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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화재 참사 12년 전과 판박이...막을 수 없던 재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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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화재 참사 12년 전과 판박이...막을 수 없던 재해 아니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21대 국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반드시 만들어야

“또 ‘불쏘시개 패널’…이천서 큰 불 대참사” 4월 마지막 날인 30일 아침 한 조간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세월호의 달‘이자 ‘잔인한 달’ 4월은 2020년을 대형 화재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면서 사라져간다. 적어도 38명이 숨진 이천 물류공장 화재는 단순 화재사고가 아니다. 이는 중대 산재 사건, 즉 중대재해임을 명토 박는다.

이번 사건은 어쩔 수없이 발생한 것이 결코 아니다. 막을 수 없던 재해가 아니다. 명명백백한 인재다. 전문가와 언론은 일제히 12년 전 이천에서 잇달아 일어났던 대형 화재 참사 사건들을 조명한다. 당시 사건들과 거의 판박이 성격의 사건이 이번에 다시 벌어졌다는 것이다.

2008년 12월 5일 일어났던 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건은 발생 시각과 발생 원인 측면에서 이번 사건과 너무나 비슷하다. 당시 12시 20분께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위치한 GS리테일 서이천 물류창고에서 용접작업을 하던 도중 불꽃이 튀면서 샌드위치 패널로 옮겨 붙어 화재가 발생해 이곳에서 냉동 분류작업을 하던 노동자 8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당했다.

인명 피해 규모와 건물 내 최초 발생지점이 이번 사건과 거의 같은 이천 냉동 창고 화재 사건은 2008년 벽두인 1월 7일 호법면에 있던 (주)코리아2000의 냉동 물류 창고에서 발생했다. 이 화재참사로 40명이 사망하고 9명이 부상당했다. 건물 지하에서 발포 작업 중이던 우레탄에 섞여 있던 시너와 냉매 가스가 터지면서 내부 벽면과 천장 모두가 우레탄폼 재질로 도배된 건물 전체로 퍼져 피해를 키웠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30일 오전 경찰과 소방당국, 국과수 등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 재해, 때와 장소만 바뀌어 되풀이해 일어나다

이들 사건들은 모두 <위키백과> 등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등장한다. 이천에서 유독 이런 화재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수도권 물류기지 역할을 하는 대표적인 지역이 용인과 이천 등이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에 등장하지 않는, 화재로 인한 산재사건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때와 장소, 그리고 피해자들만 바뀌었을 뿐 크고 작은 재난 형 산재사고는 되풀이된다.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해 일어난다는 것은 언론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앵무새처럼 말하는 ‘안전 불감증’ ‘작업자 부주의’ ‘가연성 소재 건물’ 등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아무리 화재의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보아야 소용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산업현장에서 벌어진 화재 사건을 비롯해 폭발사고, 질식사고, 타워크레인 전도 사고 등 수많은 사건·사고로 인해 매년 1천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귀중한 생명을 잃어왔다. 김용균과 같은 비정규직 내지는 하청업체 청년들이 죽음의 작업장으로 내몰렸다. 자식을 이런 위험 작업장에 내보내는 부모는 매일 노심초사하며 지낸다.

이런 유형의 대형 화재 참사를 막기 위해서 이제는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노동자 안전 교육이나 스티로폼과 같은 가연성 소재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더는 사람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해결의 열쇠다.

21대 국회,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막는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대형 화재 사건을 안타깝게, 그리고 분노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스러져가고 있음에도 참다운 교훈을 얻어 이를 막아내는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열정과 신뢰, 성실에만 더는 매달릴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정말 오랫동안 노동계, 전문가 등이 다양한 방법으로 길거리와 토론회 현장에서 목 놓아 외쳤지만 국회는 늘 외면했다. 국민이 180석을 안겨준 지금의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이 21대 국회에서 조성된다.

이제는 더 이상 코로나 경제 위기나 야당 핑계를 대서는 곤란하다. 물론 제도와 시스템을 바꾼다 해도 이를 운용하는 주체들이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무용지물이 되거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제도가 사고를 온전히 예방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 걸음 더 진보한 제도는 사고의 빈도와 규모는 분명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하루빨리 제정해야 할 이유는 이미 차고 넘친다. 이번 이천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서 빚어진 참사는 우리 사회에게 이 법을 만들라는 최후 경고이다. 더는 허망한 죽음과 죽임이 없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피해자인 노동자와 가해자인 기업 모두에게 좋은 제도이다.

노동자가 안전해야 사회가 안전하다. 노동자가 건강해야 기업이 건강하다. 기업이 활력을 찾고 성장한다. 이것이 선진국 형 안전 철학이자 기업 경영 철학이다. 생명을 존중하는 안전사회는 확고하고 뿌리 깊은 안전 의식과 더불어 좋은 제도가 함께할 때에만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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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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