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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선생은 오늘 '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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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선생은 오늘 '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발로 뛰는 동네 의사, 야옹 선생의 지역사회 의료일지]

* 발 사진이 많이 나옵니다. 보기에 불편할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발로 뛰는 동네의사 야옹 선생입니다. 저는 지금 진료실에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아픈 분들을 찾아가는 방문 진료와 왕진을 하고 있습니다. (☞ : 동네 의사 야옹 선생, 진료실 밖으로 나서다)

그 중에 장애인 주치의 방문 진료와 방문간호는 장애인의 일상적인 건강관리를 위한 활동을 합니다. 특별히 아플 때 찾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서 전반적인 평가를 하고 이야기를 듣고 혈압이나 혈당을 체크하고 건강 교육을 하고 나면 사실 더 해드릴 것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왕진을 가는 경우는 처치할 것이 분명하고 효과가 바로 드러나기에 신뢰 관계 형성이 쉽지만 일상적인 방문 진료나 방문간호는 초반에 신뢰 관계 형성에 난항을 겪기도 하지요. 꼭 필요한 건강 활동이지만 의료인이 아닌 대상자의 눈에는 '그냥 와서 이야기만 하다 가네~' 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일하는 민들레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민들레 의료사협)에서는 대상자들과의 관계 형성을 위해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관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바로 '약물 관리'와 '발 관리'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미국 외과 의사 아툴 가완디의 저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중에 노인병 클리닉의 '블루다우' 과장이 여든다섯 살의 '진 할머니'를 진찰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할머니의 발을 살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할머니에게 신발과 양말을 벗어달라는 요청을 하고는 할머니가 신발을 벗는데 어려움을 겪는지, 발꿈치, 발바닥, 발가락 사이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저자인 아툴 가완디에게 말합니다. '항상 발을 봐야 해요.' 그러면서 이전에 나비 넥타이를 맨 날렵하고 건강해 보이는 신사를 진찰하는데, 발을 보여달라고 하니 손이 발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힐 수가 없어서 몇 주째 발을 씻지 않고 있었고, 이것은 전체적인 관리 부재를 보여주는 것이자 현실적인 위험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실제로 여러 연구들에서 발을 제대로 관리하는 능력이 있는지가 전반적인 건강 상태와 관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일단 발이 깨끗하게 잘 관리된 사람은 몸의 다른 부분도 잘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이는 자기 관리를 잘하고 있거나 혹은 적어도 그분의 몸 건강을 제대로 살펴주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죠. 반대로 발이 엉망인 사람은 몸의 다른 부분도 돌아보기 힘들 상황일 수 있습니다. 발은 눈에서 가장 먼 기관입니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분이거나, 허리를 구부리기 힘든 분, 손의 놀림이 자유롭지 않은 분, 혹은 정신적, 지적인 장애가 있는 분은 발 관리를 제대로 못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발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으면 발에 염증이 생기거나 발과 발톱에 무좀이 생기거나, 각질과 티눈, 사마귀 등으로 발에 통증이 생기고 이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 낙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당뇨가 있는 분들은 발에 혈액순환과 감각이 떨어져 있어 조그마한 상처를 잘 모르고 지나쳐 큰 상처로 진행을 하게 되고, 심각한 경우에는 절단에 이르기도 합니다.

민들레 의료사협의 장애인 대상 발 관리 프로그램에는 '예쁜발 프로젝트'라는 이름도 붙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사실 간단합니다. 장애인들을 방문할 때면 항상 발을 확인하고 문제가 있으면 관리를 해드리는 것입니다. 발을 깨끗이 씻고 관리하는 방법을 교육해드리고, 발 각질이 있으면 각질 크림을, 발톱 무좀이 있으면 무좀약을 처방하고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알려드립니다. 또한 상처나 내성 발톱이 있으면 초기에 치료를 해드립니다.

ⓒ박지영

발 관리를 처음 해드렸던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뇌경색으로 왼쪽 팔다리가 마비되어 거동이 불편한 뇌병변 장애인이신데, 몇 년 전 고관절까지 골절되어 집에서는 엉덩이로 밀고 다니고 밖에서는 휠체어로 이동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집안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약품 관리도 혼자서 잘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지난 1월에 노인 통합 돌봄으로 체계가 바뀌면서 복지 공백이 생겼고, 그 때문에 요양보호사 방문이 중단되어 더욱 힘든 상황이었는데도 어떻게든 스스로를 돌보느라 애를 쓰고 계셨죠.

포괄평가를 마치고 발을 보여 달라고 말씀을 드리자 곤란해 하시다가 할 수 없이 보여주시는데, 깨끗하게 정돈된 집 안과 달리 발이 엉망입니다. 발톱무좀도 꽤 심하고 발톱을 불편한 손으로 깎다 보니 들쭉날쭉합니다.

ⓒ박지영

제가 발톱을 깎아 드린다고 하니 손사레를 치시면 '아이구~ 씻지도 않았는데 만지지 마세유~' 하셔서 '그냥 발톱만 깎는 것이 아니라 치료하는 거에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가만히 계십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평소에 발톱을 혼자 깎으시는데, 왼쪽 팔다리가 마비로 움직이기 힘들고, 고관절 골절 부위에 통증까지 있어 자세를 취하기가 힘들며,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당시에는 발 관리 도구도 제대로 없어 발톱 약간 정리해드린 것 말고는 해드린 것 없이 이래저래 귀찮게 해드리고 왔는데도 집을 나서는 저와 간호사에게 정말 고맙다고 하시며 몇 번이나 합장을 하셔서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민들레 의료사협에서는 장애인 대상자 대부분의 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발 관리를 위해 필요한 도구들도 마련했습니다. 예상하다시피 발이 깨끗하고 건강한 분보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발 각질이 심해서 갈라지고 피가 나는 분, 발톱무좀으로 변형이 심하게 된 분, 발톱이 파고 들어가는 내성 발톱이 있는 분, 당뇨인데 발에 상처가 생긴 분 등.

ⓒ박지영

물론 꾸준히 발 관리를 하면서 발 상태가 좋아지고 있고 그 덕분인지 우리 방문 의료진이 가면 반갑게 맞아주십니다.

▲좋지 않았던 발(왼쪽)이 관리 이후 좋아졌다(오른쪽). ⓒ박지영

얼마 전 장애인 방문 간호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처음에 발 관리를 하자고 했을 때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했었는데, 지금은 발 관리가 대상자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었어요. 처음에 우리를 경계하던 분들도 자신의 몸에서 가장 추하고 낮은 곳인 발을 드러내고, 우리가 그것을 만지고 다듬고, 관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진심을 알아주시고 소통을 하게 되었어요."

▲ 발 관리하는 모습. ⓒ박지영

사실 남의 발을 만지고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지면을 빌어 그동안 고생하셨고 앞으로도 고생하실 우리 방문 간호사님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 건강에서도 발은 중요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제안합니다. 집으로 가셔서 부모님의 발을 한번 살펴봐 주세요. 혹시 놓치고 있는 건강위험 신호가 발에서 보일 수도 있습니다.

* 댓글로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 방문 진료나 왕진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셔도 됩니다. 제가 아는 한에서 답글을 써보겠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공부가 필요하기에 답변이 조금 늦거나 틀릴 수도 있습니다. 틀린 것은 가르쳐주시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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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수료했다. 현재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가정의학과 원장 및 지역사회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엄마의사 야옹선생의 초록처방전>, <아이를 위한 면역학 수업 : 감염병, 항생제, 백신>, <야옹의사의 몸튼튼 비법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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