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구진천의 애국심과 개인의 욕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구진천의 애국심과 개인의 욕심

[박병일의 Flash Talk]

한국의 경제발전을 논함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국제화이고, 수출주도형 정책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이다.(한국은 2017년 현재 수출 5247억 달러를 시현하여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무역뿐만 아니라,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대폭적으로 시장을 개방하였고, 이로 인해 수많은 다국적기업들이 자유롭게 한국 시장에서 영업을 영위하고 있다. 즉, 외국인 혹은 다국적기업은 법률에 특별한 예외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약 없이 국내에서 사업을 수행할 수 있지만, 국가의 안전 유지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그 투자가 제한된다.

한편 국가의 안전 유지에 지장을 초래하는지 여부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인데, ① 방위사업법에 따른 방위산업물자의 생산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② 대외무역법에 따른 수출 허가 또는 승인 대상 물품 등이나 기술로서 군사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거나, ③ 국가정보원법에 따라 국가기밀로 취급되는 계약 등의 내용이 공개될 우려가 있거나 또는 ④ 국제평화 및 안전유지를 위한 국제연합 등의 국제적 노력에 심각하고 중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즉, 외국인투자가 제한되는 주요 핵심은 방위 및 군수산업으로 요약 가능하며, 군수산업에 외국인의 투자를 제한하는 이유는 바로 국가 안위와 밀접한 연관을 갖기 때문임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국방 기술의 유무와 집약도가 국가의 존폐를 결정함을 우리는 과거 임진왜란의 예에서도 여실히 목격한 바 있다.

"신은 일찍이 왜적들의 침입을 걱정하여 별도로 거북선을 만들었는데, 앞에는 용머리를 붙여 그 입으로 대포를 쏘게 하고, 등에는 (적병들이 우리 배 위로 올라오지 못 하도록) 쇠못을 꽂았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하여, 적선 수백 척 속에서도 쉽게 돌진하여 포를 쏠 수 있게 되어 있기에 이번 출전 때에 돌격장이 그것을 타고 나왔습니다."

이는 이순신 장군이 당포 해전 보고서인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 언급한 거북선의 뛰어난 장점이다. 많은 이들은 거북선이 임진왜란을 대비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 거북선은 <태종실록>에 처음 등장하는 바, 1413년(태종 13) 2월 5일 '임금이 임진도를 지나다가 귀선(龜船)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라는 글을 발견할 수 있다. 이후 조선 수군의 지휘관이었던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을 대비하여 귀선을 거북선으로 개량 건조하였고, 임진왜란 중 사천 해전에서 첫 출전한 이래 칠천량 해전에서의 패배 전까지 일본 수군과의 전쟁에서 16전 16승을 거둠으로써 멸망의 위기에 있던 조선을 구한 최대 수훈갑이었다. 이 때문에 국사편찬위원회의 <신편 한국사>도 '무모한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임진왜란을 실패로 끝낸 결정적인 요인의 하나가 그들 수군의 패배에 있었다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군수산업에 종사하는 인력은 고도의 연구력뿐만 아니라 애국심이 밑바탕 되어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 이유를 다음의 사례에서 살펴보자. 신라 문무왕 9년(서기 669년), 당의 사신이 와서 신라의 비밀병기인 '쇠뇌'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인 구진천을 중국으로 데려가고자 했다. 쇠뇌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천보(一千步)를 날아갈 수 있는 최신식 활이었다. 신라는 구진천을 당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으나, 딱히 당 황제의 명을 거역할 힘도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그를 중국으로 사신과 동행케 한다. 당나라로 간 구진천은 그곳에서 쇠뇌를 만들게 되었고, 동 신무기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당 황제는 직접 시현회에 참석하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쇠뇌는 불과 30보만을 날아간 뒤 떨어졌다. 이에 크게 실망한 황제는 그 이유를 구진천에게 물었는데, 그는 신라가 아닌 당나라의 나무로 활을 만든 게 원인으로 보인다고 답변하였다. 이에 당 황제는 신라로부터 나무를 공수하여 그로 하여금 다시 쇠뇌를 만들게 하였고, 다시 한 번 더 시현회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화살은 60보만 날아간 후 땅으로 곤두박질 친 바, 결과에 크게 낙담한 황제는 나무까지 구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왜 천보를 달아가지 않는지 다시 물었다. 구진천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아마 바다를 건너 당나라로 오는 동안에 나무가 습기를 흡수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답변하였다. 목숨이 위태로웠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신무기 기술을 당나라로 전수하고 싶지 않았던 구진천의 애국심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신라의 3국 통일이후, 신라의 3만 보병과 당나라의 20만 기병은 국운을 건 한판 승부를 겨루는데, 병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신라가 크게 승리하였던 바, 당나라에는 없고 신라에만 있는 쇠뇌의 공이 컸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태원 클럽 발(發) 코로나의 확산이라는 우울한 뉴스 외에도, 이번 주에는 국민을 우울하게 하는 또 다른 뉴스가 있었다. 수조 원대 가치로 평가되는 국산 유도로켓 기술이 UAE로 유출된 듯하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비궁(匕弓)'이라고 불리는 이 유도로켓은 이동식 차량에 최대 36발을 장착할 수 있고, 여러 표적을 동시에 쫓아가 타격할 수 있으며, 국방부 성능 테스트도 통과해 해외 수출 길도 열려 있는 전략무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국방과학연구소(ADD)에 근무하던 연구원이 퇴직하면서 UAE 대학 연구소 이직했고, 군과 경찰은 그가 이 비궁의 핵심 기술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아마도 이 연구원은 거북선을 개량할 수 있었던 연구능력은 있으되, 목숨을 걸고 쇠뇌의 생산기술을 지키고자 했던 구진천의 애국심은 없었던 모양으로, 신라에는 있었던 구진천이 오늘날 현대에는 존재하지 않음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에 자유로운 직업선택권의 제한이라는 혹시 있을 비난에도 불구하고, 군수산업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는 해당 산업에 종사하는 연구 인력에 대해 일정 기간 해외취업을 금지하는 법규의 제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을 소중히 새길 필요가 있으며, 국가가 존재하고, 국제질서가 존속하는 한 과학자에게 있어서 구진천이 가졌던 국가의식과 애국심은 여전히 유효하게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