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코로나 19 확진자가 27일에 100만 명이 넘었다. 세계 코로나 확진자 세 명 중 한 명이 미국인이다. 그리고 사망자 4명 중 1명은 미국인이다. 그런데 25일자 <워싱턴포스트>는 에일대학교의 연구를 인용하여 미국의 실제 코로나 사망자는 미국 정부 발표보다 두 배가 많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연구를 거칠게 대입하면 세계 코로나 사망자 두 명 중 한 명은 미국인이라는 말이 된다. 급기야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백악관 브리핑에서 표백제와 같은 살균제를 인체에 주입(injection)하여 코로나균을 퇴치하는 방안을 연구해보라고 연방 방역당국에 공식적으로 말하는 터무니없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하나인 미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미국은 왜 국제 문제의 해결자가 아니라 국제 문제의 큰 부분이 되었는가?
미국의 추락에 대해 여러 진단이 있겠지만 나는 미국의 군사주의가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 새로운 국제질서는 반군사주의를 토대로 서야 한다.
군사주의란 군사력에 주로 의지하여 국익을 추구하려는 신조이다. 전쟁은 국익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군사주의가 상대국을 군사력으로 협박하여 국익을 챙기려고 할 때 하는 말이 '모든 선택지가 책상 위에 있다'라는 문장이다.
문제는 군사주의의 모순이다. 미군의 구호처럼 '오늘 저녁에 당장 싸울 수 있다'는 고도의 준비태세를 항상 갖추는 데에 막대한 돈이 든다. 더구나 미국은 유일하게 전 지구 공간을 구분하여 각 구역 사령부(UCC)를 설치하는 나라이다. 미국이 코로나 문제국가로 추락한 것은 군사주의의 모순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 요구한 2021 회계년도 미 연방 정부 재량지출예산은 1만 4,850억 달러이다. 이 중 국방비가 9,890억 달러로66%를 차지한다. 2018년 기준 세계은행 통계에 의하면 미국 국방비는 중국,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프랑스, 러시아, 영국, 독일, 일본의 국방비를 합한 것과 같다.
미국의 군사주의는 미국 시민들의 행복과 코로나 대책에 쓸 돈을 탕진한다. 미국은 한국과 같은 전국민건강보험이 없다. 노동자의 약 절반은 직장에서 해고되면 의료보험 혜택을 잃는 신세이다. 미국 노동자는 유급 출산 육아 휴직(paid family leave)을 공민의 권리로 요구할 수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미국 군사주의는 내부의 비판을 덮어 주며 자신을 정당화할 장치가 필요하다. 가장 유용한 방법이 외부의 위협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세계보건기구(WHO) 예산지원을 중단하면서 중국에 너무 관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댄 것도 군사주의적 사고이다. 미국의 군사주의는 세계에 모순을 전가한다. 해외주둔비를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게 더 부담시키려고 한다. 미국이 자신이 도장을 찍은 주둔군지위협정(소파협정) 5조와 어긋나게 한국에게 주한미군주둔비 비용 5조원을 부담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터무니없는 비용 부담에 결연한 입장을 견지한 것은 탈군사주의 국제질서에 필요하고 도움이 크다.
군사주의는 인류에게 필요한 평화라는 공공재를 제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평화를 해치는 원인이다. 이는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세계 5대 군사 강국 육성으로’ 이룩하겠다는 사고방식도 군사주의에 포섭된 결과이다.
평화는 군사강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2018년 기준 세계은행 자료로 한국은 이미 세계에서 9번째로 많은 군사비를 쓰고 있다.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에 맞서 필사적으로 군비경쟁에 나설수록 한국의 안보 환경은 더 악화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기초가 된 1919년 3월 1일의 전국적 전민족적 항쟁에서 조선 사람들은 명확히 군사주의 국제질서를 꾸짖었다. 새로운 국제질서를 당당하게 요구하였다. 조선독립선언서는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가고 있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를 염원했다. 대한민국이 인류에 필요한 공공재를 제공하는 문명강국 모범국가로 성공하는 것은 역사적 의의가 크다.
코로나 대응으로 높아진 국민적 자부심은 '진단시약'과 'K-방역'을 넘어 탈군사주의 국제질서라는 목표로 나아갈 수 있다. 이 땅의 사람들은 1919년 3월 1일에, '진정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사이좋은 새 세상을 여는' 국제질서를 전민족적 항쟁을 통하여 제시하였다. 집단안보 구상을 이미 선언하였다. 3·1운동은 실패하지 않아 대한민국을 낳았다. 1919년에 대한민국 인민이 꿈꾼 문명강국을 완성할 때이다. 탈군사주의 문명국가를 국가의제로 명확히 할 때이다. 이것이 모범국가 대한민국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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