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릴 정도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킨 최초의 바이러스일 뿐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재편된 글로벌 경제의 약한 고리를 단숨에 끊어버린 최초의 팬데믹이다.
신자유주의적으로 세계화된 글로벌 경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 대공황급 실업사태가 빚어질 정도로 경제적 충격을 받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모두 압도적인 세계 1위라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의 부국이라는 미국이 경제 우선 논리에 가려진 얼마나 비인간적인 사회인지 드러냈다는 것이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영리 위주의 의료시스템, 이른바 '긱 이코노미'라고 불리는 사실상 임시직 노동자들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지탱해온 사회는 호흡기로 전염되는 감염병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4월 29일 발표된 미국 1분기 성장률 속보치는 -4.8%이다. 지난해 4분기 2.1% 성장에서 코로나19 충격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1분기 속보치 성장률이 앞으로 –8%대에 이르는 수정치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코로나19의 충격이 본격적으로 작용하는 2분기 미국의 성장률은 -20% 이상의 역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34%, JP모건은 -40%, 바클레이스는 -45%에 이르는 역성장을 전망했다.
이날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제롬 파월 의장도 "미국의 경제활동이 2분기에 전례 없는 속도로 떨어질 것"라고 경고하면서, 지난 3월 15일부터 이어진 제로금리를 코로나19 이전의 완전고용과 목표 물가상승률이 달성될 때까지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이코노미스트들의 전망 조사를 인용해, 연준의 제로금리 시대가 적어도 2023년, 길게는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경제에 코로나19의 충격이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난 분야는 고용시장이다. 한달만에 무려 2600만 건의 실업수당 신청이 쇄도하는 실업대란이 일어났다. 오는 8일 발표될 미국의 실업률은 20%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케빈 해싯 백악관 경제선임보좌관조차 지난달 26일 “대공황 시절에 가까운 실업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대침체 능가하는 위기 이후 대공황 능가하는 위기 온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예측으로 명성을 얻은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가 내놓는 코로나19발 경제 충격 시나리오는 갈수록 강도가 세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게재된 기고문에서 루비니 교수는 향후 글로벌 경제는 '대침체(Great Recession)'이라고 불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심각한 대대침체(Great Recession)를 겪은 뒤 U자형 회복을 하겠지만, 2020년대 후반에는 1929~193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보다 심각한‘대대공황(Greater Depression)'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루니비 교수는 '2020년대, 대대공황이 닥친다(The Coming Greater Depression of the 2020s)'이라는 기고문(☞원문보기)에서 이런 시나리오의 근거를 10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막대한 재정적자와 부채 규모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공공부채가 지속가능한 한계에 이른 상태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GDP 대비 10% 이상의 재정적자를 추가해야 한다. 민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채무불이행과 파산이 속출하게 된다.
두번째, 코로나19는 고령자가 급증하지만 형편없는 의료서비스를 하는 선진국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의료시스템에 대한 공공지출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
세번재,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결국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진다.
네번째, 코로나19로 글로벌 연결망 해체가 가속화되고, 보호무역주의가 더욱 강화된다. 국산화가 강화된다.
다섯번째, 디지털 혁신에 따른 파괴적 변화다. 코로나19로 비접촉 산업이 촉진되면서 임금이 하락 압력을 받게 된다.
여섯번째,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는 재화, 서비스, 자본, 노동, 기술, 데이터, 정보의 국제적 교류에 제한이 강화된다.
일곱번째, 포퓰리즘이 득세한다.
여덟번째,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대립이 격화된다.코로나19 팬데믹을 서로의 책임으로 돌리는 양국은 무역, 기술, 투자, 데이터, 자본 통제를 강화할 것이다.
아홉번째,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러시아와 이란, 북한까지 포함한 신냉전을 초래한다.
열번째, 인간이 만든 재앙으로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은 기후변화와 비슷하다. 팬데믹과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암울한 징후들은 갈수록 빈번해지고, 심해지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루비니 교수는 "이같은 10가지 요인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이제 글로벌 경제 전체를 장기적인 절망으로 휩쓸고 갈 퍼펙트 스톰을 키우고 있다"고 경고했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해 루비니 교수처럼 비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허상이 드러난 서방 선진국들과 달리 '방역 선진국'으로 떠오른 한국은 특히 입국제한과 주민 이동 통제를 최소화한 민주적이고 투명한 과정으로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총아'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경제 지형의 변화를 지정학 등 다양한 변수로 예측한 연구로 호평받는 경제지리학자 장 폴 로드리게는 지난달 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 그려지는 경제지도에서 부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드리게에 따르면, 중국 등 신흥국은 코로나19 사태로 전염병에 얼마나 취약하지 드러났다. 글로벌 기업들은 전염병 상황이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곳에 생산시설을 두고 싶지 않게 됐다. 한국은 저임금을 활용해 생필품을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반도체와 조선산업, 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서 놀라운 기술 경쟁력을 갖췄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글로벌화가 계속된다. 기술력이 중요하지 않은 분야는 국산화하고, 첨단 분야는 글로벌화가 지속되는 구조적 단층이 형성된다. 한국은 기술력뿐 아니라 투명성도 갖춘 나라다. 투명성과 신뢰는 한국이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얻은 새로운 자산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글로벌 기업이 아주 선호하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로드리게는 "내가 한국 정치·경제 리더라면 ‘첨단제품의 세계공장’으로 브랜딩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한국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세계 공장이 될 만한 곳이다"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패권의 중심축이 서방 국가에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한국 딜로이트 그룹이 지난달 27일 소개한 '포스트 COVID-19 시대의 새로운 노멀'에 대한 시나리오는 향후 3년에서 5년 동안 재편될 세계의 모습을 ▲The Passing Strom (지나가는 태풍, 지속되는 여파) ▲Good Company(이해관계자 자본주의) ▲Sunrise in the East(국제질서의 재편) ▲Lone Wolves(세계적 고립주의) 등으로 묘사했다.
'지나가는 태풍, 지속되는 여파'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난관적인 전제 위에서 서있지만, 이런 낙관적인 전제 위에서도 그 여파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가 예상보다 길어질 경우는 민관협력이 강화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힘을 얻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국제질서의 재편' 시나리오에선 동아시아 국가들이 적은 경제적 타격을 입은 후 빠르게 회복되어 세계의 중심으로 급부상 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더욱 심각한 사태로 지속되면 서로에 대한 의심과 경계를 강화하는 '세계적 고립주의'가 득세한다는 것이다.
한국 딜로이트그룹은 "이번 시나리오는 코로나 위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가능성의 차원에서 제시하고 있다"면서 "네 가지 시나리오 중 한 가지가 실현될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타날지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밝혔다.
이 시나리오 중 '국제질서의 재편'이 당장 한국의 희망이 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 전반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나홀로 호황'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4월 수출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면서 2012년 1월 이후 99개월 만의 무역 수지 적자를 기록했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코로나19가 본격화함에 따라 글로벌 수요 위축, 조업일수 감소 등의 요인으로 지난달 수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24.3% 감소한 369억2000만 달러에 그쳤다고 밝혔다. 수입은 15.9% 하락한 378억7000만 달러로 상대적으로 수입 감소폭이 적어 무역수지는 9억50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그나마 정부는 "내수와 제조업 생산·투자 활동 등이 다른 나라보다 양호한 흐름을 보이면서 수입이 수출에 비해 적게 줄어들었다"며 "일시적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했다"면서 긍정적인 측면도 부각시켰다.
하지만 지난달 29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정례브리핑을 통해 "코로나19 충격 여파가 2분기에도 지속하면서 하방리스크는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신흥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빠르게 증가한 데다, 금융시장 불안 조짐도 나타나고 있어 신흥국 경제 불안이 글로벌 경제의 하방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루비니 교수는 2030년경에는 보다 협력적이고 안정적인 국제질서가 세워질 가능성도 있다면서 "하지만 다가오는 대공황에서 살아남는 방법부터 찾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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