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성희롱 발언이라는 판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명 '성폭력 특례법' 등으로 처벌받을 수 없다는 부분을 두고 아직까지 성 관련 범죄에 대한 처벌의 기준이 낮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부산의 한 사립여중학교 교감이 여성 직원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한 사실이 적발돼 시교육청으로부터 징계 권고가 내려졌다. 피해자는 학교 차원에서의 조치를 넘어 검찰에 고소장까지 접수하면서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시교육청에서 성희롱 발언이라고 인정한 것과 달리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일반적으로 성 관련 사건을 담당하는 여성청소년과에 배당하지 않고 '모욕죄'를 적용해 경제팀에게 사건을 넘긴 것이다. 이는 '성폭력 특례법'으로는 성희롱 발언을 처벌할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부산시교육청, 부산 강서경찰서, 피해자 등에 따르면 부산 동구 A 사립 여중학교 여성 직원인 피해자 B 씨는 같은 C 교감이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 여러 차례 성희롱 발언을 했다며 관련 기관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진정서 내용을 보면 C 교감은 B 씨에게 "이거 콘돔같이 생겼죠?", "60~70대도 발기가 가능하다", "몸에 좋은 주사를 와이프와 맞고 나니 밤이 다르더라", "잠이 안 와서 와이프에게 가까이 가니 오늘 생리 중이라고 하더라"는 등 성희롱 발언을 일삼았다.
B 씨는 이같은 내용을 시교육청과 국가인권위원회, 부산고용노동청 등에 진정을 제기했고 신고를 접수한 학교 측은 지난 5월 19일부터 C 교감을 직무에서 배제했다.
이 과정에서 B 씨의 신고 내용이 C 교감에게 전달됐고 그는 "미안하다", "통화하고 싶다"는 등의 문자메시지를 B 씨에게 보내는 2차 피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신고 내용을 검토한 시교육청은 지난 10일 관할인 남부교육지원청에서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를 열었고 참석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C 교감의 행위가 "성희롱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고 징계조치가 권고됐다.
교육당국의 조치와는 별도로 해당 사건은 경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B 씨는 부산지검 서부지청에 C 교감을 성폭력범죄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고소했고 부산 강서경찰서가 검찰 지휘를 받아 사건을 조사 중이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해당 발언이 성폭력범죄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C 교감을 처벌하기는 어렵고 '일사부재리 원칙'으로 처벌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 B 씨에게 모욕죄로 고소장을 다시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B 씨도 경찰의 설명에 동의하고 모욕죄로 고소장을 접수했으나 강서경찰서는 여성청소년과에서 수사하고 있던 사건을 경제팀으로 이관하게 된다.
그러나 B 씨는 당연히 성 관련 문제이기에 여성청소년과에서 수사를 담당하겠구나는 기대감과 달리 경제팀에 사건이 배당되면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청과에서 진술을 다 했음에도 다시 경찰에 출석해 남자 수사관에게 다시 본인이 들었던 성희롱 발언을 말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B 씨는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검찰에 고소할 때 모욕죄까지 넣어 8개 혐의로 고소했다. 왜 고소장을 다시 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설명은 들었으나 경찰에서 왜 경제팀으로 넘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잘 이해가 안 돼서 여청계에서 수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는데도 모욕죄로 넣어달라고 몇 번이나 전화가 왔었다. 상담받던 성폭력 소장도 전화가 와서 모욕죄로 넣는 게 맞다고 말해서 다시 넣었다"며 "상황을 이해 못 하고 있는데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얘기도 잘해주지 않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찰 입장에서는 성희롱 발언이 명백하더라도 성 관련 법적 처벌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강제추행,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성폭력 특례법 등에 적용하기에 성희롱 발언으로는 혐의 입증이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성 관련 범죄에 강력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성폭력 특례법'에 성희롱이라는 단어가 단 1개도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산 강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피해자 진술로는 범죄 행위가 안 나와서 무혐의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피해자 보호와 심리 상담은 여청과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수사만 경제팀이 맡았다"고 해명했다.
또한 "저희들이 할 수도 있지만 모욕죄는 오히려 경제팀이 전문분야다. 모욕죄가 되느냐 안 되느냐 저희들도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수사 심의관한테도 확인을 했다"며 "법이 이렇다 보니 맞춰서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현행법상 성희롱 발언으로 처벌은 모욕죄밖에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같은 처벌 기준을 두고 부산성폭력상담소 서지율 상담실장은 <프레시안>과의 전화 통화에서 "성희롱 발언에 대한 문제는 직장에서의 징계나 처벌은 강화되는 추세이지만 아직까지 형사적인 처벌 규정은 없어 피해자가 보호를 받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며 "모욕죄로는 노동청이나 국가인권위에서 성희롱을 인정받으면 피해자가 피해보상을 민사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래도 성희롱을 입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하지만 한편으로는 추행과 성폭행 중 처벌 수위는 성폭행이 더 센데 그런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인가. 강간이 왜 추행보다 형량이 높아야 하는가"라고 성 관련 범죄의 처벌 기준에 의문점을 제시했다.
특히 "어떤 피해자는 강간을 당했고 다른 피해자는 강간은 당하지 않았지만 감금당하고 추행을 당했다고 할 때 법의 판단 시점은 피해자를 고려하는 게 아니라 가해자의 행위만 고려해 형량을 결정한다"며 "이것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으로 처벌 기준을 두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희롱도 같은 맥락이다. '말 가지고도 처벌을 하냐'는 잣대로만 본다면 처벌법은 계속 안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며 "데이트 폭력도 폭행으로 처벌되는 상황으로 모욕죄 안에서 특화법을 만들거나 성희롱 관련 법을 만들던지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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