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가 주최한 온라인 대담에서 문재인 정부가 위기 극복을 위해 발표한 그린 뉴딜은 "그린 뉴딜"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특히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고민이 전혀 담기지 않았으며, 나아가 그린 뉴딜을 정의조차 하지 못해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비단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위기의식 역시 아직 기후 전환을 위한 동력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청와대는 지난 3일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두 축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에 총 76조 원의 투자를 진행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와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이 중 그린 뉴딜에는 2022년까지 12조9000억 원을 투자해 일자리 13만3000개를 만든다는 게 청와대 목표다. 생활 인프라의 녹색 전환, 녹색산업 생태계 구축, 저탄소 에너지 기반 마련이 주요 과제다.
그러나 참여사회연구소의 '위기에서 이후를 보다-한국판 뉴딜과 그린 뉴딜' 대담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정부 발표안은 그린 뉴딜로 부르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이날 대담은 김공회 경상대 교수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김선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 남종석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이사가 참석했다.
'그린 뉴딜'에 2년간 13조가 전부?
우선 청와대 발 그린 뉴딜의 현실성부터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 9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개최한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했던 이유진 이사는 "그린뉴딜 재정 규모(12.9조 원)를 보면, 2022년까지 1년에 6조 원이 조금 넘는 돈을 투자한다는 수준인데, 두산중공업 지원에 여태 들어간 돈만 3조6000억 원"이라며 "애당초 턱없이 부족한 밑그림"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의 제2차 기후변화대응 기본계획을 보면,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5억3600만 톤으로 줄이기로 했다. 현 에너지 생산 체제 예상치에서 2억4900만 톤을 더 줄여야 달성 가능한 목표다. 그마저도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제시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치 1.5도 제한선 달성에는 미흡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 이사는 현 정부의 대응 수준이 과연 정부 발표치라도 달성 가능한 수준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 이사는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모두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세웠지만 이를 실행하지는 않았다"며 "이번 정부의 그린 뉴딜 발표치 역시 원래 정부가 계획한 내용에 예산을 배정한 것에 불과하지, 실제 '그린 뉴딜'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대응은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즉, 그린 뉴딜에 마땅히 담겨야 할 '무엇'이 없다는 얘기다.
그 핵심으로 김선철 집행위원은 '정의로운 전환'의 부재를 꼽았다.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 전환 과정에 모든 사회의 이해당사자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전문에 전환의 핵심 원칙으로 정의로운 전환이 담겼다.
김 집행위원은 "전환의 핵심 당사자의 참여를 통해 전환 정책을 결정하라는 게 '정의로운 전환'"이라며 "당장 미국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이 발의한 그린뉴딜 실행 원칙 15개 조항 중 13개가 당사자 참여 보장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김 집행위원은 그러나 "한국의 그린 뉴딜에는 이런 내용이 완전히 빠졌다"며 "여태 한국이 이룬 국가 주도의 발전주의 모델, 개발주의 모델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유진 이사도 "대통령이 그린 뉴딜을 말한 시기가 5월 12일이고, 한국판 뉴딜에 그린 뉴딜이 포함된 때가 6월 1일인데, 정부는 7월에 관련 종합 계획을 발표하기로 했다"며 "사회와 경제 모든 구조를 바꾸는 대전환 밑그림을 불과 두 달 만에, 당사자들의 참여도 없이 만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 이사는 이어 "심지어 정부는 (제2의 녹색성장 논란에서 보듯)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그린 뉴딜이 무엇인지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의로운 전환 위한 사회 합의가 중요
한편 정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기후위기 인식 수준 역시 아직 부족한 편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산화탄소 다배출 국가로서 위기 인식 공감대가 낮아, 그린 뉴딜 전환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현실적 지적이 나왔다.
미국에서 오랜 기간 체류하다 지난해 말 귀국한 김선철 집행위원은 일부 운동가와 청소년이 기후위기를 강조하고, 대통령이 그린 뉴딜을 말하는 한국 상황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로 위기 체감 수준과 더불어, 운동의 동력 수준 차이를 논했다.
김 집행위원은 "미국에서도 '패션'으로 기후 문제가 논의되는 측면이 있지만, 그만큼 기후위기가 사회의 주류 담론"이라며 "그레타 툰베리가 방미했을 당시는 수백 개 학교가 기후 파업에 동참했다"고 현지 분위기를 설명했다. 이어 아래와 같은 설명도 이어졌다. 장기간 이어진 운동의 동력이 기후위기와 맞물렸기에 기후 의제가 중요한 이슈로 합의됐다는 지적이다.
남종석 연구위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사례를 들어 합의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남 연구위원은 "로스앤젤레스는 2050년 넷제로 사회를 위한 전환의 구체적 계획을 이미 세우고, 이에 대규모 예산을 이미 집행하고 있다"며 "저소득층이 밀집한 카운티에 집중적인 인프라 투자 계획을 세웠고, 이미 2023년에는 석탄 발전보다 태양광 발전 단가가 더 싼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기후위기에 관한 주지사-싱크탱크 그룹-지역 사회의 합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린 뉴딜 원칙부터 새로 정해야"
대담 가운데 이처럼 기후위기가 의제화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논쟁이 이어졌다. 그린 뉴딜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강조해, '그린 뉴딜에 성공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발전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었다. 이 같은 시각은 제러미 리프킨을 필두로 한 지식인들의 시각이다. 가장 앞서서 '그린 딜'로 기후위기 대응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유럽연합의 주요 의제이기도 하다.
남종석 연구위원은 지난 달 총액 7500억 유로의 그린 딜 청사진을 밝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관련기사 : EU의 '그린 딜'에서 배워야 할 것)
2050년 넷제로 사회는 사실상 세계 선진국 전부가 동의한 목표가 됐다. 한국 정부 역시 이를 표방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관한 공감대 수준부터 매우 낮은 현실을 고려하면, 아울러 정의로운 전환을 가능케 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원칙이 논의돼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거론됐다.
이유진 이사는 "녹색당은 물론이고 정의당이 그린 뉴딜 특별법을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도 그린 뉴딜 기본법을 제안하고 있다"며 "이 정당들이 모여 (정부 대신) 그린 뉴딜의 원칙과 기준부터 제대로 논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이 자리에서 단순히 장밋빛 미래를 그려서는 안 되며, 현실을 구체적으로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무엇인지, 이에 타격을 입는 이들을 위해 어떤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지 등도 심도 있게 다뤄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다음 대선까지 한국 사회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기후위기 대응 밑그림을 그리고, 합의하기 위해 꾸준한 논쟁을 이어가야 할 때라고도 이 이사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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