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정책이 차질 없이 집행되더라도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의 4.3%,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의 25%만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 대책이 금융지원 위주의 재벌 도와주기인 '재난 자본주의'에 그쳐 추가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21일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시장과정부 연구센터 소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0와 사회연대전략' 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이 지적하고, 제대로 된 그린 뉴딜을 준비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노회찬재단이 주최하고 6411사회연대포럼이 주관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박 교수를 비롯해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이창근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6411사회연대포럼은 오는 7월까지 매달 1회씩 관련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정부 정책 중 재정정책 비중 14% 불과
코로나19 대응 정부 대책은 날짜별로 3월 17일 국회를 통과한 추경을 비롯해 민생·금융 안정 패키지와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3월 19일, 3월 24일), 소득하위 70%를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4월 30일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 중 코로나19 사태로 직접적인 경제적 타격을 받은 취약계층(중소기업, 영세소상공인,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겨냥한 대책 핵심은 지난 달 22일 열린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나왔다. 이전 정부가 발표한 대책 대부분은 대규모 기업 금융지원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는 5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10조1000억 원 규모의 긴급고용안정대책 △35조 원 규모의 회사채 매입 및 소상공인 지원 △40조 원 규모의 기간산업 안정기금 조성 등의 추가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의 긴급고용안정대책은 9조3000억 원 규모의 3차 추경에 8000억 원 규모의 예비비(합계 10조1000억 원)로 충당된다. △52만 명을 대상으로 휴직수당의 90%까지 보전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지원(9000억 원) △32만 명의 무급휴직자 신속 지원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영세사업자에게 고용안정지원금 3개월 간 50만 원 지원(1조5000억 원) △20만 명의 취약계층 지원 확대(4000억 원) △55만 개 일자리 창출과 66만 명 실업자 지원이 핵심인 '한국판 뉴딜'(7조3000억 원)이 정책 골자다.
이에 더해 35조 원 규모의 소상공인 지원과 회사채 매입, 40조 원 규모의 기금채 발행을 통한 기간산업(항공, 해운, 자동차, 조선, 기계, 전력, 통신) 안정기금이 정책 패키지로 나왔다.
세출이 핵심인 대책은 긴급고용안정대책(10조1000억 원)이다. 이전에 나온 대책까지 모두 더하면 정부가 발표한 전체 대책 중 재정 정책 규모는 33조9000억 원 수준이다.
박 교수는 "현재까지 정부가 발표한 대책 규모는 총 244조9000억 원 수준이지만, 이 중 재정지원 규모는 전체의 14%에 불과하다"며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지원에는 매우 부족하다"고 전했다.
"3차 추경으로 도움받는 중소기업 4.3% 불과"
박 교수는 "2017년 말 현재 전체 중소기업 630만 개 중 영세자영업자, 특고노동자, 프리랜서 등을 제외해도 사업자 수는 약 300만 개에 달한다"며 "이들이 정부가 마련한 전체 대책 26조4000억 원을 2000만 원씩 지원 받는다 하더라도, 실제로 도움을 받는 기업은 13만 개(4.3%)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도움이 필요한 중소기업 90% 이상은 위기를 버틸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프리랜서와 특고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 93만 명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고용안정지원금 역시 규모가 미미해 실효성이 없다고 박 교수는 평가했다.
박 교수는 "정부가 3개월 간 50만 원의 고용안정지원금(총 1조3950억 원)을 93만 명에게 지원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해당 인원은 약 400만 명"이라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25%만 지원을 받을뿐더러, 일인당 지원 금액이 너무 작고 지원 기간도 짧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아울러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임금노동자 680만 명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고 질타했다.
특히 박 교수는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처럼 록다운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생각보다 고용 지표 악화 속도가 빠르다"며 "특히 상용직과 고용보험 피보험자 증가폭이 줄어드는 등 고용의 질도 나빠져 우려돼,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4월 취업자 수는 전년동월대비 47.6만 명 줄어들었다. 특히 충격이 예상됐던 서비스업 종사자뿐만 아니라, 제조업 취업자 수까지 줄어들었다. 아울러 지난 달 일시휴직자는 148만5000명을 기록해 두 달 연속 100만 명을 넘어섰다.
"재정 여력 충분...경제구조 전환 시급"
박 교수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펴 소상공인과 취약계층 지원을 신속히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 신화에 집착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도 질타했다.
박 교수는 "지난해 기준 한국의 국가 채무는 국내총생산(GDP)의 39.5%에 불과해 미국(136%), 일본(223%)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9%에도 크게 못 미칠 정도로 건전하다"며 "지난해 한국의 명목 GDP가 1914조 원에 달하는 만큼, 재정 여력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한국 정부가 제시한 코로나19 대비 재정정책 재원 규모(33조9000억 원)는 GDP 총량(1914조 원)의 1.8% 수준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이는 영국, 프랑스의 수준과 비슷하다. 하지만 영국(2018년 기준 112%)과 프랑스(123%)에 비해 국가채무 수준이 매우 낮은 한국은 재정 지출 여력이 더 크다.
박 교수는 "미국과 독일은 각각 GDP의 6.3%, 4.4%를 재정지출로 집행할 계획이며, 상황에 따라 추가할 수 있다"며 "한국 역시 GDP의 2%에 달하는 대규모 재정지출을 예정하고 있지만, 정작 지원이 필요한 이들에 관한 지원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신속한 3차 추경 집행과 더불어 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등의 추가 대책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한국 경제를 "지속가능한 경제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그린 뉴딜의 필요성을 제시한 셈이다.
박 교수는 "여태까지 포스트 코로나19 정부 대책은 뉴딜이 아니라 '올드 딜(old deal)'"이었다며 "개혁이 아니라, 재난 자본주의적 규제 완화에 불과했다"고 질타했다.
박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하기 위해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개혁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한편, 혁신 경제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 개혁도 필요하다"며 "재벌 중심 체제를 빨리 개혁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대재앙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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