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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좌담] 남북관계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돌아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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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전문가 좌담] 남북관계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돌아가나?

2018년과 너무 다른 한반도 정세, 원인과 돌파구는?

9일 북한이 남북 간 모든 연락 채널의 가동 중단을 선언했다. 여기에는 남북 정상 합의로 개설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운영 중단과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일주일 전에 청와대와 북한 국무위원회 개설됐던 이른바 '핫라인' 중단까지 포함되면서 북한이 남북 정상 간 합의에 대해 하나씩 파기하는 수순을 밟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이같은 행보는 지난 4일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본인 명의의 세 번째 담화를 발표하면서 예고돼왔다. 북한은 어제 오늘 일도 아닌 전단 살포 문제에 대해 왜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대북 및 국방 전문가들은 남한에 대한 북한의 분노가 단순히 전단 살포에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

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이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안보의 미래'를 주제로 마련한 좌담회에 참석한 문장렬 국방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지난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남한의 효용성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며 "사실상 미국에 종속된 남한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은 남한의 '희망사항'인 남북 군사합의 이행,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이 공허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문 교수는 "남한이 미국에 일방적으로 지시만 받는게 아니라 할 말을 하는, 그런 활동이 바깥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며 "예를 들어 금강산 관광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재개를 언급한만큼, 우리도 이와 비슷한 레벨에서 의사를 표명했어야 했다. 그게 꼭 당장 관광 재개가 아니더라도, 국제적 여건을 고려해서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정도의 언급이었어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런 것도 없었다"며 남한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만약 남한이 이러한 입장을 표명했다면 미국과 실질적으로 협상에 들어갈 수도 있고 북한이 이를 지켜볼 수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돌파구가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북한으로부터 완전한 무시를 당하거나 북한으로 하여금 배신감이나 실망감 등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서 남한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남한 정부가 지난 2018년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군축을 약속했으나 오히려 이후 군비 확충에 나섰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7월 이와 관련한 '권언'을 발표한 것이 남북관계의 하나의 변곡점이 됐다고 해석했다.

정 대표는 "김 위원장은 지난해 7월 25일 '신형 전술 유도무기 위력시위 사격'을 지도한 자리에서 남한 당국자들이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나누고 합의 문서를 만지작하다가 돌아가서는 최신형 무기를 도입하고 미국과 공동 군사훈련을 하는 이중적 행태에를 보이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4월과 9월의 '바른 자세'로 돌아오라고 요구했다"며 이러한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는 남한을 보고 "북한의 남한에 대한 실망감이 배신감으로 바뀌는 과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평양에 방문했을 때 군 수뇌부들을 총출동시켜서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하게 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김 위원장이 남한에 내려왔을 때 우리 군 수뇌부가 김 위원장에게 거수경례를 할 수 있겠는가? 이건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엄청난 결심을 한 것이고, 그만큼 남한과 군축 문제를 풀어가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메시지였다"며 "그러나 남한은 정상회담 이후 오히려 군비를 증강했다. 그렇다 보니 상종하지 않겠다는 발언에, 연락 채널을 끊겠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9.19 평양 공동선언이 발표된지 두 달 정도 후에 북측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두 달 사이에 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원래 결단력이 없는 사람 아니냐는 이야기도 했다. 미국이 하자는대로 따라가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남한에 대한 북한의 반감이 오랜 시간동안 누적돼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평양 공동선언이 나오는 과정에서 북한에 너무 기대감을 준 건 아닌지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라며 "물론 그 회담으로 물꼬는 잘 텄으나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하게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치밀하고 체계적인 준비 과정들이 있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좌담은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다음은 주요 내용이다.

▲ 8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과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7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7기 제13차 정치국회의를 주재했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

프레시안 : 북한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판하면서 남북 정상 간 합의 사항을 파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후 북한이 남북 간 연락을 아예 끊어버리면서 강도 높은 대응을 보이고 있다.

이런 대응은 어느정도 예고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지난해 4월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한에 대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대목에서 남한에 대한 기대를 확실히 접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남한은 지난해 11월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때 김 위원장이 방남할 거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간 우리의 상황 판단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문장렬 : 일단 전단 문제와 관련해, 지구상에서 아직도 평시에 '삐라'를 날려 심리전을 펴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정부의 행위는 아니지만 판문점선언의 한 합의사항이 위반된 것임은 분명하다. 이건 9.19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합의된 기구에 대한 비행금지 규정도 적용될 소지가 있다.

군사 분야에서 북한이 남한을 비난하는 단골 메뉴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F-35기 도입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래도 우리가 할 말이 분명히 있다. 한미 연합 훈련은 횟수와 규모를 대폭 줄였지만 전혀 안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전력증강 역시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위협이 상존하는 동안에는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 당연하고 더욱이 박근혜 정부 때 이미 결정된 도입 계획을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변국과의 군사력 균형도 고려할 수밖에 없고.

그런데 이 대북 전단 살포는 민간인이 했다는 말 외에는 변명할 길이 없다. 문제는 북한이 전단 살포를 군사 분야보다 더 심각하고 불쾌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전단살포는 표현의 자유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평화에 대한 범죄가 될 수 있다. 북한의 반응에 따라 지역 주민에게 위협과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 사실 판문점선언 이후 좋은 여건이 만들어졌을 때 정부와 국회가 대북 전단살포 금지법 제정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얼마나 진정으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추진했는지 반성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금지법 제정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실질적인 금지를 위해 공권력을 투입해서라도 평화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에 대한 굴욕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반평화 세력의 이념 공세에 흔들려서도 안 된다. 거대 여당은 평화에 관한 한 결코 겸손해서는 안 된다.

정욱식 : 대북 전단 살포 규제가 시급한 과제인 것만은 맞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이 남한에 대해 이미 불신이 쌓여있는데, 이걸 풀기에는 한계가 있기도 하고 향후 다른 악재를 예방하는 데도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말씀하셨던 '오지랖' 문제는 201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나온 공동선언에 영변 핵 시설 폐기를 넣은 것을 지칭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남한의 중재 역량에 대한 실망감의 표시였다.

그러던 김 위원장은 지난해 7월 25일 '신형 전술 유도무기 위력시위 사격'을 지도한 자리에서 '남조선(남한) 당국자'에게 보내는 권언을 발표했는데, 이게 남북관계의 하나의 변곡점이 된 것 같다.

당시 김 위원장은 남한 당국자들이 사람들 앞에서는 평화의 악수를 나누고 합의 문서를 만지작하다가 돌아가서는 최신형 무기를 도입하고 미국과 공동 군사훈련을 하는 이중적 행태에를 보이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4월과 9월의 '바른 자세'로 돌아오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의 이같은 권언은 무시당하는 상황으로 전개됐고 광복절 다음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한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이 '권언'이라는 표현을 썼음에도 정부를 포함해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저러는 것은 2차 북미 정상회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그 이유가 없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는 남한에 대한 실망감이 배신감으로 바뀌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적절한 설명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평양에 방문했을 때 군 수뇌부들을 총출동시켜서 문 대통령에게 거수경례를 하게 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김 위원장이 남한에 내려왔을 때 우리 군 수뇌부가 김 위원장에게 거수경례를 할 수 있겠는가? 이건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엄청난 결심을 한 것이고, 그만큼 남한과 군축 문제를 풀어가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 메시지였다.

그런데 남한은 정상회담 이후 오히려 군비를 증강했다. 그렇다 보니 상종하지 않겠다는 발언에, 연락 채널을 끊겠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이재호)

김종대 :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했을 때 남북관계에 기대면서 상황 관리를 해왔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한 관리가 주로 청와대 정무팀 작품인데, 안보실이 정무팀에 밀리는 것을 몇 번 보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그러한 국내 정치적 고려가 작동되긴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방식보다는 남북관계가 국내정치로부터 구별되어 남북관계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 관리를 해주는게 좀 더 좋았지 않았나 싶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정부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회담 전에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만남을 가지지 못했다. 한미 간 최고위급 채널이 가동되지 못한 셈이다.

볼턴 보좌관이 당시 베네수엘라 문제로 북한 상황을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고려해서 정의용 실장이라도 적극적으로 움직였어야 했는데, 북미 회담이 잘될거라는 낙관주의적인 전망을 하고 있었다. 청와대는 회담 결렬 전까지도 잘하면 종전선언이 합의될지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였다. 최소한 미국의 의중 정도는 알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셈이다.

북한이 남한에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로 금강산 관광도 꼽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관광을 재개하겠다고 했는데 우리 정부가 여기에 대해 비슷한 수준에서의 입장을 내지 못했다. 무조건 가능하다가 아니더라도 나름 답을 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못하다 보니 북한은 남한 정부의 행태가 못마땅할 뿐만 아니라 좀 기이하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 있다.

문장렬 : 남한이 북한에 호흡을 맞춰주지 못한 이유는 미국의 대(對) 한반도 전략이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남한이 아무리 북한과 잘 지내보려고 해도 그것이 미국의 국익과 전략적 목표에 부합하지 않으면 미국은 남한의 움직임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다. 한반도 정세가 미국 주도로 가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남북이 독자적으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워킹그룹은 그런 의미에서 존재할 수 있는 기구다. 문제는 그 기구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건데, 우리와 북한 입장을 전달하면서 합리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논의의 장으로 워킹그룹이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지시만 받는 게 아니라 할 말을 하는, 그런 활동이 바깥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잘 안드러났다. 예를 들어 금강산 관광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건 없는 재개를 언급한만큼, 우리도 이와 비슷한 레벨에서 의사를 표명했어야 했다. 그게 꼭 당장 관광 재개가 아니더라도, 국제적 여건을 고려해서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정도의 언급이었어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런 것도 없었다.

남한이 이러한 입장을 표명하면, 즉 보편타당한 정책을 수립하고 이러한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공표하면 미국과 실질적으로 협상에 들어갈 수도 있고 북한이 이를 지켜볼 수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돌파구가 생길 수 있고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북한으로부터 완전한 무시를 당하거나 북한으로 하여금 배신감이나 실망감 등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분에서 남한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프레시안 : 지적하신대로 북한이 남한에 대한 불신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 지난해 열렸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기점이 됐다는 분석이 많다.

문장렬 : 물론 회담의 결렬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18년 9월에 열린 평양 남북 정상회담 이후 양 정상은 정상 선언 5조에서 영변 문제를 언급했다. 북한은 남한이 권고한 대로 영변을 공동선언에 넣었고, 이를 통해 미국과 협상도 가능할 거라고 봤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관계가 좋다고 평가했기 때문에 남한을 믿고 하노이까지 갔지만 결국 회담은 결렬됐다.

여기서 북한은 남한의 효용성, 즉 미국과 협상에서 남한이 쓸모가 있냐는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가졌던 것 같다. 북한은 남한이 사실상 미국에 종속돼있고, 한국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사실상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런 상태에서 북한은 남한의 '희망사항'인 남북 군사합의 이행,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이 공허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즉 남북관계 잘해봐야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북한의 지도층이 알게 됐고, 이렇게 해봐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 같다. 오히려 북한의 '군심'(軍心)이 이반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군 기강이 해이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보면서 남북 군사합의가 김정은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예를 들어 군사공동위원회는 왜 작동하지 않을까? 이 위원회가 남한에는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이득을 줄 수 있지만, 북한에는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느끼기에 자신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은 미국으로부터 온다. 그런데 미국의 손아귀에서 꿈쩍도 못하는 남한이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를 취한다고 해서 GP를 폭파하고, DMZ 내 평화공원 순례길을 만드는 등의 이벤트를 벌이는 것은 북한에게는 굉장히 기분나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자기들은 쌀 한 톨이라도 더 생산하려고 동원되고 있는데 남쪽에서는 관광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군사공동위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만 북한 입장에서 공동위가 실효적인 기구라는 인식이 들 수 있도록 우리의 행동이나 말이 바뀌어야 한다.

▲ 문장렬 국방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이재호)

우리가 북한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가 되면 더 과감한 군축이나 평화를 위한 남북협력이 가능하다는 부분을 계속 확인하고 다짐하면서, 북한이 자존감을 유지한 채로 협상에 나올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부분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는 합리적 수준에서 국방비의 증가율을 낮추고 그 다음에는 총액을 낮추는 방향성을 보여줘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국방에 대한 미래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북한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분야는 주한미군 문제와 한미 연합 군사 훈련 등인데 이러한 사안에 있어서도 우리가 개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완료해야 한다. 실제 미군 장군들은 한국군의 지휘능력을 고려했을 때 환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참고로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 4성장군을 연합사령관에 임명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실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중요하다. 실권이 주한미군사령관과 유엔사령관이 가지고 있다면 한국에서 유사사태가 벌어질 경우 미국과 협조를 주한미군사령관이 하게 된다. 실제 1994년 평시작전권을 환수받았을 때 미국은 그와 동시에 핵심적인 권한을 전부 연합사령관에 위임했다. 따라서 작전통제권 환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실제 권한을 어떻게 부여할지 문제다.

정욱식 : 9월 평양 공동선언에서 영변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좀 놀랐다. 북미가 아니라 남북회담의 결과로 그러한 조항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남북이 모두 영변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당시 정상회담 전후로 정부 안팎에서는 영변 핵 시설이 북한의 전체 핵 능력의 70~80% 해당하고 이 시설을 폐기하면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시작된다는 취지의 입장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추정컨대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단계에서 영변 핵 시설부터 폐기하자고 제안하면서 이는 불가역적인 비핵화의 시작이기 때문에 미국의 상응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북한을 설득했을 것 같다.

그런데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만 해도 영변은 북핵 능력의 거의 100%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왔을 때 이미 영변은 북한 핵 능력의 70-80% 정도로 축소됐다. 10년이 넘게 지난 2018년 시점에서 영변의 가치는 이보다 더 떨어졌다. 이미 김정은이 핵무력 완성을 이야기할 정도가 됐던 터라, 북한 핵 능력에서 영변이 차지하는 비중은 기껏해야 50% 정도였다고 본다.

따라서 영변 핵 시설 폐기로 불가역적 비핵화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당시 남북 정상회담에서 영변 핵 시설을 상황의 획기적 돌파구로 인식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한미 워킹그룹이 창설된 것도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한미 워킹그룹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를 한미 공동의 전략으로 발전시키는 일을 했어야 했는데 사실상 미국이 한국에 간섭하는 식이 돼버렸다. 남한이 남북관계에서 미국과 달리 단독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입장 하에 타미플루가 북한에 지원될 때 쓰이는 차량 제재 문제나 이야기하는 곳이 된 것이다.

사실 단독행동으로 치자면 미국이 우리보다 더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비핵화 방식이 담긴 문서를 전달했는데, 미 국무부에 이 문건을 남한에도 전달했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만 남한에는 하노이 회담 이후에 줬다고 말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미국이 단독행동을 한 셈이다.

김종대 :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보름 전에 스티븐 비건 당시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미국에서 만났다. 2주 후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북한하고 합의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더라. 북미 간 이견만 많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비건과 함께 평양에 들어간 미국 협상팀은 알고 보니 급조된 팀이었다. 국무장관은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비건 특별대표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시스템이었다. 미국은 철학과 정책을 기반으로 한 대북접근이 아니라, 다분히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것 같은, 트럼프 스타일대로 하는 것 같았다.

페리 프로세스처럼 체계적이고 정책적인 접근을 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상당히 도박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하노이 정상회담 전까지 몇 번의 우여곡절이 있었다가 결국은 파국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한국이 남북관계에서 앞서나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워킹그룹과 함께 유엔군사령부를 활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을 만들겠다고 계획을 밝혔기 때문에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 비무장지대에 들어가서 조사를 해야 하는데 유엔사가 이를 막았다.

사실 유엔사의 관할권이라는 것은, 극장으로 예를 들면 손님들의 표를 검사하는 정도다. 상영시간을 바꾸거나 작품을 바꾸는 등 극장 주인 또는 매니저가 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비무장지대에 대해 우리가 관할권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헌법에 의거해 우리 영토 안에 들어왔는데도 유엔사가 거기에 들어가라 마라를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관저 정치'를 한 것도 문제였다. 교황의 북한 방문이 추진됐을 때 해리스 대사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관저로 불러서 교황이 기도나 잘하면되지 왜 국제정치에 개입하냐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해리스 대사는 장관뿐만 아니라 의원들도 관저로 불러들여서 이러한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사실상 해리스 대사와 주한미군 사령관이 치밀하게 '세트플레이'를 한 셈이다. 이는 한국이 앞서나가는 것에 대해 발목을 잡겠다는 건데, 그중에는 유엔 안보리 제재와 관련 없는 사안도 있었다. 유엔사는 안전을 우려해 허가하지 않았던 것이고 90% 이상 승인해줬다고 보도자료를 뿌렸는데 문제는 이게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도 집권 이후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급하게 움직였던 것이 사실이다. 2018년 9.19 평양 공동선언이 발표된지 두 달 정도 후에 북측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두 달 사이에 문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원래 결단력이 없는 사람 아니냐는 이야기도 했다. 미국이 하자는대로 따라가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양 공동선언이 나오는 과정에서 북한에 너무 기대감을 준 건 아닌지도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물론 그 회담으로 물꼬는 잘 텄으나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하게 될 수 있도록 조금 더 치밀하고 체계적인 준비 과정들이 있었어야 했다.

과거 제네바 합의를 보더라도,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정책화되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들이 거짓말같이 없으면서 다분히 충동적이고 도박에 가까운 행태로 진행된 것 아닌가 싶다. 일종의 부실공사인데, 지금은 정상외교, 친서 정치만 살아있는 상황이 됐다.

▲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 ⓒ프레시안(이재호)

남한이 머뭇거린 이유

프레시안 :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의 종속변수가 아니라고 했는데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남한 정부가 이러한 행보를 보인 원인은 어디에 있었다고 생각하나?

문장렬 :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미국에 반대하는 말이나 행동을 극도로 조심하고, 실제 미국에 반대했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지의 문제도 있다. 이는 정치적 계산과 연관되는데, 미국에 반대했을 때 보수 진영이나 언론 등에서 이념 논쟁 및 공격이 이어지는데 이를 감당하기가 겁이 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용기가 없는 측면도 있다. 뭐라도 한 번 해보고 그 결과에 따라 대응하면 그것도 괜찮았을 텐데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으니까. 예를 들어 대북제재 문제의 경우에도 북한이 진정성있게 비핵화 조치를 한다면 제재도 그에 병행해서 단계적으로 해제해야 한다는 말이 사실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런데 남한 정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미국의 입장인 '동시적. 병행적'만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 이건 내용 없는 단어일 뿐이고, 실제 대북 제재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의미있는 말이지만 이런 언급은 하지 않은 채 행동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처럼 국내 정치적 계산과 미국에 대한 두려움 등이 혼합된 남한의 태도가 북한에 어필하지 못하는 상황이 조성된 것 같다.

프레시안 : 그래도 올해 들어와서 정부가 나름 남북 간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할 수 있는 부분을 하려고 노력 중인 것 같다.

김종대 : 그것도 좀 공허해 보인다. 남북관계도 그렇지만 북미 실무접촉이 한 번도 성공하여 그에 따라 양측이 진전된 결과를 내놓은 적이 없다. 정상 간 외교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끌어 왔다. 그나마 한반도에서 협상 판이 깨지지 않는 것은 정상 간 우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아무리 남한을 공격하더라도 아직 문 대통령에 대해서만큼은 조심하고 있지 않나. 문재인-트럼프-김정은 3자의 정상 간 우의가 실무회담이 잘 안되더라도 협상을 잡아주고 있는 안전판 기능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나마 이런 것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점이다.

정욱식 : 이게 가능한 것은 북한이 최고존엄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에서 트럼프를 만났을 때 "우리의 훌륭한 관계가 조미(북미) 사이에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연말부터 공과 사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즉 개인 간의 관계와 나라 사이 문제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김정은 입장에서 트럼프에 농락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고, 그러한 마음이 행간에서 읽힌다.

남북관계에서 지금까지 그나마 잘 돼왔던 것이 9.19 군사합의였다. 그런데 김여정 제1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있으나 마나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와 지지자들이 9.19 공동성명에 대해 사실상의 종전선언에 해당된다고 평가했고, 김여정의 담화에 대해 청와대도 군사합의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했는데 왜 남북 간 인식차이가 이렇게 달라졌을까?

9.19 군사 합의가 상당 부분 이행됐고 이를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종전선언"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라면, 그 다음 단계로 바로 나가지 못하더라도 준비라도 갖추고 있어야 했다. 그 다음은 '단계적 군축'이다.

합의에는 군사적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에 들어간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군사정책은 이러한 합의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이 와중에 이 합의마저 무너지면 남북관계는 '제로' 상태로 가버리게 된다.

9.19 군사합의가 발표된 직후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 중 평화군비통제비서관이 없어졌다. '군비 통제'라는 말이 빠졌다. 정부 차원에서 군비 통제가 실제 시작되면 논란이 많이 되기 때문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데 이를 빼버린 것이다. 당장 군축은 힘들더라도 제도적, 자원적, 외교적, 정무적 기반 등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전혀 그런게 없었다.

그런 와중에 김 제1부부장은 4일 "개성공업지구의 완전철거"를 이야기했다. 이건 개성공단 입장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신호다. 공단이 문을 닫은지 만 4년이 지나기도 했고 북한이 개성공단의 독자가동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가 강하지 않을 때는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던 노동자가 중국으로 가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아니면 북한 자체적으로 물건을 만들어서 수출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재로 인해 이 두 가지 모두 어려워졌다. 북한이 자력갱생을 위해 공단을 독자적으로 가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프레시안 : 9.19 군사합의가 진전되려면 논리적으로는 남북 간 군축이 맞는 방향인데, 정치적으로 가능할까?

김종대 : 안보를 구조조정할 수 있는 계기는 열렸다고 본다. 남북 간 단계적 군축과 우리 자체의 필요성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방비 감축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매우 협소한 주제라고 본다. 안보 기능 자체의 조정으로 초점을 잡아야 한다.

우선 군축은 인구 절벽 시대에 검토했어야 할 사항이다. 양적 감축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군비통제센터를 제대로 만들어서 전문성있게 나가야 한다. 이걸 남북관계에 따라, 합의서에 따라 만들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민족 안보, 공동 안보, 협력적 안보까지 전제로 해서 밑그림을 그리면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군비 통제를 설계할 수 있는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직속으로 군비통제센터를 운영하면서 거기서 밑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냥 단계적 군축을 진행하면 정치적 부담을 안을 수 있다. 미래 안보 개념의 지향점을 정해 두고 군비통제센터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능 조정도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안보가 굉장히 넓은 영역이라서 갖다 붙이면 안보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안보 개념이 넓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축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전통적 안보만 해도 과대 팽창 돼있다.

테러 대비에 대한 국정원의 역할이 있고 재난 대비를 위한 소방방재청의 역할이 있다. 또 행정안전부의 민방위에 예비군까지 운영되고 있다. 유사한 기능이 중첩돼있는 건데, 지방으로 가면 이들은 다 똑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중복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많아진 것이다.

이번에도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방역안보가 중요하다며 관련 기능을 또 키워놓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일단 국가 안전과 관련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위기관리 매뉴얼을 발전시켜서 안보기능 전체를 통합적으로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이번 코로나 19와 같은 일이 또 발생할 경우 군이 평화 시기에도 기능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국민 복리를 위해 국방비가 쓰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안보를 설계 및 기획할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정부가 스스로 규제를 하고 칸막이를 만들면서 위기 능력을 약화시켰다는 부분을 반성하고 정부 기능을 바꿔주는 것이 코로나 이후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청와대가 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서 기능을 조정해주고 통합하면서 장기적으로 국가 생존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여기에 군비 통제 개념을 중앙에 놓아야 한다.

문장렬 : 군축과 군비통제와 훈련은 달리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사실 많이 줄었다. 2017년에 비하면 훈련 횟수나 규모, 방식 등을 거의 절반 이상이 줄어들었다.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1차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약속했기 때문에 한미 연합 훈련이 한국군이 단독으로 하는 기동 훈련으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한 점검은 지휘소 훈련으로 대체됐다.

군축 부분은 남북이 같이 해야 하는데 양측 군사력이 비대칭적이라 축소할 만한 동종의 무기를 찾기 힘들다. 그런데 일단 우리 병력을 2022년까지 50만 명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을 이같이 단기간내에 줄이려는 시도는 그 사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이밖에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무기들이 공간만 차지하고 있게 하기보다는 우리 수준에 맞는 전략자산 등을 내실 있게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조건 국방 관련 예산이나 시설은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응 능력과 전략적 능력을 고려해서 추진해야 한다.

▲ 지난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종대 : 지난해 독도 인근 해역에서 러시아 군용기를 쫓아내고 울릉도 인근에서 일본과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관련해서 초계기가 뜨기도 했다. 세계 2, 3위 군사 대국을 상대로 나름의 성공적인 견제를 한 것이다.

4월 말 김정은 사망설이 파다했을 때 당시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북한 쪽으로 전략 기동했고 북한 전투기가 대응을 위해 뜨기도 했다. 상황이 발생하다 보니 중국과 러시아가 항로를 바꾼 건데, 안보 분야에서 전략자산이 많이 밀집돼 있을뿐만 아니라 상황 관리를 하다보면 동맹이나 우방국 등의 구분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예기치 않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이건 중국과 북한 사이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실제 지난해 러시아 군용기를 쫓아냈을 때 4개국 군용기 60대가 인근에 밀집했다. 여기에 해상에서 해군 전력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군 자산이 인근에 집결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잘 성찰해야 하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국가 간 갈등 심화될 때 어떤 안보를 해야하냐는 점이다. 군사력을 양적으로 감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사용할지가 중요한데, 열점이 동해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 중요한 문제다.

다행히 한중 간 군사적 소통이 재개됐고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우리는 '중재자' 같은 실효성 없는 개념에 집착하기 보다는 동아시아에서의 위기 관리를 통제하면서 우리가 당사자 국가라는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중견국 외교안보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반도에서 주변 영역까지 아우르되 협력적 안보를 표방하면서 그에 맞는 군사력을 구축해야 한다. 김정은 참수부대라든지 3축 체계 구축, 킬체인 등에 집착하지 않고 필요한 군사력을 구비한다면 군비 통제도 가능하다.

문장렬 : 북한만 겨냥하는 군사 구축이나 전략이 아니라 정상적 중견 국가로서 보편적 안보를 실현하는 개념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무조건적인 감축이 아니라, 감축을 하되 어떻게 질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당분간은 국방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전략적 접근이 잘 짜여져 있으면 국민의 지지를 받고 갈 수 있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 단계적 군축도 가능하다.

김종대 : 이러한 사안들이 남북 군사 공동위에서 논의하고 다뤄질 수 있는 의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할 경우 남북 군대가 공동 상황실을 운영하고 신변 보장에 대한 굉장히 높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할 수도 있다. 또 양측 군대가 상호 교류 및 참관하면서 신뢰 구축 조치를 과감하게 해나가면, 구조적으로 군비를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

프레시안 : 그런 것들이 주한미군이 있는 상황에서도 가능할까?

김종대 : 고 노무현 대통령이 통찰했던 점이 바로 이런 부분인데, 대외 의존성을 극복해 나가면서 자주적인 군사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평화로 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북 간 협력적 안보, 공동의 방역과 지구적 위협에 대처하는 공동 안보 개념들을 제시해 나가고 그런 맥락에서 군사력을 조정해 나간다면 설득력이 높아지니까 현실성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선행 과정이 없다면 괜한 갈등만 겪다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정욱식 : 남북 사이의 군비 경쟁이나 안보딜레마 격화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우리의 안보적 합리성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가 국가전략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우선 식별이 중요하다. 남북 간 군비 경쟁과 안보 딜레마 격화를 최소화하면서 더 나아가서는 단계적 군축에 접근해 나가면서도 주변국 위협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면 북한 수뇌부에 대한 참수부대 창설 계획은 박근혜 정부 때 나왔지만 이에 대한 실행은 문재인 정부 때 13특수임무여단이 창설되면서 완성됐다. 또 미래 합동 전쟁 개념을 도입해서 입체 기동부대를 창설하고 강화시키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는 적잖은 예산이 들어간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병력도 줄이고 북한과 군사 합의도 이뤄냈지만 이런 부분들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식별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적절한 수준의 대북 억제력도 유지하고 주변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확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향후 미국 안보 전략의 중요한 화두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미국에서는 '안보의 경제성'을 주목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어마어마한 군사력 투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관점이다. 미국이 이른바 '세계 경찰'하지 말자는 방향성이 커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미 동맹은 강화되고 주한미군은 많아져야 한다면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비롯해 한국 정부의 역할 확대 요구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미국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에 F-35 전투기를 가져다 두는 것보다 미사일을 몇 기 갖다 놓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저렴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안보 위협이 초래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안보 경제성'이라는 측면을 강조해서 될 수 있으면 미국의 전략 자산을 줄이고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전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런데 최근에 사드 장비가 또 반입됐다. 이런 상황이라면 주한미군이나 미국이 바라는 안보상과 남북이 원하는 안보상이 조화가 가능할까?

김종대 : 우리의 의지대로 안보를 운용할 수 있는 준비를 갖췄는지의 문제가 있다. 지금은 유엔사령부의 행태만 봐도 그렇고 상당히 비관적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부분들을 돌파하려면 우리 스스로 자주적인 국방개념들을 정비하고 강화하면서 지나치게 공격일변도의 소모적인 국방 체제, 지속가능하지 않은 국방 체제를 규명해 내야 한다.

국방비는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라 구조 자체가 다량의 군사비를 소모하는 양상으로 설계가 돼 있다. 실제로 지금부터 무기 도입을 줄인다고 해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첨단 무기를 운영하고 정비하는 예산이 있기 때문이다.

운영 및 정비 예산은 매년 20%에 가까운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추세라면 2030년 이전에 무기 도입 예산과 맞먹을 것이다. 이러한 부문에서 우리는 준비가 안된 상태라서 전략자산 문제만 하더라도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다소 무모한 부분이 있다.

우리가 그동안 북한의 위협에 끌려다니다 보니 단기간에 전략자산을 들이는 것이 최고의 안보인 것처럼 운영이 되었고, 이에 앞으로 국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선 멈춤을 생각해 봐야 한다. 군비를 짜임새 있게 운영하면서도 주변국과도 협력을 도모할 수 있는 안보 개념을 제시해야 한다.

또 최근에는 미래통합당을 비롯해 보수층의 안보 공세도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도 한결 완화됐다. 이후 10~20년을 내다보면서 한국이 협력과 안보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내보이는 것에 도전해볼만 좋은 여건이 열린 셈이다.

▲ 지난 5월 29일 오전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군 장비들이 들어가고 있다.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앞서 노후장비 교체를 위한 육로 수송 작업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코로나, 한반도 판을 바꿀 수 있을까

프레시안 : 코로나 19 초기에 개성공단에서 마스크를 생산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코로나 19가 한반도 정세의 판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김종대 : 계기는 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19가 비단 남북관계 문제가 아니라 지경학, 지정학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갈등을 강화시키는 측면도 있지만 코로나 19는 범지구적인, 인류애를 기반으로 초국가적인 협력이 있어야 극복 가능한 문제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방역지원을 이야기하고 트럼프가 의료 물자의 북한 반입을 승인하겠다고 밝힌 것을 보면 상황에 따른 관리 방식이 달라질 가능성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지금 한반도에서 소통되고 있는 언어를 보면 가장 사랑스러운 언어로 상대방을 협박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당신, 나는 당신밖에 없어요, 그러나 배신하면 죽이고 싶어요" 라는 식의 연애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애정을 재확인하면서 그 다음은 협박을 일삼고 있는 건데, 북미 간에 어느 쪽이든 배신당하면 사랑이 원한과 증오로 바뀐다는 메시지를 깔고 사랑고백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식의 언어는 계속되겠지만 판을 깨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해준 것은 없지만, 상대방이 무엇인가를 해줄지도 모른다는 끈은 유지하는 아주 기이한 관계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변화 가능성을 보려면 일단 향후 일어날 변수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가 유행하면서 북한은 가장 먼저 중국 국경을 봉쇄했다. 이러면서 민생에도 문제가 생겼고 아무리 문을 걸어 잠근다고 해도 방역은 여전히 문제다.

이같은 상황에서 남북 간 교류‧협력 물꼬를 트기도 곤란한 국면이 됐다.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가동이 가능하겠나? 올 여름에 또 어떤 전염병이 번질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교류가 차단된 것도 그럴듯한 이유를 제공해 준 셈이 됐다.

여기에 미중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북한도 최근 여기에 끼어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는 이제 5개월 정도 남은 것이나 다름 없다. 이런 저런 상황으로 따져봤을 때 어차피 현 국면은 '관리'가 핵심이다. 당장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거나 개선시킬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 플레이어들이 한반도의 판을 깰 수 있는 도발이라든가 전략적 공세 등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정욱식 : 남북관계, 한반도 문제에서 코로나 19가 국면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려면 일단 우리가 변화해야 한다. 계속 북한한테 지원할테니까 받아라, 대화하자고 하는데 북한은 자기들은 코로나 19 확진자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어떤 지원을 받겠나.

올해 봄에 코로나 19 때문에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축소됐는데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도 우리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또 코로나 19 이후로 민생 문제가 많이 조명되고 있는데, 이럴 때 복지비와 군사비 논쟁을 공론화시켜야 한다. 한정된 자원에서 엄청나게 많은 군사비를 투입하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다.

문장렬 : 국민들과 소통이 중요하다. 정부가 정책을 발표할 때도 그렇고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서 정책 방향을 미리 이야기하고 그 노력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 내 마스크 생산 문제만 하더라도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정부가 "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조건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라는 정도의 입장을 표명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19 이후 남북 간 방역협력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정말 지엽적인 수준이고 완전 헛다리 짚은 것이나 다름 없다. 남한이 북한에 무엇인가 보여줘야 한다. 어느 정도 손해 감수하면서 미국에 할 말을 하고 남북 간 전향적 조치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일단 말로 해놓고는 그 다음에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않는 한 북한은 남한과 협력을 할 실익이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김종대 : 코로나 19 국면에서 우리가 최초로 전 세계에 중견국가로서의 힘을 과시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이 스스로의 위상을 세계에 각인시키는데 꽤나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한국의 국가 파워와 놀라운 시민들의 역량, 해당 기관등의 헌신성 등으로 인해 이룬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에 강대국과 서구에 대해 가지고 있던 고질적 열등의식 및 수세적‧방어적이었던 한국의 외교가 보다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될 수 있는 타이밍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다. 그간 남북관계나 한미관계에 있어 우리가 수세적으로 대응했지만, 이를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남북관계도 새로운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

문장렬 : 대개 집권 3년이 지나면 정부가 힘을 잃는데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19 이후 더 힘을 받고 있다. 국가 전략 차원에서 현재의 힘을 활용해야 하는데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의 국가 역량이 꽤 괜찮다는 것이었다.

또 코로나 19를 통해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단순히 그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무기나 군사력뿐만 아니라 외교와 평화적 국가 행위,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안보가 군사만이 아닌, 인간안보가 중요하다는 것이고 이것이 코로나 19를 통해 확인된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무턱대고 국방비를 삭감하자는 건 아니다. 안보와 국방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효과적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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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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