본론>이다. 이전 판본과 비교해 보면 개역판에서 많은 개선이 있었지만, 번역서가 가질 수밖에 없는 언어적 한계는 여전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모든 상황은 <성두현의 자본론 읽기>(성두현 지음, 해방 펴냄, 이하 자본론 읽기)를 만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자본론 읽기>는 추상성이 높기로 유명한 <자본론> 1권의 앞부분(1장 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4절 상품의 물신[物神]적 성격과 그 비밀)을 읽을 때 특히 큰 도움이 되었다. <자본론 읽기>는 큰 그림을 미리 제시해 주어서 독자가 지엽적인 부분에 얽매이지 않고 방향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다.

그리고 <자본론 읽기>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현재의 대한민국과 해외의 사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뛰어난 통찰력으로 보여주고 있다. 주요 장들이 끝날 때마다 현시기 자본주의 현상에 대한 꼭지글이 있다. 암호화폐가 화폐가 아닌 이유,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기, 자본론의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의 의미, 한국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서 드러나는 자본주의 법칙 등이다. 내가 평소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지만 안개에 싸인 듯이 뿌옇게 보이기만 하던 현시점의 문제들을 명쾌하게 해설해주는 부분이 아주 시의적절하다.

<자본론>을 잘 모르는 일부의 사람들이 주장하듯 마르크스의 분석들이 "철 지난" 이론이 아님을 나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와 함께 부록에 있는 퀴즈문제는 학습한 내용을 좀 더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김수행 번역본도 완벽할 수는 없는데 <자본론 읽기>가 효과적으로 이 번역본의 빈틈을 메워준다. 중간중간에 독일어 원본을 저자 성두현이 직접 번역하여 인용한 부분도 참 인상적이었다. 직접 저자가 번역한 부분이 영어나 일본어 번역본의 한계를 넘어 원래의 의미를 생생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론 읽기>도 아쉬운 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 여전히 초보자에겐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철학 혹은 경제학 용어들이 명확한 정의나 별도의 해설 없이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개정판에서는 핵심용어에 대한 해설이나 명확한 정의를 각주로 제시하거나 여백부분에 따로 정리해주는 방식으로 보완하면 좋을 것 같다.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저자 성두현의 수십 년에 걸친 사회주의 현장 활동과 횟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반복된 강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 있다. 나는 독자들에게 원전과 <자본론 읽기>를 동시에 읽어나가기를 권하고 싶다. 원전을 먼저 읽고 바로 바로 해당 부분에 대해 <자본론 읽기>를 읽어 본다면,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는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자본론> 독서라는 긴 항해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큰 꿈을 품고 출항하지만 곧 길을 잃고 마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아왔다. <자본론 읽기>가 이 항해의 훌륭한 나침반이며 환한 등대가 되어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성두현의 자본론 읽기>(성두현 지음)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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