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56년만의 미투' 최말자 씨, 부산지법에 정당방위 인정 재심 청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56년만의 미투' 최말자 씨, 부산지법에 정당방위 인정 재심 청구

재심청구단 "사법부 재심 열어 정의 바로세워야"

"최 선생님은 여자이기 이전에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존중과 보호를 받기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대표자." 김지은 안희정성폭력 사건 피해생존자 (대독 아영아 부산여성의전화 공동대표)

성폭행 시도에 저항하다 가해자의 혀를 잘라 상해죄로 처벌을 받은 최말자 씨(74)가 꼭 56년만인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청구를 했다.

재심청구에 앞서 최 씨와 최 씨의 법률지원단, 한국여성의전화와 부산여성의전화 등 385개 여성·시민단체들은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의 정의로운 변화를 촉구했다.

당사자인 최 씨는 직접 나서 재심청구의 이유를 밝혔다. 최 씨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도 여러 미투 사건이 나오는데 아직도 바뀌지 않은 현실에 분노한다"며 "사법기관과 사법제도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한테 영향을 미친다는 걸 절박하게 생각해서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 같은 여성이 많이 있다고 알고 있다. 이 억울한 상처를 혼자만 끌어안고 있지 말고 당당하게 나왔으면 좋겠다"며 "여성인 게 잘못이 아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심청구단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당시 사법기관은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완전히 묵살했다"며 "강간하려다 '피해자의 방어'로 인해 미수에 그친 가해자의 범행은 기소조차 하지 않고 피해자의 집을 찾아와 흉기로 협박했던 가해자를 불구속으로 수사했다"고 지적했다.

최 씨의 변호인단에 속한 김수정 변호사는 "당시 판결은 피해자에게 행실 책임을 묻는 등 가해자의 범죄 유발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했다. 법원이 나서서 2차 가해를 한 것"이라며 "가해자의 '혀'를 피해자의 인격, 신체의 안전보다 중요한 법익으로 판단했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해당 판결은 '법은 불법에 양보할 필요가 없다'는 기본 사상에 반한 위법한 판결"이라며 재심개시 사유(형사소송법 제420조 제5호)를 들었다. 이어 "'성인지감수성'은 보편적 가치이자 사회 윤리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재심청구단은 최 씨 판결 사례를 단순히 과거 사건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재심청구단은 "가해자의 서사에 동조하며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하고 피해자를 비난하고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사법기관의 모습은 2020년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56년 전 오늘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부당했던 수사 과정과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는 일은 여성폭력을 부당하게 처리해 온 사법기관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폭행 피하려다 혀 절단...이후 피해자와 가해자 뒤바뀌어

최 씨는 19세던 1964년 5월 6일, 집에 놀러온 친구를 데려다 주는 길에 당시 21살이던 노모 씨를 발견했다. 노 씨가 친구를 따라간다고 느낀 최 씨는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노 씨를 다른 길로 유도했다. 20여분 뒤, 노 씨는 최 씨를 넘어뜨리고 성폭행을 시도했다. 최 씨는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노 씨의 혀를 깨물어 1.5센티미터가량 잘랐다.

최 씨는 성폭력 피해보다 사법기관의 태도에 더 괴로웠다. 처음 경찰은 피해자의 주장대로 정당방위를 인정하며 무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이 이를 뒤집었다. 검찰은 조사 첫날 출두한 피해자를 구속했다. 재심청구단에 따르면 당시 검찰은 구속 이유와 변호인 선임권, 진술거부권도 고지하지 않았다. 조사 기간 내내 가해자와의 결혼을 강요하고 고의로 혀를 절단한 것이라고 자백하라고 강요했다.

최 씨는 상해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6개월 동안의 투옥생활도 견뎌야 했다. 2차 가해는 법원에서도 이어졌다. 판결문에는 '만 19세로 처녀인 피해자가 친구를 따라온 생면부지의 남자와 시골길을 걸으며 이십분 정도 말을 주고받은 것 등에 대해 성폭행을 유발한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명시됐다.

반면 최 씨를 성폭행하려던 노 씨에게는 성폭행 미수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말 그대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어' 버렸다. 이후 최 씨는 가족의 냉대와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뎌내며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는 "죄를 지은 자는 처벌을 받고 인권을 침해당한 사람은 국가의 책무성에 따라 인권을 보장 받아야 한다"며 "국가의 책무성을 외면하고 피해자에게 심각한 2차 피해를 안겼던 사법부는 재심을 개시하고, 한국 최초의 성폭력 재심 판결을 통해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6일 최말자 씨의 법률지원단과 385개 여성·시민단체는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부의 정의로운 변화를 촉구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