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이버 공간의 전장에서 두 사람이 치열한 총격전 끝에 하나는 죽고 하나는 살아남았다. ID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데, 둘 중 하나는 중국인이고 하나는 한국인이다. 생사가 갈린 뒤, 조롱의 의미든 아니면 도발의 의미든 한국인 게이머는 중국 게이머에게 다음의 문장을 타이핑한다 : "TAIWAN NO.1!"
왜 "타이완 넘버원"이란 말인가. 한국의 인터넷 게임환경은 기본적으로는 상대에 대한 조롱과 소위 '패드립'이 기본으로 깔려 있는 곳이다. "아무것도 못하죠?" "응 아니야~" "어림도 없지~" 같은 밈(meme, 비유전적 문화 요소. 유전자가 아니라 모방 등에 의해 다음 세대로 전달됨)들은 아주 상당한 수준으로 순화된 것이라는 점을 반드시 적고 넘어가야겠다. 어쨌든 "타이완 넘버원"을 외치는 사람은 상대방에 게 심적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중국에서 1년 이상 거주했고 타이완의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한 필자는 "타이완 넘버원"을 처음 목격했을 때 정말 뜬금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구 13억에 세계 2위 경제의 중국에게 '도발'로 먹힐 수 있는 수준의 문장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일부 유튜버들이 애써 포장해도 중국 게이머들의 반응은 열렬하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주변의 중국 국적의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타이완 넘버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드냐고. 대체로는 비슷했다. 별 감흥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각을 안으로 돌려보아야 한다. 타이완 넘버원이라고 하면 중국인을 짜증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한국인의 머릿속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인들은 중국을, 그리고 타이완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양안관계(兩岸關係)라고 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냉정하게 가늠해보건데,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한 중국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한중수교 이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의 타이완에 대한 이해는 더더욱 낮다. 어쩌면 타이완을 "중국말을 쓰는 일본"이라고 말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상당히 세련된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포착하는 손쉬운 방법은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는 체계에 맞추어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쉽고 빠른 방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왜곡을 수반한다. 그러니까, 중국과 타이완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동원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남북관계라는 제로섬이었고, 부차적으로는 남북관계 혹은 분단체제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 내에서의 좌·우대립에 기반한 이분법적 사고였다. 한국 게이머의 도발전략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총선을 목전에 앞두고 여지없이 드러나지만, 한국의 '진영 프레임'은 승리에 목숨을 건다. 'Winner-take-it-all'(승자독식) 이기에 조급한 마음이 우스꽝스러운 비례 위성정당 홍보전략에 묻어난다. 존재 그자체로 정당성을 지니는 '우리'의 선을 긋고, 우리의 승리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 우리가 아닌 상대방은 반드시 '나쁜 놈'이고 흠결이 있으며, 그것은 아주 주요한 네거티브 전략으로 활용된다.
'빨갱이'와 '친일파'로 서로를 지목하며 다투어 온 이분법적 사고는, 한국인의 세계를 보는 눈을 흑백논리에 길들였다. 성평등주의로 번역되어야 할 페미니즘이 진영논리로 오인되는 이곳의 사정은 뿌리깊은 이분법에 기반하고 있다.
만약 코리안 게이머가 중국 게이머를 정말 약올리고 싶다면 좀 더 잘 알고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그게 다가 아니다. 사실, 국경을 넘어 게이머들이 상호 작용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던 굉장한 경험이다. 지정학적, 물리적, 언어적 한계를 넘어 교류를 가능하게 한 것이 월드와이드웹의 힘이었다. 비록 아직도 온라인상에서 국경이 유지되고, 레이시즘과 혐오의 횡행을 목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과 같은 희망과 가능성들도 실현되고 있다. '혐오'는 언제나 답이 될 수 없다. 상호이해의 증진, 혐오의 구조 타파. 이것이 앞으로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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