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지난 24일 중국 관영 CCTV와 인터뷰에서 "중한은 우호적 이웃"이라며 "핵심 문제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왔으며, 홍콩 문제도 예외가 아니"라고 말했다. 아울러 홍콩 국가보안법에 대해 "한국 측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것으로 믿는다"고도 밝혔다.
싱하이밍 대사가 한국 측의 "이해와 지지"를 얻을 것으로 "믿은" 이유가 있다. 중국의 눈으로 보기에 한국은 충분히 중국의 조치를 이해할 만한 국가다.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통과됐다. 2885명의 전인대 위원 중 2878명이 찬성했다. 6명이 기권했다. 반대는 단 한 명이었다.
홍콩의 민주주의에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이 같은 행위와 연계된 해외 세력을 처벌 대상으로 한다. '국가 분열'이나 '국가 정권 전복'이란 무엇을 뜻하느냐를 두고 해석의 여지가 크다. 시위도 이론적으로는 처벌 가능하다. 홍콩 민주주의가 죽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글에선 일단 '미중 갈등'과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까지 오게 된 국제 정치적, 지정학적, 군사적, 경제적 논의는 제외하겠다.
홍콩 국가보안법에 대해선 한국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특히 보수언론이 중심이 됐다. 세계적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처하는 한국 정부가 민주주의 말살 정책을 펴는 중국에 단 한 마디의 우려도 전하지 않은 건 문제라는 지적이 중점 논리다.
한때 박근혜 정부 '실세'로 불렸던 윤상현 의원이 거들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제사회는 이 법(홍콩 국가보안법)을 인권보호에 반하는 통제법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촛불혁명 정부(문재인 정부)는 인권에 침묵하고 있다"면서 "홍콩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분명하게 말하라. 우리 국민이 바로 지금 홍콩 시민들이 수호하려는 그 민주주의를 지켜온 국민"이라고 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발언은 오만했다. 중국은 사실상 한국에 침묵을 요구했다. 충분히 외부의 부당한 압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불편하다.
한국에는 국가보안법이 있다. 1948년 제정됐다. 홍콩보안법과 마찬가지로 국가 반란 목적을 지닌 자를 처벌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법에서 규정하는 '이적 행위'는 고무줄 잣대고, 관심법을 필요조건으로 하는데다 심지어 '불고지'도 죄로 다스린다. 숱한 이들 이 법으로 인해 법정에 끌려갔고, 숱한 이들이 이 법으로 인해 '빨갱이'라는 오명을 썼다. 홍콩 국가보안법과 다르지 않다. 이미 중국 본토에서도 마르크스를 따르며 부패한 중국 당국을 비판한 많은 학생과 운동가들이 반민주적인 처벌로 인해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짚어야 하겠다. (☞관련기사 : 중국에서 좌익 활동가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 법의 모태가 일제의 치안유지법이라는 점도 되새겨야 한다. 천황 체제를 부정하는 이를 처벌한다는 목적으로 1925년 일제가 만든, 반민주 법안이 치안유지법이다. 치안유지법-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은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목적을 지녔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
더 논쟁할 것이 없다. 홍콩보안법이 홍콩 민주주의의 사망 선고라고 주장하는 이들,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이들은 무려 70년 넘게 한국의 민주주의를 훼손한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같은 목소리를 내야 맞다. 홍콩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수 언론도, 보수 정치인들도 "당당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한국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해야 앞뒤가 맞다.
그렇지 않는다면, 홍콩보안법을 향한 저들의 목소리는 허황된 구호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이해할 것"이라는 싱하미잉 대사의 저 인터뷰에 숨겨진 메시지가 들리지 않는가.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도 국가보안법이 있다. 홍콩보안법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왜 '반성'은 국가보안법 가해자의 몫이 아니고 국가보안법 피해자의 몫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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