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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범죄' 수사와 보도가 놓치고 있는 것, 바로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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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성범죄' 수사와 보도가 놓치고 있는 것, 바로 피해자

[인터뷰]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문숙·도미 활동가

텔레그램 성착취 '박사방'의 조주빈을 시작으로 그 일당들이 속속 검거되고 있다. 수사기관의 브리핑이 연일 이어진다. 수사기관이 설명하면 언론은 받아 적는다.

사건은 많은 것을 응축하고 있다. 사건은 입체적인데 이를 바라보는 관점은 직선이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피해자의 관점이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재해석했을 때 궁극적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고 강조한다.

공대위는 텔레그램상 대규모 성착취 실태가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 지난 1월에 9개 운영단체(민변 여성인권위원회,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탁틴내일,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단체연합)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현재 피해자 지원과 변호인단 구성, 관련 법 제·개정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2일 <프레시안>이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공대위의 문숙(활동명.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와 도미(활동명.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를 만나 텔레그램 성착취 관련 수사와 보도가 놓치고 있는 '피해자의 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22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의 도미(왼쪽) 활동가와 문숙(오른쪽) 활동가가 '피해자의 관점'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텔레그램 성착취' 수사의 빠진 고리, '피해자의 목소리'

프레시안 : 텔레그램 성착취방의 운영자들이 속속 검거되고 있다. 이날(22일) '태평양원정대'의 운영자 이모 군을 시작으로 관련 피의자 재판이 이어진다. 경찰은 관전자들도 추적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떻게 지켜보고 있나.

도미 : 가해자 검거를 중심으로 수사가 이루어지다보니까 개별 피해자를 찾아 만나는 것에 소홀한 것 같다. 경찰이 피해자에게 접촉하는 상황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가해자가 어떤 혐의를 가지고 어떤 가해를 했는지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경찰은 '개별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입었는가'를 피해자의 관점으로 맥락화해 사건을 조사해야 한다. 가해자를 찾아내고 가해자만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가면 텔레그램 성착취가 어떤 성격이고 본질은 무엇이고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

경찰이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찾아내 당신이 고소인으로의 지위를 가지고 이렇게 사건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프레시안 :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고소해야 한다는 말인가.

문숙 : 그렇다. 고소하지 않은 피해자는 이 사건에서 참고인이다. 하지만 참고인으로 존재할 때와 고소 당사자로 존재할 때 피해자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크게 다르다. 가령 가해자가 진술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 사건은 어떤 식으로 언제 끝나고 가해자는 언제 송치되고 재판에 넘겨졌는지에 관한 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건 고소 당사자의 권리다. 피해자로만 남았을 경우, 고소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런 정보를 요청할 수 없다.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에게 통지할 의무도 없다. 피해자가 사건의 당사자임에도 사건 수사에서 배제된다.

피해자가 배제되고 소외될 때 공백이 발생한다는 게 문제다. 텔레그램 성착취는 새롭게 드러난 디지털성범죄다. 범죄의 실상은 종전의 성범죄와 다르다. 이 사건을 가해자의 서사로만 이해하게 되면 디지털성범죄가 가지는 피해 구조나 성격, 피해 양상 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 공백은 피해자만이 채울 수 있다. 피해자가 주체로 나서서 피해 내용을 이야기해야 공백이 메워진다.

프레시안 :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필연적으로 피해자가 드러나지 않나. 2차 가해 우려를 고려하면 피해자 신원 보호가 피해 회복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자칫 사건의 본질은 무시되고 피해자에게 관심이 집중될 수 있을 것 같다.

문숙 : 그게 경찰이 이야기하는 이유다. 그러나 피해자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만 위치시키는 것도 좋은 태도는 아니다.

피해자에게는 피해를 인식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피해자 스스로 나서서 이게 왜 문제였는지 이야기하는 건 힘들 수 있다. 그렇지만 외면하거나 안 이야기하는 방식, 소외되고 배제되는 형태로 있는 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피해자가 사건을 재해석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당사자로서 사건이 해결되어가는 과정에 서서 주도성을 가지는 것이 피해 회복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나아가 피해자가 사건의 중심이 될 때에야 성착취 구조를 없애기 위해 시민은, 언론은, 수사기관은, 그리고 법은 무엇을 해야 할지가 이야기될 수 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다.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피의자를 고소하도록 독려하되, 최소한 숨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도록 돕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공대위가 고민하는 부분이다.

▲문숙(활동명. 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프레시안(최형락)

가해자 처벌도 중요하지만...재발방지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해결 노력 필요

프레시안 : 이번 사건에 충격받은 여론은 엄중한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수사당국도 이 같은 여론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문숙 : 가해자 처벌은 매우 중요하다. 신상공개도 당연히 의미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의 처벌, 특히 신상공개는 이 범죄가 굉장히 심각하고 엄중한 범죄라는 걸 이야기하기 위한 수단이다. 법무부가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엄중하게 대처하겠다 한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도미 : 가해자 처벌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의 목소리는 양립해야 한다. 피해자의 이야기가 들려야 한다.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말 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이 말할 수 있는 법제도적인, 사회문화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할 때다.

프레시안 :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서 대중이 특히 충격받은 부분은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아동·청소년 피해자에만 우리 사회가 집중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도미 : 맞다. 수사기관이 이번 사건을 아청법 위반, 아청음란물 시각으로 집중하고 있다. 언론도 아동·청소년 피해만 부각한다. '피해자다움'을 상정하고 아동·청소년만 그에 들어맞는 '순수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피해자다움'이 적용되기 시작하면 피해자를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피해자들은 생각하게 된다. 내가 피해 요건, 피해자다움에 들어맞는가 검열한다. 그에 맞지 않으면 내 피해는 부정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숨게 된다. 피해자다움에 갇히지 않는 수사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텔레그램 성착취방의 구조를 보면 피해 여성들을 유인해 빠져나갈 수 없는 굴레에 갇히게 한다. 마치 인신매매, 성매매를 보는 것 같다. 성매매 문제가 쉽게 거론되지 않는 이유에 성매매 피해 여성을 범죄 당사자로 보는 시각이 있다.

도미 : 텔레그램 성착취 피해자를 보는 시각에도 그 같은 사고가 깔려 있다. '너 그런 덴지 모르고 갔어?', '왜 빠져나오지 못했어?', '강요할 때 그 방을 나왔어야지', '왜 그 사람이랑 연락 안 끊었어?', '협박을 받든 안 받든 니가 직접 찍은 거잖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이건 성매매, 성산업 종사 여성들을 비난하는 방식과 같다.

문숙 : 텔레그램 성착취는 성매매 문제와 맞닿아있다. 조직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조주빈 한 사람이 여성을 혐오해서 어느 날 갑자기 그런 방을 만들고 여성들을 유인하고 협박하고 착취한 게 아니다. 조직책이 있었고 명령하는 사람, 직접 강간하는 사람이 있고, 개인정보를 빼서 갖다 준 사람도 있었다. 구조가 설계됐다.

웹하드카르텔도 연상되는 대목이다. 웹하드카르텔에서는 영상물을 제작하는 사람이 있고 플랫폼을 제공하고 방관하는 사람이 있다. 범죄조직죄를 적용하면 이런 부분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도미(활동명. 한국여성민우회). ⓒ프레시안(최형락)

언론 취재·보도로 인한 2차 피해 발생하기도

프레시안 : 공대위에서 언론 모니터링에 많은 힘을 쏟는 걸로 알고 있다. 언론을 통한 2차 피해가 자주 일어나나.

문숙 : 공대위에서 언론 모니터링에 각별히 공들이고 있다. 피해자가 특정되거나 사건과 관련 없는 관심이 피해자에게 쏠리지 않게끔 각별한 유의가 필요하다. 언론의 피해자 취재 과정에서 2차 가해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언론은 파급력이 크다. 언론이 제시하는 시각으로 국민의 관점이 형성된다. 문제적이다.

어떤 피해자가 있었고 그 피해는 어떻게 일어났나, 그 피해는 어떤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했나,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면서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언론이 그런 부분에 좀 더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박사'가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보다 중요하다.

프레시안 : 성폭력 보도 관련 가이드라인이 있다. 잘 안 지켜지나.

도미 : 성폭력 보도에 관한 언론 가이드라인이 정말 많다. 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만든 것도 있고 전국언론노조에서 만든 것도 있다. 기자협회에서 만든 것도 있다. 원칙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이 원칙적인 내용조차 무시되는 상황을 많이 목격한다.

이번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서 조주빈이 "악마의 삶을 끝내줘서 고맙다"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가 그대로 보도됐다. 오히려 시민이 가해자의 말을 옮겨 쓰지 말아라, 언론이 왜 가해자의 스피커 노릇을 하느냐고 비판했다. 언론이 시민의 눈높이를 따라오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프레시안 : 앞서 디지털성폭력 수사 시 가해자 중심 관점이 아니라, 피해자 중심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 보도에도 피해자의 관점이 필요한가. 추상적인 것 같은데 '피해자가 드러나지 않는 보도'와 '피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보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문숙 : 언론은 피해자가 어떤 사람인가에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 직업 등의 신상정보를 특정하는 건 불필요하다.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난다. 반면 수사기관에서 수사할 때 피해자의 목소리, 피해자의 관점에서 피해 양상이 어떻게 되고 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는지 듣는 과정은 필요하다.

기준을 제시하자면 '이건 어떤 도움을 주는가' 생각하라는 거다. 핵심을 보고 본질을 보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닌가가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

결국 '여성 폭력'의 문제

프레시안 : 텔레그램 성착취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나.

도미 : 디지털 여성 폭력이다. 텔레그램은 익명의 공간이다. 여성 혐오적 발언이 여과 없이 난무하고 이 여성은 징벌당해 마땅하다는 식의 서사가 창궐한다. 서로의 폭력성을 고양하는 행위들이 온라인 공간이었기 때문에 더 극대화됐다.

텔레그램 성착취와 같은 디지털성범죄는 많은 여성이 일상에서 주변을 살피거나 의식하도록 만들었다. 일회성 피해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는 '밈'이 된다. '국산야동'의 'OO녀'로 호명된다. 디지털 파일이 삭제됐다 해도 정말 삭제됐는지 알 수 없다. 사람들에게 유포되고 그걸 막지 못해서 자살해도 유머로 소비된다. 그걸 피하려고 조심하면 일상이 무너진다. 결국 통제다.


문숙 : 폭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통제가 목적이고 그 기반은 권력차이다. 성차별적인 구조가 있어야 폭력이 발생한다. 본질은 맞닿아있다.

프레시안 : 공대위는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해 나갈 계획인가.

문숙 : 텔레그램 성착취는 많은 것이 응축된 하나의 덩어리다.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돼야 한다. 많은 여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와 정책, 교육이 문제 해결을 위해 병행돼야 한다. 공대위 입법 TF에서 관련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안을 구성해서 제안할 예정이다.

한발 더 나아가 '가해자 처벌'을 넘어서는 디지털성범죄와 성착취 구조, 여성 폭력의 다양한 양태들이 어떻게 본질적으로 연결됐는가에 관한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도 우리가 해야하는 역할이라 생각한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고 장자연 사건과 김학의 사건, 그리고 성매매 산업과 성착취 구조는 어떻게 관통하는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도미 : 성폭력 구도와 성매매라 부르는 상황들, 디지털성폭력이 어떤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이 무의미한 세상을 살고 있다. 기술적인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디지털성폭력을 성범죄의 틀에 포괄할 수 있는 사회문화, 법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성폭력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같이 고민해야 한다. <끝>

▲지난 3월 텔레그램성착취공동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 당시 공대위는 강력한 처벌과 함께 근본적인 해결을 촉구했다. 이날(22일) 인터뷰에서 공대위의 두 활동가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피해자 중심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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