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하고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특별위원회 (위원장 김한정 의원)가 주관하는 6.15 기념행사 '전쟁을 넘어서 평화로'가 열렸다. 행사에서 특별강연을 가진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현재의 엄혹한 정세 속에서도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인내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강연 전문이다.
오늘 우리는 뜻 깊은 6.15 20주년을 맞이합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은 분단 역사상 남과 북이 이룩한 가장 획기적이고도 중요한 성과입니다. 전환의 기회를 만들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한 담대한 여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남과 북이 함께 자부하고 또한 전 세계가 한 목소리로 찬사를 보내는 역사적인 대사건입니다.
2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하시던 날의 감격적인 모습이 회상됩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환영 인사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평양에 오셨습니다. ..... 그리고 인민군 의장대의 사열도 받으셨습니다. 이건 보통 '모순'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김 대통령께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이 겪어온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방의 심장부에 찾아가는 모험을 단행한 것입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한 국가 한 민족공동체로 살아온 민족이,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을 반세기 동안이나 지속하는 '모순', 우리를 분단과 냉전으로 몰아넣었던 나라들이 서로 화해하고 냉전을 끝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만이 아직도 불신과 대결의 냉전을 지속하는 '모순',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과가 보장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남북의 두 정상은 3일간 5차례에 11시간 동안의 만남과 진지한 토론을 통해 민족의 내일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정치적 신뢰를 쌓으면서 합의를 도출해 내는 데 성공합니다.
평화와 통일, 화해와 협력의 남북관계를 기약하는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을 산출했습니다. 합의에만 그친 것이 아닙니다. 실천에 옮기며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간 것입니다. 또한 미국의 참여를 이끌어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동하는 힘이 된 것입니다.
[6.15의 의의] 6.15남북정상회담의 의의를 네 가지로 요약하고자 합니다.
첫째, 6.15는 우리 민족이 나아갈 평화와 통일의 길을 밝혀주었습니다.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크고 중요한 성과는 남과 북이 평화와 통일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가에 대한 공통인식을 도출했다는 사실입니다. 두 정상은 통일문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통인식 없이는 남북관계 개선이나 한반도 평화 정착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통일문제부터 집중 논의한 것입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은 반드시 남북이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이룩해야 한다.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은 결코 통일의 방도가 될 수 없다. 평화통일만이 유일한 길이다."
'평화통일은 갑자기 이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류와 협력을 통해 점진적 단계적으로 이룩해 나가는 '과정'이다.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다. 평화통일의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난제들. 이를테면 경제통합 군비감축 평화체제구축 통일법규제정 등을 '남북연합'이라는 협력기구를 구성하여 남북이 합력하여 해결하고 관리하면서 평화통일을 지향해 나가야 한다"는 데 합의한 것입니다.
국내외 정세가 정치적 통일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현실적인 방도는 우선 남북이 평화공존하면서 서로 오고 가고 돕고 나누며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는 통일된 것과 비슷한 '사실상의 통일'상황부터 실현하고 완전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데 남과 북이 공통인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으로서의 평화통일' 모델은 1989년 국민적 합의를 통해 마련한 우리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궤를 같이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인 것입니다. 6.15 이후 남북간 통일 논쟁이 수그러들었습니다.
둘째, 6.15합의는 즉각 실천으로 옮겨져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습니다.
두 정상은 "평화와 통일의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상호신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그것은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합의합니다. 그리고 경제협력을 비롯한 다방면의 교류 협력을 실천하여 상호신뢰를 다지면서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가게 됩니다.
5대 중점 교류 협력사업이 실천되기 시작했습니다. DMZ 지뢰를 제거하여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하늘길과 바닷길도 열었습니다.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여러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이 추진되었습니다. 동쪽에는 금강산 관광단지, 서쪽에는 남북경제공동체의 발판이 될 개성산업공단을 건설 운영하였습니다.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되면서 시민 참여의 공간이 넓어졌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고, 적대 의식이 수그러들게 되었습니다. 긴장이 완화되고 상호신뢰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민족공동체 의식이 함양되면서 "평화와 통일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접촉과 왕래, 교류와 협력을 통해 현재진행형으로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6.15는 미국도 한국과 함께 대북관계를 개선하고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시작하는 추동력이 되었습니다.
남북 불신과 대결관계, 미-북 적대관계, 대량살상무기를 포함한 군비경쟁 그리고 군사정전체제 등이 한반도냉전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4대 요소는 불가분의 연관성과 상호의존성을 갖고 있어 어느 한 요소만 분리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포괄적 단계적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특히 미국과 북한이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한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평화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6.15는 클린턴 행정부로 하여금 대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는 추동력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특사 교환을 통해 양자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키로 하는 <미-북 공동코뮈니케 2000.10>를 채택한 데 이어 미-북 정상회담을 준비하기 위해 국무부장관이 평양을 방문합니다. 일본 고이즈미 총리도 평양을 방문하여 수교를 추진키로 하는 <평양선언>을 채택합니다.
6.15를 계기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활기를 띠게 된 것입니다.
넷째로, 6.15는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주도해 나간다'는 민족자존(民族自尊)을 드높였습니다.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의해 좌우되던 우리가, 우리 힘으로 민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과시한 것입니다. 민족문제를 당사자인 남과 북이 합의하면, 미국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는 서로 대립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것임을 입증한 것입니다.
<6.15남북공동선언>은 이를 확대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과 2018년 <4.27 판문점선언> 그리고 <9.19 평양남북공동선언>으로 계승 발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렇듯 6.15는 우리 민족이 나아갈 평화와 통일의 길을 밝혀주고 있으며,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향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개]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의 지난 9년간, 남북관계는 냉각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중단되었습니다. 촛불혁명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의 노력을 계승하는 동시에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통해 한반도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담대한 여정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고, "우리는 이미 평화로운 한반도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 그것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정책 방향을 제시했습니다.(베를린 평화구상 2017.7.7.)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하고 실천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전쟁 위기설이 휩쓸고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던 엄혹한 시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데 성공합니다. 남북 특사 교환으로 소통채널을 복원하고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하여 남북관계의 전면적 개선에 합의하는 한편 북-미정상회담의 길도 열었습니다.
지난 70년간 서로 적대시해 오던 북한과 미국이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2018.6)을 통해 한반도냉전구조를 해체시킬 3대 핵심과제, 즉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이 3대 합의가 제대로 이행된다면 한반도냉전구조를 해체하고 평화와 번영의 길을 열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후 북-미 대화가 중단되고 남북관계도 정체되면서 과연 싱가포르 북-미 정상 합의가 제대로 이행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이 과연 핵무기를 버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북한 핵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입니다.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한은 어렵게 건설한 핵무력을 결코 버리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북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평화가 보장된다면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며 비핵화 의지를 밝혔습니다. 핵을 걸머지고 어렵게 생존하기보다는 핵을 버리고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길을 선택하기로 결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결단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미-북관계 개선을 통해 상호신뢰와 여건을 조성해 나간다면 비핵화가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과연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한편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에 나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북한과 관계 정상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될 경우 주한미군, 한미안보동맹,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변화가 아니라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냉전 종식 후에도 NATO를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이는 한반도 평화가 실현되어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유지될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결단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 할 것입니다. 미국은 싱가포르 합의에 따라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며 상호신뢰를 다지면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병행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말을 상기하게 됩니다. 강대국 미국이 결단하면 북한과 관계정상화하고, 북핵문제 해결은 물론 남북관계의 개선 발전과 한반도평화체제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반도평화체제 구축은 동북아 평화질서 형성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맺는 말] 김대중 대통령은 분단 역사상 최초의 6.15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평화통일의 방도에 대한 남북의 공통인식을 도출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남북 화해 협력의 새 시대를 열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참여를 이끌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일시 중단되었으나 이제 다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해야 합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 합의를 기회로 활용하고, 6.15의 정신으로 돌아가 남북관계를 적극 개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남북관계 활성화를 통해 북-미관계 개선을 견인하고 한반도 비핵화도 실현해야 합니다. 또한 4.27 판문점선언을 통해 합의한 남북한과 미중 4자 평화회담 개최를 추진하여 군사정전상태를 끝내고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남북연합'을 구성하여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을 이룩해 나가야 합니다.
장기간이 소요되겠지만 결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과정입니다. 6.15가 밝혀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입니다. 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평화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평화를 만들며 통일의 길로 매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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