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약 34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결합한 연대체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이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을 전면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정의로운 그린뉴딜을 위한 7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정부가 기존에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분보다 훨씬 강한 감축 목표 제시와 더불어 대규모 재정투자, 탄소배출 산업 규제 강화, 민주적인 전환 등이 제시안에 담겼다.
비상행동은 아울러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삭턴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제주 제2공항을 비롯한 신규 공항 건설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산중공업 등 재정 투자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는 강력한 고용 유지 조건을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7일 서울 중구 유네스코회관에서 열린 비상행동의 토론회 '코로나와 기후재난시대, 어떤 '그린뉴딜'이 필요한가'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선철 비상행동 집행위원은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은 애초에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 없는 경기부양책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한국판 그린뉴딜, 내용 없다
정부와 여당이 그린뉴딜 개념을 처음 공개적으로 제시한 때는 총선 이전인 지난 3월 16일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탄소제로사회 그린뉴딜을 위한 약속'이라는 이름의 총선 공약을 제시했다. 공약에서 여당은 '2050년 탄소제로 사회'를 목표로 내세웠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안은 전하지 않았다. 이미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해당 내용을 목표로 제시한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해당 목표 달성 방법은 전혀 내놓지 않았다.
이후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 비상경제회의에서 기간산업 안정기금 40조 원과 50만 개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한 '한국판 뉴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빠졌다는 비판이 일자,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비공개 각료 토론에서 일자리 창출과 외교적 접근 필요성을 근거로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등 4개 부처에 그린뉴딜 관련 보고서 제출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각료들의 격론 끝에 정부는 같은 달 20일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포함한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그린뉴딜 채택 과정에서 정부는 전환의 비전도, 제대로 된 실행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고 김 집행위원은 주장했다. 국제 사회와 국내 환경단체의 여론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그린뉴딜을 성장 동력의 하나로 집어넣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김 집행위원은 "올해까지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에 탄소저감 대책 제출 의무"가 이미 있는 한국이 "더는 녹색전환 과제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이 그린뉴딜 채택의 배경"이라며 "이런 문제의식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 동기와 맞물려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그린뉴딜 목표가 포함된 한국판 뉴딜의 핵심 방점은 경제성장에 찍혔다는 지적이다.
그린뉴딜=녹색성장?
김 집행위원은 "여전히 정부는 탄소배출 제로의 구체적 목표와 경로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정부의 그린뉴딜이 일관성 있게 진행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정부의 그린뉴딜은 기후위기 대응과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한 구조적 개혁과 거리가 먼 경기부양책"일 가능성이 크다며 "기후정의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2018년경 미국의 오카시오 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 영국 노동당 그린뉴딜 그룹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 쟁점화한 그린뉴딜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선진국, 대기업 등 기후위기 책임이 큰 집단이 전환 과정에서 큰 부담을 안아야 한다는 원칙이 기후정의다.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정의로운 전환 원칙이다.
이 같은 철학적 고민에서 출발한 영미권 그린뉴딜 개념과 정부가 제시한 그린뉴딜 개념이 같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문 대통령이 그린뉴딜 개념을 한국판 뉴딜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한 지난 20일,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무엇이 다르냐'는 언론 질문에 "녹색성장을 갈아엎자는 게 아니"라며 "지금 시대에 맞게 (녹색성장을) 강화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답했다. 애초 한국 정부가 제시한 그린뉴딜 개념은 전환과 거리가 멀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정의로운 전환 위해 기후에너지부 신설해야"
대안으로 김 집행위원은 지난 총선 당시 정의당과 녹색당이 제시한 그린뉴딜 개념을 포괄해 '정의로운 그린뉴딜을 위한 7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이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지난 총선 시기 제시한 그린뉴딜을 위한 26대 세부정책안의 일부다.
해당 과제는 △지구기온 상승 1.5도 제한 목표를 제시한 IPCC 권고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화, 친환경 대중교통, 친환경 농업, 생태계 보존을 위한 대규모 재정투자 △재난구호체제 및 공공의료체제 강화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 규제 강화 및 전환 △모든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기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전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 우선 구제 △신규 석탄발전소와 신규 공항 건설 중단 및 고용 유지와 기후보호 조건을 전제로 두산중공업 지원 등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탄소배출 규제다.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이 지난 2월 5일 환경부에 제시한 한국의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에 따르면, 현재 한국 정부의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는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 7억910만 톤의 75%(최대안)~40%(최소안) 감축이다.
이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감축, 2050년 넷제로'를 제시한 IPCC 목표안에 전혀 근접하지 못한 방안이다.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사실상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한국은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함께 경제 규모 대비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비상행동은 "세계 7위 규모인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모와 기후정의 원칙을 고려하면, 한국은 더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2030년에 2010년 대비 50% 이상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2050년 이전에 탄소배출제로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상행동은 아울러 그린뉴딜이 국정 철학이 되게끔 하기 위해 앞으로 모든 정부 정책과 예산 수립에 기후영향평가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사전 예방조치로 "한국이 이용할 수 있는 총 탄소예산을 설정하고, 기간·연도별 탄소예산을 할당해 매년 관리하는 탄소예산제도"를 마련해야 그린뉴딜이 국정 철학이 될 수 있다고 비상행동은 주장했다.
그린뉴딜이 전환 시대 경제성장의 도구인지, 목표인지를 명확히 하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비상행동은 또 산자부, 환경부 등 여러 부서에 흩어진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문을 통합한 '기후에너지부(가칭)'를 신설해 대응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전했다. 또 전 정부부처를 포괄하는 기후위기대응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치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아울러 노동자와 농민 등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이들의 참여 권리를 보장하고 구체적인 피해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비상행동은 강조했다. 실제 녹색전환을 두고 특히 노동계는 재계 못잖게 우려할 가능성이 크다. 그린뉴딜에 따른 전면적인 전환은 결국 일자리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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