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궁지에 몰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선 전략을 꺼내 보였다. '오바마 게이트'(Obama gate)다.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겨냥한 글을 100여 차례 올렸다. 이런 '폭풍 트윗'은 앞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사태 대응에 대해 "총체적 재앙"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반격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와 그의 선거캠프는 '오바마 게이트'를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덮어버릴 '카드'로 준비하고 이를 끄집어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이다.
트럼프 "워터 게이트를 능가하는 오바마 게이트"
트럼프는 트윗을 통해 "'오바마 게이트'는 '워터 게이트'를 시시한 삼류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워터 게이트'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민주당에 도청정치를 설치하려다가 발각된 사건으로 이로 인해 닉슨 전 대통령은 하야했다. 워터 게이트는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음험한 정치공작 중 하나로 꼽힌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오바마 게이트'의 핵심 내용은 오바마 정부가 자신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스캔들'은 2016년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했으며, 트럼프 선거캠프의 일부 인사들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러시아 인사들과 내통했다는 의혹이다.
트럼프와 그 주변 세력은 오바마가 2016년 대선 이후 차기 대통령을 끌어 내리려고 미 연방수사국(FBI)과 짜고 정치 공작을 벌였다고 몰아가려고 하고 있다. 공화당 극우세력 모임인 프리덤코커스 회장인 앤디 빅스 하원의원은 12일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2017년 1월 초에 오바마, 조 바이든 전 부통령(현재 민주당 대선후보),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 등이 백악관에서 러시아의 대선 개입에 대해 논의한 회의를 지적하며 "이는 미국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일을 하기 위한 음모였고, 실제로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최측근 플린 기소 취하...재선에 활용하려는 의도?
이런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물이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플린은 트럼프가 당선인 신분이던 2012년 12월 세르게이 키슬라크 당시 주미 러시아 대사와 접촉해 러시아 제재 해제를 논의한 사실이 드러나 국가안보보좌관 자리에서 24일 만에 낙마했었다. 그는 또 FBI의 2017년 1월 조사 때 러시아와 제재 논의를 한 적이 없다고 거짓말한 사실이 드러나 기소됐고, 이후 거짓말 사실을 인정한 뒤 감형 협상을 벌여왔다.
지난 7일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플린이 주미 러시아 대사를 접촉한 것은 적법하기 때문에 FBI의 수사가 부적절했다는 취지로 그에 대한 기소를 취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바 장관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뢰와 용기가 있는 사람"이자 "역사책에 남을 것"이라고 극찬했지만, 법무부와 FBI 전직 관리 2000명은 "정치가 법 결정에 관여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모욕한 것"이라며 바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또 법원이 12일 기소 취하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플린은 육군 3성 중장 출신으로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지내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해임이 됐다. 플린은 트럼프 대선 캠프에 합류했고, 2016년 선거 유세에서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트럼프의 '킹 메이커'로 꼽히는 로저 스톤과 함께 플린은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한 각종 네거티브 공격에 앞장섰다. 그는 힐러리를 상대로 "그녀를 감옥으로!"(Lock her up!)이라는 구호를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때문에 트럼프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플린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측근 감싸기' 차원을 넘어 '오바마 게이트'의 바람잡이 역할을 플린에게 맡기려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선거에서 기존 언론과 다르게 제재 수단이 딱히 없어 '음모론'을 제기하고 퍼뜨리기 쉬운 팟캐스트, 소셜 미디어 등 뉴미디어를 적극 활용해 '진흙탕 선거'를 통해 클린턴을 무너뜨렸던 전략을 다시 쓰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트럼프의 영원한 정적 '오바마 카드', 오히려 역풍 불 수도
트럼프에게 '안티 오바마'는 정치 경력 내내 활용해온 수단이기도 하다. 오바마가 미국이 아닌 케냐에서 태어났다는 의혹을 제기해 결국 출생증명서를 공개하게 하면서 대선 주자로서 자리를 굳혔고, 취임 이후에도 걸핏하면 오바마 정부 탓을 하며 책임을 회피해왔다. 코로나19 정국에서도 오바마 정부의 잘못 때문에 마스크, 인공호흡기 등 의료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의 주장이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안티 오바마' 주장에 반응한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코로나19 사태로 2020 대선에서 정치 인생 최대 위기에 몰린 트럼프 입장에서 '오바마 게이트'는 경쟁자인 민주당 대선후보 바이든도 한 번에 엮을 수 있는 카드다. 바이든은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다.
하지만 '오바마 때리기'가 이번에도 통할지는 의문이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확진율과 치명률을 기록하는 등 코로나19 대응에 트럼프 정부가 실패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음모론'이 난무하는 '진흙탕 선거 전략'이 과연 4년 전과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데일리 비스트>의 칼럼니스트 맷 루이스는 이날 "트럼프가 이제 오바마를 투표용지에 올려놓았다. 이제 바이든 팀은 '내게 투표하지 않으면 트럼프가 오바마를 기소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며 오히려 민주당 지지자들의 결집을 공고히 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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