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결과 보니까 체액이 부족하다고 나오는데, 평소 물은 어느 정도 마시나요?"
"그럴 리가요~ 매일 적어도 2리터는 마시는데요."
"음~ 그 정도 마시면 이런 수치가 나올 리가 없는데요?"
"아, 꼭 물을 마셔야 하나요? 작년 겨울부터 물 냄새가 싫어서 보이차를 우려서 물대신 계속 마시고 있어요. 마시기도 편하고 건강에도 좋다고 해서요."
"아하!!!"
같은 단어를 써도 품은 뜻은 서로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잘 자나요?'라는 질문에 '네'라고 답하는 환자의 'YES'는 숙면이 아니라, 부족하지 않은 수면시간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이 환자의 경우는 물을 마시는 일이 차나 주스를 마시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죠.
물을 마시는 것과 차를 마시는 일은 다릅니다. 수분 섭취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해 보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 또한 맹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환자 중에는 '몸에 좋다'는 각종 약초들을 우려서 물처럼 마시는 분도 계십니다. 약초 우린 물은 물이 아닙니다.
물에 찻잎을 좀 우려서 마시는 것뿐인데 뭐가 크게 다를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그 차이가 몸이 외부의 물질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나 주스는 음료의 일종으로 물보다는 음식에 가깝죠. 따라서 몸속에 들어가서 처리되는 과정에서 맹물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물질이 소모될 것입니다. 소화(消化:외부의 물질을 잘게 잘라서 몸에 필요한 물질로 재구성하는 과정)에 더 애를 쓰는 것이죠. 따라서 차를 물처럼 마신다면 그 때마다 자기화를 위한 과정이 일어날 것이고, 이것이 장기화 되면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이득보다 손실이 더 커질 것입니다. 당연히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중국의 차 문화는 기름기를 즐기는 음식 문화와 수질이 좋지 않은 환경 탓에 발달했다고 하고, 유럽인들이 즐겨 마시는 맥주도 석회가 많은 물 때문에 발달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두 맹물을 바로 음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할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지요. 이 지역에서도 차나 맥주를 물 대신 마신다는 개념은 없을 것입니다.
현대인의 경우 각종 화학물질로 범벅이 된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것을 처리하기 위해 충분한 수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명의 혜택 덕분에 신체적 활동이 줄고, 외부 온도를 마음대로 조절하기 때문에 갈증을 크게 느끼지 않고 살지요. 그래서 건강을 위해 일부러라도 물을 마시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종류의 음료를 너무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은 일부러 찾지 않는 한 맹물을 마시는 것을 방해합니다. 게다가 뭔가 기능성이 있는 음료를 마시는 것이 건강에 더 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더해지면 맹물을 마실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들지요.
이러다 보니 차를 물처럼 마시고 물을 차처럼 마시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됩니다. 당연히 건강에 좋을 리 없습니다.
앞선 환자의 경우, 맹물의 냄새가 싫어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물에 함유된 광물질의 특성에 따라 고유의 향을 지니게 되는데, 만일 이것이 역하게 느껴진다면 소화기에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뭔가 맛이 있는 것을 자꾸 마시게 되는데, 이 환자의 경우는 보이차가 그 해결책이었지요. 보이차를 마시면 살이 빠진다는 설도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건강 문제 때문에 체중이 늘고 있었는데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지요. 하지만 도리어 그것이 몸을 나쁘게 만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각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좋은 효능을 가진 차는 차로 마실 때 가장 건강합니다. 그리고 몸에 필요한 수분의 가장 기본적인 공급원은 맹물입니다.
차는 차고, 물은 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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