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논란 와중에서 강행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규모 유세가 20일(현지시간) 오후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열렸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지난 3개월 동안 대중 유세를 하지 못했던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이날 자신의 지지자들이 열광할만한 자극적인 발언과 왜곡과 과장, 때로는 허위 주장을 쏟아내면서 오는 11월 3일로 예정된 대선에서 '프레임 전쟁'을 주도하려 했다. '트럼프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지지자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트럼프는 현재 열세에 몰려 있는 상황을 돌파해 나가려는 계획이다.
그런데 대선을 앞둔 '바람몰이'의 신호탄 격이었던 이날 유세가 "망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럼프 재선캠프는 이날 행사에 "100만 명 이상이 사전 신청했다"고 자신감을 보였고, 이 소식을 듣고 일부 열성 지지자들이 유세장 앞에 2-3일 전부터 텐트를 치고 줄을 서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당일 참석자는 사전 신청자의 100분의 1인, 1만 명도 채 안됐다. 행사장인 오클라호마주 털사 은행센터(BOK)는 총1만9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는데, 2층 좌석의 대다수가 비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향후 대선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날 유세에서 확인된 주요한 쟁점 3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1. 트럼프 캠프를 속인 K팝 팬들의 '노쇼' 캠페인
<워싱턴포스트>(WP)는 21일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야외 유세가 취소되고 실내 유세장의 관중이 적었던 것에 대해 격분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캠프는 100만 명 가까이 사전신청이 몰리자 행사장에 입장하지 못한 지지자들을 위한 야외 행사도 준비했고, 트럼프와 펜스 부통령이 야외 유세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참석률이 저조해 이날 야외 행사는 취소됐다.
브래드 파스케일 트럼프 재선 캠프 본부장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급진 좌파 시위대가 유세 참석을 막았다"고 정치적 갈등을 조장하려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는 21일 유세장 참석률이 저조한 이유는 '반 트럼프' 성향의 10대 청소년들과 K팝 팬들이 수십만 장에 달하는 표를 사전 예약하고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캠프가 지난 11일 트위터에 이날 유세 입장권을 휴대전화로 예약하라는 공지를 띄우자 K팝 팬들이 이를 퍼나르면서 신청을 독려했고, '틱톡'(10대들이 널리 이용하는 동영상 기반의 소셜미디어)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났다. 트럼프 유세를 사전 예약하고 '노 쇼(No-show)'하자는 주장을 담은 틱톡 유저의 영상은 70만7000명이 좋다는 입장을 표했다.
스타 진보정치인인 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은 트위터에서 파스케일에게 "사실 당신은 이 코로나 기간에 행사장을 가득 채울만큼 백인 우월주의자의 연설을 원한다고 틱톡에서 가짜 티켓 예약으로 트럼프 캠페인을 벌인 10대들에게 한방 먹었다"고 지적했다. 웹사이트 제작자 출신인 파스케일은 2016년 대선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선거 전략을 통해 트럼프의 절대적인 신망을 얻었고, 선거전에 본격화되자 이번 재선 캠프에서도 본부장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앞서 트럼프 캠프 쪽에서 노예해방일인 '준틴스데이'(6월19일)에 맞춰 유세를 잡은 것에 대해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반대 여론을 주도한 것도 K팝 팬들을 포함한 10대-20대들이었다. 특히 털사는 99년 전 백인들에 의한 흑인 대학살이 벌어졌던 곳이라는 점에서 트럼프가 그의 지지층인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결집시키려 한다는 것 자체가 인종주의적인 행위라고 비판을 받았다.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추모 과정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2012년 흑인 소년에게 총을 쏘아 죽인 방범대원 짐머맨이 무죄로 풀려나는 사건을 계기로 불붙은 인종차별 철폐 운동)를 깎아내리는 '백인 목숨도 소중하다'(White Lives Matter)는 해시태그(#)가 온라인에서 묻히는 데도 10-20대들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썰렁한 유세장'을 확인한 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해냈다(we did it ya'll)"며 자축하는 메시지를 앞다퉈 올렸다.
2. 트럼프 '바이블벨트와 러스트벨트의 결합' 전략...시작부터 '삐긋'
트럼프가 3개월 만에 대규모 유세를 시작하면서 장소로 정한 오클라호마주 털사는 여러가지 면에서 상징성이 크다. 우선 오클라호마주는 지리적으로 트럼프가 재선 전략으로 삼은 '바이블벨트'(보수 기독교인 복음주의 세력이 강한 지역)과 '러스트 벨트'(중공업 지대)가 연결되는 지역이다. 바이블벨트인 남부 지역(루이지애나, 아칸소, 미주리, 켄터키, 조지아, 토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등)과 러스트벨트인 오대호 연안 지역(위스콘신, 미시간, 미네소타, 펜실베니아 등)에서 모두 접근도가 좋은 지역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프레시안>과 전화 인터뷰에서 "1만 명 지지자가 모였다는 것은 트럼프 캠프 입장에서는 처참한 결과"라면서 "바이블벨트와 러스트벨트의 '골수 지지자들'을 오클라호마에 모이게 해서 이들 '레드 넥'(러스트벨트의 보수적인 백인 노동자 계층을 지칭하는 말)들을 11월 대선 때까지 몰고 다니려고 했는데 실패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3. 트럼프 캠프, 코로나 무시+인종주의 드라이브+보수 메시지 설파
한편, 이날 유세는 트럼프 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19,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불거진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재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날 유세는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여전한 상태에서 실내에 다수의 관중이 몰리는 행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트럼프 캠프는 참석자들에게 행사 참석 때문에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트럼프나 캠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도록 요구한 사실 때문에 "무책임한 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또 이날 행사를 앞두고 트럼프 캠프 관계자 6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AP 통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캠프는 확진 판정을 받은 6명을 즉각 격리 조치했고, 이들은 물론 집적 접촉했던 사람들도 유세 현장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확산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에 충분한 조치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캠프는 이날 행사장 입장 전 발열 체크를 하고 행사장에 손 세정제를 배치하며 원하는 이들에게 마스크를 배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날 행사장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트럼프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연설을 하고 다닥다닥 붙어 앉은 상태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또 트럼프는 이날 유세에서 코로나19 검사를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여기에는 나쁜 면이 있다. 그 정도로 진단검사를 하면 더 많은 (확진) 사람들을 찾아내게 된다. 그래서 내가 진단검사를 제발 줄이라고 말했다(So I said to my people, slow the testing down please)"고 주장했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가 12만 명 가까이 되는 상황에서 코로나 확진자 숫자를 줄이기 위해 검사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쪽에선 "터무니 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트럼프는 또 이날 코로나19에 대해 "역대 어떤 질병보다 많은 이름을 가진 질병이다. 이를 부르는 19~20개의 다른 이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이름을 짓는다면 그것을 쿵 플루라 부르겠다"고 했다. 중국 무술 쿵후를 빗대서 이렇게 주장한 것이다. 앞서 트럼프는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칭하다가 "인종주의적 발언"이라는 비판을 직면했었다. 현재도 코로나19를 중국에서 인위적으로 퍼뜨렸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듯 지속적으로 "중국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또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제기된 역사적 인물(미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 남부군 연합의 리 장군 등)의 동상을 철거하는 등 재평가 움직임에 대해 "잔인한 검열과 배제는 미국인들의 소중히 여기는 가치에 위배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의 이같은 인종주의적 발언에 대해 지지자들은 크게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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