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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강간', 13세 미만에서 16세로 올리면 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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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제강간', 13세 미만에서 16세로 올리면 끝인가요

[집담회] 16세 미만의 '동의' : 가해자 처벌과 역량 보장 사이에서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를 계기로 미성년자의 심리적 의존성을 이용한,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가 주목받았다. 그 결과, 의제강간 연령을 만13세 미만에서 만16세 미만으로 올리는 형법개정안이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했다. 의제강간이란 합의를 했거나,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만 13세 미만의 사람과 성관계나 성추행을 하면 무조건 처벌하도록 규정한 법률이다. 기존 만 13세 미만이라는 의제강간 기준 연령이 낮아 미성년자의 동의를 이유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반영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준 연령만 상향했다고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가 근절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4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집담회를 열고 '의제강간 연령 상한'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이번 집담회는 현장으로 기획됐으나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세계 180개 국가 중 의제강간 연령은 16세가 73개국으로 가장 많고 18세가 40개국, 14세가 24개국이다. 온라인 상 그루밍 성폭력 등의 범죄의 심각성이 떠오르면서 의제강간 연령 상향 움직임은 더 많아지고 있다.

아동·청소년의 '동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있는가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는 "'동의'에 대한 논의에서 삭제되는 맥락들을 짚어봐야 한다"며 "아동·청소년은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었고 성적 주체이기보다 성적 대상으로 여겨졌다. 동의 능력이 아예 없다고 간주됐다"고 지적했다.

나영 대표는 "피해자를 자율성을 지닌 개인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19일 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개정된 성폭력특례법 제13조에서는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하여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음향, 글, 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영 대표는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이라는 표현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어떻게 침해하느냐를 따지는 게 아니다"라며 "가해자의 행위, 국가가 통제하는 규범과 도덕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나영 대표는 "'동의'에 초점을 맞추면 현재 법체계에서 성폭력을 다루는 기준은 달라질 것"이라며 "가해자의 행위를 기준으로 하는 기존의 법체계에서 피해자의 맥락을 기준으로 하는 법체계로 바뀐다"고 말했다.

즉, 가해자가 어떤 행위·무슨 도구·어떤 신체부위를 이용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행위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했느냐·합의됐느냐·평등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 기준이 달라질 것이란 얘기다. 나영 대표는 여기에서 "명시적이고 분명한 동의, 지속적인 동의가 있어야 그 행위가 서로를 존중한 관계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성년자의 '동의'에 따라오는 다른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영 대표는 "폭력이나 차별,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자신의 욕망을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권리 등 '성적 권리'를 보장해야한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4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만16세 미만의 동의' 집담회를 열었다. 집담회에서는 의제강간연령을 올리는 과정에서 놓친 여러 논점들을 짚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아동·청소년의 특성 고려해야...그 '동의'는 정말 '동의'인가

권현정 탁틴내일 아동청소년 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그루밍' 범죄의 심각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부소장은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 지원에서 어려운 것은 아이들이 성적으로 이용되고 있는데도 이를 사랑으로 인식해 가해자를 처벌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례를 볼 때"라며 "사랑하는 사람이 할 행동이 아닌데, 미성년자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만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에 따라 명백히 성인 가해자가 아동·청소년 피해자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했음에도 피해자가 원치 않아 처벌되지 않은 사례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 부소장은 "이를 '동의'로 해석하는 건 법의 사각지대"라고 지적했다.

권 부소장은 아동·청소년의 취약성을 강조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을 들어 '젠더 차이에서 오는 취약성과 함께 성인과의 관계·연령차에서 오는 취약성이 있다는 전제를 들었다. 미성년자를 그루밍하는 성인 가해자들은 물질적인 면에서나 정보, 도움을 준다거나 진로상담을 해주는 등 지적자산에 있어서도 미성년자의 환심을 사기 충분하다는 점에서다.

권 부소장은 "그루밍 범죄를 목적으로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하는 성인들은 공감능력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뛰어난 공감능력을 발휘해 정서적으로 지배하기도 한다"며 "그런 상태의 미성년자가 하는 '동의'를 과연 '동의'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정말 '연령'만 문제인가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공동대표는 '연령'으로만 자격을 나누는 것이 타당한지 물음을 던졌다.

양 대표는 "우리사회가 청소년에게 금지한 것은 연애·섹스·임신·출산만이 아니"라며 "사생활을 가지는 것, 쾌락을 추구하는 것, 생애주기를 벗어나는 것, 독립된 인격으로 사는 것 그 자체"라고 꼬집었다.

양 대표는 성폭력이 무능한 피해자 개인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권력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동의 여부를 살펴보기 전에 개인의 동의 능력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동의하지 않음'을 선택할 수 있었는지도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설령 동의 했더라도 가해자와의 관계 속에서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구조에 대한 고민을 빠뜨려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양 대표는 "성폭력은 성별·경제력·나이·장애 등 여러가지 조건이 교차로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폭력"이라며 n번방 같이 전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사건이 발생하자 성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고민은 삭제된 건 아닌지 아쉬워했다.

양 대표는 '동의하지 않음'을 선택할 때에도 여러 사회적 자원과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위계를 만드는 요인은 너무 다양하고 세상의 다양한 관계만큼 다양한 위계가 존재한다"며 "연령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여러 관계의 연장선에서 연령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성 청소년은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피해자'로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위계를 어떻게 다루고 협상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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