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는 국가의 핏줄이다. 모든 길이 연결되어 있다. 이 길을 통해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화물이 이동한다. 돈이 흐른다. 정부가 공기업(한국도로공사)을 통해 도로를 직접 관리하는 까닭이다. 도로의 노동이 곧 국가의 일임은 명백하다.
고용 형태는 그렇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현금을 수납하고 하이패스 미납자를 확인하고, 미납자에게 독촉 전화를 하고, 하이패스 가입을 상담하고, 하이플러스 카드를 판매하고, 과태료를 부과하고, 과태료를 변경하고, 청소하고, 기타 민원 상담을 하는 톨게이트 노동자는 용역업체 소속이었다. 이 업체가 도로공사에 노동자를 파견했다. 이 노동자들은 출근하자마자 도로공사 정규직 과장이나 부장에게 전화하고, 보고하고, 그들의 지시를 직접 받았으나, 도로공사 소속은 아니었다.
그러다 도로공사가 그들더러 자회사로 가라고 했다. 법원이 도로공사더러 톨게이트 노동자는 사실상 도로공사 노동자니 직접 고용하라고 판결했음에도,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이 안 나왔다는 황당한 이유로 자회사 전환을 밀어붙였다. 자회사 전환을 찬성하지 않는 노동자는 모두 해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조용하던 이들이 그렇게 일어섰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어진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217일에 걸친 싸움이 일어났다.
이들은 마침내 지난 1월 17일, 전원 직접고용 약속을 공사로부터 받아냈다. 그들이 옳았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만 온전한 승리는 아니었다. 도로공사는 직접고용 약속 3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500명 가까운 이들의 일자리를 만들어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요금 수납원 직책도 유지되지 못했다. 절반의 승리라고 할 만하다. 이 싸움을 이어간 노동자들이 앞으로도 투쟁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히는 이유다.
신간 <우리가 옳다!>(이용덕 지음, 숨쉬는책공장 펴냄)는 ‘골리앗’ 도로공사와 싸움에서 이긴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이 싸움은 애초 희망을 보기 어려워 보였다.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내렸고, 도로공사는 그 가이드라인을 그대로 따라 자회사를 설립했다. 애초 청와대와 도로공사가 한 몸이었다. 노동자를 돕겠다며 약자들의 표를 받은 문재인 정부 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톨게이트 노동자를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제외할 명분이 마련된 상태에서 싸움이었다.
싸우는 노동자들도 ‘팔뚝질’에 익숙한 이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40~50대 여성 노동자였다. 저소득층이었다. 북한 이탈 주민, 장애인, 중국 동포 등 우리 사회 약자들이 많았다. 나쁜 손님들로부터 일상적으로 욕을 먹고, 성희롱을 당하고도 아무 소리도 못하던 투명인간들이었다.
그들이 힘을 모아 청와대로 향하고, 고공 농성에 나서고, 길거리 투쟁을 이어갔다. ‘나는 괜찮지만, 후세대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결기가 약자들을 한데 뭉치게 했다. 책은 한국의 노동 형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처한 고용 현실을 세세한 표와 더불어 자세히 설명한 데 더해, 이 싸움에 나선 이들의 이야기를 생생히 기록했다.
290여 페이지에 걸쳐 기록된 이야기의 주제는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옳다는 것이다. 한국은 과연 그런가. 숱한 약자들을 무자비하게 해고하려던 이강래 전 도로공사 사장을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원 선거에까지 내보냈다.
코로나19라는 거대 역병이 다가오면, 가장 크게 흔들리는 곳은 우리 사회 최하층 약자들의 삶이다. 그곳에 정의가 내려비치지 않는다면, 한국 사회 어디에서도 정의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옳다!>는 지금도 생존 투쟁의 한복판에 버려진 힘없는 약자들에게 용기를 주지만, 겉으로만 정의를 내세우고 뒤로는 약자들의 목부터 노리는 위선자들에게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새삼 알려주는 책이다. 물론 그들은 무엇이 옳은가를 이미 잊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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