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끝났다. 여당의 압승이자 야당의 참패로 판정이 났다. 코로나19 감염병이 대한민국 정치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총선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국민은 그 대신 코로나19 재난과 싸워온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를 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3년 가까이 일궈낸 일자리, 남북관계, 경제 살리기, 복지, 빈부격차 완화, 적폐 청산, 경제 성장 등 각종 부문의 성적표를 면밀히 살펴보면 이런 압승을 거둘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3년 성적표만 가지고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승리가 아니라 패배가 염려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여당의 4.15 총선 승리는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성적에 기댄 승리였다. 여당의 승리가 아니라 사사건건 코로나 대응에 발목을 잡아온 야당의 패배였다. 물론 여기에 야당의 공천 실패와 잇단 막말 등도 양념 구실을 했다.
국가의 기본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코로나 총선 결과가 확정된 16일은 세월호 참사 6주기를 맞는 날이다. 공교롭게도 선거일과 맞붙어 있어 유권자들로서는 6년 전 박근혜 정부의 어처구니없었던 당시 대응을 떠올리게끔 돼 있다. 잘 아시다시피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줄곧 작용했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감염병은 국민 생명과 직결돼 있는 재난이다. 문재인 정부는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열과 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반에는 실수도 없지 않았다. 대구·경북 지역의 대유행과 코로나19를 곧 잡을 수 있다는 섣부른 예단에 대한 비판과 마스크 대란, 그리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일부 고위 관료들의 부적절한 언행 등이 비난과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여당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방역의 승리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총리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등 재난 관리와 방역 최고 책임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웠다. 국민과 투명하게 소통하려 애썼다. 실수가 있으면 곧 바로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국민은 정직하고 성실한 방역 관계자들과 이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밤낮 없이 싸운 공무원, 의사, 간호사 등 보건의료인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대응에 대한 평가는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선진 유럽국가와 미국 등에서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절대적 관점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바라보던 국민은 이때부터 상대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 코로나19가 기세를 올릴수록 정부에 대한 신뢰와 감사는 더욱 굳어졌다.
그동안 미래통합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코로나19 유행 초기부터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 요구 등 집요하게 정부의 방역 정책에 딴죽을 걸어왔다. 하지만 한 순간에 무너졌다. 이들이 코로나19에만 매달리는 동안 다른 부문의 성과 미흡에 대한 중간 평가 프레임은 사라지고 말았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선거를 하루 앞두고 이번에 ‘코돌이들(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을 당선시키면 나라가 망한다는 식의 선거 메시지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이번 총선이 코로나19 선거가 확실함을 유권자에게 공언한 것이다. ‘코돌이’란 표현이 적절치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코돌이들’은 대거 당선됐다.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상대적 평가가 정치권력 지형 바꿔
코로나19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재난이다. 한 국가 안에서 재난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절대적 기준에 따라 평가하거나 과거 유사 재난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와 비교해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세계적 범 유행을 하는 팬데믹 감염병의 경우 어느 국가가 얼마나 잘 대응했는가하는 평가는 절대적 기준에 따르기보다는 비슷한 경제·의료 수준에 있는 국가의 대응과 비교하는 상대적 평가로 이루어진다.
현명한 유권자라면 코로나19 재난 관리에 대한 심판을 상대적으로 하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 유행했던 메르스(186명 감염, 38명 사망)와 2009년 대유행을 했던 신종플루(70만 명 감염 263명 명)와 코로나19를 견주게 된다. 선거 당일까지 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는 앞서 유행했던 두 감염병의 중간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이 정도로 코로나19의 확산과 피해를 최소화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이 보호받고 있다고 여긴 사람이 어디에 표를 던질지는 자명하다. 2백 명이 넘는, 적지 않은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오기는 했지만 세계 주요 국가, 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는 가장 방역을 잘 한 국가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총선이 코로나19 대응 중간 평가로 치르는 한 문재인 정권은 승리하게 돼 있었다.
코로나19 유행 속에 치른 한국의 선거 운영과 결과는 전 세계, 특히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선거로 대표자를 뽑는 국가들에 대해서는 한국의 방역 방식과 더불어 본받을 모범이 될 것이 분명하다. 신속한 진단 도구 준비와 대량 검사, 마스크 대란의 단기간 극복, 창발적인 승차 검사, 질서 있는 사회적 거리 두기에 이어 전국 규모의 총선을 훌륭히 치러냄으로써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하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한껏 올렸다.
코로나 유행 속 치른 한국 총선 결과, 세계 정치인 긴장시켜
올해 대선을 치러야 하는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그리고 유럽 주요 국가들에서는 정치 세력에 따라 한국의 코로나19 총선은 때론 벤치마킹 대상으로, 때론 자신들의 나라 유권자에게 불어 닥칠 정치적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시 말해 코로나19 대응을 잘 하고 있느냐 못하고 있느냐 또는 잘했느냐, 잘못했느냐 여부에 따라 정권 연장과 교체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총선은 끝났지만 코로나19 유행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앞에는 코로나 확산보다 더 심각한 재난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당들의 승패와 논공행상 또는 정치적 책임에 따른 진퇴, 대선을 앞둔 잠룡들의 꿈틀거림이 중요한 때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한 많은 인명 손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 가치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 앞에는 경제 위기라는 더 큰 재난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경제 위기가 몰고 올 대혼란이 어떠한지를 지난 1997년 국가부도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겪으면서 이미 뼛속 깊이 각인한 바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전 세계에 모범을 보여주었듯이 코로나19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서 더한 각오를 다져야 할 때이다.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이코노데믹 확산 방역에 국회 당장 나서야
코로나19는 전 세계에 잘못된 정보로 인한 혼란을 이야기하는 정보감염병(infodemic)에 이어 경제 위기를 초래하는 경제감염병(이코노데믹, econodemic)의 세계적 유행을 확산하고 있다. 여기서 이코노데믹은 ‘economy+epidemic’의 합성어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가 몰고 올 경제 위기라는 쓰나미급 후폭풍을 두려워하고 있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필자가 이코노데믹이란 말을 만들어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코로나19 이후를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이코노데믹 때문이다. 한번 무너진 경제는 회복이 쉽지 않고 오래 간다. 파탄 난 경제는 사회 전반에 심각한 주름살을 패이게 만든다. 한국 경제도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타격은 미국, 중국, 일본, 유럽국가 등 우리보다 다른 나라에서 더 심각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야가 힘을 모으라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21대 국회가 아니라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20대 국회에서 경제감염병의 확산과 그 피해를 막기 위한 모든 조치들에 나서야 한다. 4.15 총선 결과에 담긴 엄중한 민심은 분명 이를 담고 있다.
20대 국회가 그동안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참회를 담고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 국회는 언제 어디서나 민심을 먹고 살아야 한다. 코로나총선 결과가 확정된 날 새겨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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