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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지원금 ‘전액기부’ 철회 소동과 ‘넛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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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지원금 ‘전액기부’ 철회 소동과 ‘넛지’

[기자수첩] 세심하지 못함인가, 배려가 부족한 것인가

코로나19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카드사 홈페이지나 애플리케이션으로 신청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전액 기부를 하게 됐다는 사례가 속출하고, 기부 신청을 취소해달라는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 신청할 때 전체 약관 동의하면 절대 안 됨. 마지막 칸에 기부동참이 있음. 절대 수정 안 됨. 어제오늘(신청 첫날과 이튿날) 난리가 났다고 함. 약관 동의에 하나하나 체크하고 기부동참을 잘 보기 바람. 식구들에게도 홍보 바람.’

기자가 속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단체 대화방에도 이와 비슷한 글들이 수차례 올라왔다.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은 자연스럽게 정부로 향했다.

‘보통 개인정보 동의할 때 그냥 전체 동의를 하는데, 마지막에 기부 체크 항목을 넣어 <강제 기부>를 유도하고 있다. 일종의 <꼼수> 아닌가. 도대체 기부 항목을 왜 만들어 놓았는지…’

우선, 가장 큰 책임은 정부에 있는 듯하다. 당초 카드업계는 지원금 신청과 기부 신청 화면을 분리하자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금 신청 절차를 마무리한 뒤 기부 의사가 있는 경우에만 별도의 신청 항목을 통해 기부할 수 있게 하자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혼란과 불만의 시작점인 셈이다. 애초에 카드사의 방안을 수용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인데, 왜 이런 상황을 만들었냐는 비난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를 잘 설명하는 것이 있다. 팔꿈치로 찌르기라는 뜻의 ‘넛지’(nudge)이다. 간접적인 유도를 의미하는 넛지의 개념 중에는 ‘자동시스템’과 ‘무심한 선택’이 있다.

인간이 어떤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숙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신속하며 무의식적 반응을 하는 경우 당면 과제에 적극적으로 주의를 쏟지 않은 선택과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는 국민들이 무심코 버릇처럼 약관 전체 동의를 한 뒤 나중에 자동적으로 기부 항목에 체크가 돼 자신이 쓸 돈이 하나도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이 같은 논리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이는 정부가 카드사의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수용했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보다 세심한 정책적 배려의 아쉬움을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측면에서는 꼼꼼하고 세심한 결정을 하지 않는 선택자들의 잘못도 크다. 가령 보험에 새로 가입하는 가입자가 ‘그 많은 약관을 어떻게 일일이 다 읽고 체크를 하냐’며 분쟁이 생겼을 때 하소연하듯 분노를 쏟아놓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사실 이런 경우 분쟁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 또한 그리 만만찮은 것임을 선택자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도 하다.

신청 하루 만에 논란이 커지고 불만 민원이 속출하자 기부 취소가 불가능했던 정책방향이 바뀌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정부가 전액 기부자에 한해 기부의사를 취소하면 다음달 18일 주민센터를 통해 지역사랑상품권으로 되돌려주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카드사들도 상담센터나 인터넷 홈페이지, 모바일애플리케이션 등으로 기부 신청 취소 절차를 진행하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혼란을 재빨리 수습하고,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시행된 긴급재난지원금이 국민들의 개별 의사에 맞게 쓰일 수 있도록 방안이 마련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이 국민들의 삶에 끼치는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사전에 보다 꼼꼼하고 세심한 배려가 먼저 있어야 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탈러는 그의 베스트셀러 저서 ‘넛지’에서 ‘우리는 선택설계자(choice architect)가 만들어놓은 세상 속에 산다’고 했다.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무수히 많은 선택설계자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선택설계자는 바로 ‘정부’라는 점을 이번 계기를 통해 여실히 깨달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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