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언뜻 보면 여당이 잘하고 야권이 잘못하여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정당 활동의 부실, 선거를 앞에 둔 이합집산, 공천 실수, 공약 부재, 위성정당 설립, 막말 파동, 선거전략의 잘못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패배의 원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제1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 특히 미래통합당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때문에 더 큰 손해를 보았다. 앞에 지적한 요인들은 사실 여당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선거제도가 준연동형으로 바뀌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여전히 승자독식의 문제점이 극대화되어 나타났다.
이 글에서는 각 정당이 수도권에서 받은 지지율과 얻은 의석수의 차이를 분석해보겠다. 분석대상을 수도권에 한정한 이유는 지지율과 의석수 사이의 큰 격차를 보다 극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 서울권역에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후보의 지역구 득표수를 분석함으로써 우리 선거제도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살펴보겠다.
잘못된 선거제도로 민심이 왜곡되고 있다
미리 결론부터 제시하면, 미래통합당은 선거제도 때문에 수도권에서 막대한 손해(지지율과 의석수의 불일치)를 보고 있어서 다음 21대 국회에서 준연동형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상황이다. 승자독식의 제도는 특히 제2당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현재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선거 분위기가 역전되면 그 피해는 그대로 더불어민주당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지역구 선거에서의 승자독식 현상은 독일의 기민당(CDU)과 사민당(SPD) 사이에서도 우리와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그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지지율과 의석수의 비율을 거의 같게 유지하고 있다. 2017년 연방총선에서 지역구 의석만을 비교하면(단순다수제), 기민당 231석과 사민당 59석으로 쏠림현상을 보였지만, 전체 의석에서는 246석 대 153석으로 각각 정당득표율을 회복했다(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지만 우리는 지역구에서 패배하면 지지율만큼 의석을 회복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미래통합당은 지난 19대 총선(2012년)에서 수도권에서 받은 지지율에 비해 24석이나 부족한 당선자를 내었고, 20대 총선(2016년)에서도 17석이나 손해를 보았다. 필자는 이런 결과를 분석하여 이미 2019년 6월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논의가 한창 진행될 때 연동형 선거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혹시 오해가 있을까 싶어 미리 밝혀 두는데, 나는 특정 정당의 당원도 아니고, 특정 정당의 지지자도 아니다. 다만 좀 더 공정한 선거제도가 도입되어 유권자의 의사가 각 정당의 의석수에 제대로 반영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우리 정치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선거제도는 결과적으로 모든 정당에 악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선거제도가 진보진영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주장이 많았다. 선거제도가 불공정했다는 뜻이다. 지금은 그때와 방향만 다를 뿐 똑같이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이렇게 불공정한 선거제도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특정 정당이 과다 또는 과소대표됨으로써 민심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또 정치권의 경쟁이 과도하게 극렬하게 된다. 10% 남짓 또는 불과 2~3% 차이로 승부가 갈리게 되기 때문에 서로 상대를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며 죽자 살자 덤빌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유권자에게 정치혐오를 불러일으켜 건전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헤치게 된다. 그러면서 어떻게 여야 간 협치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여야를 떠나 이를 바로 잡자는 것이다. 21대 국회에서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이러한 문제점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고, 우리 정치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과다 또는 과소대표되고 있는 증거
<표1-1>과 <1-2>는 이번 총선에서 각각 거대 양당과 의석수를 확보한 나머지 정당이 서울, 경기, 인천권역에서 받은 지지율과 그에 합당한 의석수는 몇 석인지를 알아보고, 이를 실제 얻은 의석수와 비교하여 지지율과 의석수의 차이를 분석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의 지지율을 합산했다.
각 당의 지지율은 실제보다 조금씩 높아지는데, 그 이유는 3% 미만 정당들의 득표율(약 11%)을 제외하고 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각 정당의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 약 45%, 미래통합당 약 35%, 정의당 약 12%, 국민의당 약 8%이다. 이 수치는 전국 득표율과도 비슷하며, 선거 전에 나타난 여론조사의 결과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에 유권자의 지지율에 따른 각 정당의 의석수에서는 큰 괴리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의 수도권 정당득표율(약 45%)에 따른 합당한 의석수는 64석인데, 수도권에서 실제 얻은 의석수는 113석으로 유권자의 지지율에 비해 49석이나 많았다. 또한 지역구 당선자에서 이미 지지율을 초과하는 의석수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선거제도 때문에 비례대표에서도 10석이나 가져갔다.
미래통합당의 지지율(약 35%)에 따른 합당한 의석수는 52석인데, 실제 얻은 의석수는 26석에 불과했다. 원래 받아야 하는 의석수의 절반밖에 얻지 못한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이렇게 부족한 의석은 비례대표를 통해 보충되는데, 선거제도가 잘못 설계되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미래통합당을 선의의 피해자로 보기는 힘들다. 자신이 1당이 되면 더욱 유리해진다고 보고 제대로 된 선거제도를 만드는 데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의당도 지지율과 비교해 12석, 국민의당도 11석을 손해 보았다.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 지지보다 과다대표되고 있고, 나머지 정당은 과소대표되고 있다.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했다면 수도권에서 미래통합당은 26석, 정의당은 12석, 국민의당은 11석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서울시 총선결과를 통해서 본 연동형의 필요성
<표2>는 서울시의 지역구 선거결과를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을 중심으로 살펴본 것이다. 전체 유권자 약 847만 명 중 약 577만 명이 투표에 참여했는데 그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49개 지역구에서 얻은 전체 득표수는 약 305만 표(55.6%)이고, 미래통합당은 244만 표(44.4%)다. 양당의 득표율은 앞의 <표1>의 서울권역 정당득표율보다 높은데, 그 이유는 지역구 투표에서는 유권자들이 사표 심리 때문에 주로 거대 양당만을 찍기 때문이다. 거대 양당이 아닌 다른 후보자를 선택한 투표수는 모두 합쳐도 29만 표(5%)에 불과했다.
서울특별시 각 지역구의 득표 수를 비교해보면 거대 양당 후보들의 득표 차이는 대략 10% 남짓이다. 그러면 의석수의 차이도 그 정도가 타당하다. 하지만 실제 의석수의 차이는 5배에 달한다. 지지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은 27석(55.6%), 미래통합당은 22석(44.4%)을 얻는 것이 합리적이다.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더불어민주당 41석(83.7%), 미래통합당은 8석(16.3%)이다.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은 55.6%의 지지를 받아 83.7%를 대표하고, 미래통합당은 44.4%의 지지를 받았음에도 16.3%만을 대표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가 공정하다고 생각되는가? 그렇지 않다. 이는 절대로 공정한 일이 아니다. 한쪽은 과대 대표되고, 다른 한쪽은 과소 대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서울의 민심이나 유권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없다. 이긴 쪽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렵고, 진 쪽은 승복이 쉽지 않다. 따라서 공정한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그 제도가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위한 선행조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의석수를 비슷하게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원정수를 늘리면 더욱 바람직하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상적 형태는 지역구 200석과 비례대표 200석으로 해서 총 400석으로 늘리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행정부의 권력이 너무 막강한 편이라 이를 견제할 입법부의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국회의원 개인의 권한은 클지 모르겠으나, 국회가 입법부로서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은 대단히 미흡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전체 의석을 400석으로 할 경우, 서울시(서울권역)의 의석수는 80석이 적당하다. 이 가운데 40석을 지역구로, 나머지 40석을 비례대표로 한다면, 선거에서 유권자의 지지율에 따른 의석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 서울이란 권역에서 설혹 지역구에서 아슬아슬하게 패배하더라도 유권자의 지지만큼은 다시 비례대표를 통해서 당선될 수가 있다. 이 경우 비례대표는 서울권역 지역구에 출마했던 후보들이다.
많은 사람이 '비례대표'에 대해 착각을 하고 있는데,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비례대표가 과거 병립형에서처럼 지역구 후보와 별도로 선정되지 않는다. 해당권역의 지역구 후보가 그대로 해당권역의 비례대표 후보가 된다. 이 비례대표의 순번은 서울권역 당원들의 비밀투표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일에서는 이 사항이 선거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이 경우 각 정당은 자신이 중요시하는 후보를 선순위에 올려 당선시킬 수 있다.
이런 방식을 적용했다면, 이번 종로 지역구에서 낙선한 황교안 후보도 당선이 가능했을 것이다. 자신의 당대표를 후순위로 두려는 정당이나 당원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신인보다 유명세를 가진 당 지도부나 중진 정치인에게 유리한 제도이다.
만약에 지난 20대 국회의 선거법 개정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를 조정하고, 위와 같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면 이번 총선의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이 아니라 과반의석도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여당의 지지율이 과반에 육박하고 있지만, 과반을 넘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위성정당을 설립하는 문제는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21대 국회는 선거법 개정의 절호의 기회
이제 정치권의 모든 경쟁은 2년 후의 대통령 선거에 집중될 것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정치환경이 지속하는 한,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지 우리 사회는 별반 달라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대통령이 바뀌어도 변화가 없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통령 선거에 몰방하는 것보다 여야가 합의하여 불합리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에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필자는 특정 정당을 좋아하거나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정당을 위해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민심이 제대로 반영된 국민의 대표로 국회를 구성해야만 국회에서의 논의가 정당성을 가지고 사회를 변화시켜 나아갈 힘을 갖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21대 국회에서는 미래통합당도 적극적으로 선거법 개정에 동참했으면 한다. 특히 수도권에 출마를 희망하는 정치인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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