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내용을 돌아보자
모든 싸움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싸움도 있지만,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거나, 다수 시민의 삶을 바꾸는 좋은 싸움 역시 존재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벌이는 의료진의 싸움은 공익적 효과를 가져온다. 이런 싸움은 격렬한 만큼 기대와 경의를 품고 바라보게 된다. 반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또 발단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 격렬한 싸움도 있다. 사람들은 그러한 싸움을 이상한 싸움이라 부른다.
우리 정치 역시 많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것이 좋은 싸움인지 나쁜 싸움인지를 떠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최근의 싸움이 매우 격렬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러한 격렬함은 시민들의 일상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시민들은 광장과 광장 사이에서, 인터넷 청원과 댓글 속에서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격렬한 싸움이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진짜 싸움인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최근의 정치적 싸움으로 인해 삶이 나아졌다거나, 안정을 얻었다는 시민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경제적 삶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더 많다. 지금의 정치가 만들어 내는 싸움의 내용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좋은 싸움일까, 나쁜 싸움일까, 아니면 원인 모를 이상한 싸움일까?
역사가를 자처하는 정치인이 벌이는 싸움
싸움의 한 예로 먼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싸움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 지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구청장을 배출했고, 구의회에서도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러한 지역 정당을 이끄는 이가 지역위원장이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그는 현재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는 어떤 싸움에 주력하고 있을까? 그가 자신의 활동과 정견을 소개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유튜브 채널을 살펴보았다.
그의 유튜브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은 역사문제에 대한 강조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역사나 민주화 운동 시기의 역사에 대해 열심히 거론한다. 그는 자신을 ‘역사 전문 정치인’이라 소개하고 김구 선생과 같은 복장을 입고 등장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의 민주화 운동 경력을 강조하며 '감히 내 (민주화) 유공자 자격을 논하다니'와 같은 제목으로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역사를 주제로 한 이러한 영상들은 100편이 조금 넘는 전체 영상들 중 20편 가량이나 차지한다.
그의 유튜브에 드러나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상대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적대적 비난이다. 상대에 대한 비난을 주제로 한 영상은 역사 문제를 다룬 영상만큼 쉽게 발견되는데, 이 역시 전체 영상 중 20편 가량이나 차지한다. 또한 이러한 영상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조롱과 적대를 담은 모욕적 언어들이다. '자유한국당 월급이 아깝다', '황교안 대표는 관종', '북한보다 못한 자유한국당'과 같은 제목이나 문구가 자주 눈에 띈다.
반면,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는 영상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특징이다. 특히 시민들의 경제적 삶을 다루는 영상은 전체 영상 중 4~5편에 불과한데, 이는 역사 문제를 거론하거나 상대에 대한 비난에 할애했던 영상들의 수와 비교하면 매우 빈약하다.
그가 주력하는 싸움을 보며 정치적 싸움이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질 때 발생하는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다. 우선, 정치적 싸움이 종교전쟁처럼 선악의 구도로 형성 된다는 점이다, 또 애국 대 매국, 독재 대 민주와 같은 선악의 구도 속에서 정치적 경쟁 상대는 쉽게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되곤 한다. 정치적 경쟁 상대를 향한 적대적 규정은 더 나아가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동료 시민들마저 적대적으로 규정할 위험성을 안게 된다. 역사 전문 정치인이 만들어 내는 이 같은 싸움은 보수 진영의 '좌파 척결' 구호가 만드는 싸움만큼이나 나쁜 싸움으로 보인다.
이러한 싸움의 또 다른 특징은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배제 시킨다는 것이다. 역사 문제를 동원하는 싸움에서는 누가 더 역사적으로 정당한지를 주장하는데 몰두하게 된다. 시민들의 삶을 어떻게 좋게 만들겠다는 경쟁보다 왜 상대가 나쁜 세력인지 주장하는데 더 치중한다. 역사문제에서 정당성을 찾는 정치, 상대에 대한 격렬한 적대감, 시민들의 삶의 문제에 대한 외면은 같은 정치가 갖는 다른 단면일 뿐이다.
참신한 청년정치와 깨끗한 진보정치가 벌이는 싸움
지역에서 살펴본 또 한 가지 싸움의 예는 구의회에서 벌어진 싸움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지난 지방선거를 통해 정의당이 구의회에 진출했고, 민주당에서도 30대의 청년 구의원들이 생겨났다. 진보정당과 청년의원이 구의회에 진출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오히려 이들 사이에서 더 이상한 싸움이 벌어졌다.
싸움의 발단은 이렇다. 깨끗한 정치를 주창하며 출마했던 정의당 구의원은 당선 이후 구청의 업무 추진비 공개나 예산 낭비 등을 지적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리고 그는 의회 내에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싸우는 모습을 영상으로 편집하여 SNS에 공개하곤 했다. 그의 영상 속에서는 편집을 통해 날카로운 지적을 하는 무서운 초선의원과 이와는 반대로 말을 더듬고 답변도 잘 못하는 구청장의 모습이 대비되어 나타났다. 그러자 민주당에서는 정의당 의원의 지적을 합리적 문제 제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민주당의 청년의원들이 '우리 편' 구청장을 호위하며 나서기 시작했다. 민주당 청년의원들은 정의당 의원이 상임위원회에서 발언을 할 때마다 끼어들거나 꼬투리를 잡으며 방해를 했다. 이들 간에는 서로 언성을 높이며 대치하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이러한 싸움의 모습은 SNS를 통해 각자의 지지자들에게 호소되곤 했다. 이들의 싸움은 '의원의 발언 중에는 다른 의원의 발언을 금지'하자는 조례를 정의당 의원이 발의하며 다시 전개되었다. 결국 구의회의 본회의장에서 '성범죄자', '테러리스트'와 같은 인격적 모독까지 서로에게 던지며 갈등했고,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조례 역시 부결되었다.
이들의 싸움에도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싸움의 이유와 주제가 시민들의 삶과 거리가 먼 내용이라는 점이다.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정책적 이견이 경쟁하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감정적 응어리와 거친 언어가 증폭되며 표출된 이상한 싸움이었다. 내용 없는 이상한 싸움의 가장 큰 책임은 타 정당의 의견을 억압하려 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있다. 하지만 정의당 의원 역시 이 싸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을 깨끗한 정치인으로 차별화 시키고 상대를 격하시키며 이를 정치적 홍보 수단으로 삼았다. 또 그러한 싸움을 조례 발의로 연결하며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상대는 감정적으로 반발했고 의회 내 대화는 거칠어졌다. 격렬해진 대립 구도 속에서 정의당 의원은 의회 내에서 고립되고 다른 의제에 대한 영향력이 오히려 줄어드는 정치적 결과로 이어졌다.
이들의 싸움에 나타나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의회 안에서 일어났던 싸움이 의회 바깥에 있는 지지자들의 사나움을 동원하는데 활용 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유튜브나 SNS를 통해 자신들이 벌이는 싸움을 지지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상대 정치인이 얼마나 못났는지를 호소한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각자의 지지자들 역시 사나워진다. 결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선출한 대표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가벼운 싸움을 사회로 전이 시키고 말았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싸움의 두 주체였던 민주당과 정의당의 청년의원들 사이에 닮은 점이 오히려 많다는 점이다. 80년대 생 동년배로 같은 대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출신 뿐 아니라 선거 시기 주장 역시 비슷하다. 우선 지지를 호소하는 대상과 주장하는 의제가 큰 차이가 없다. 이들이 선거시기 지지를 호소한 대상은 구체적인 형태를 지진 시민집단이 아니었으며, 주로 청년, 어르신과 같은 인구집단을 공통적으로 호명했다. 주장했던 의제 역시 '1인가구 주거문제' 같이 언론을 통해 이미 공론화 된 의제를 비슷하게 거론하였다. 이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갈등이 아래로부터의 지지집단의 차이에 기반한 갈등이 아니며, 또 정치적 방향에 대한 이견 갈등도 아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기존 정치에 대한 개혁과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어떤 면에서 기존 정치와 다른지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들이 지지를 호소하는 인구집단이나 공약으로 내건 시설 건축 공약은 사실 기존의 정치인들 역시 공약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 정치의 교체를 주장하는 이유를 내용적 차별점에서 찾기 보다 '참신함'이나 '깨끗함'을 통해 정당성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기존의 구의회에서 평균 조례 발의 건수나 구정질의 횟수가 줄었다는 등의 빈약한 근거에 기반해 주장 한다. 결국 '참신함'과 '깨끗함'은 자기 지지집단의 부재나 자기 내용의 빈약함을 가리면서, 상대에 대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구호로 활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역사 문제에서 정당성을 찾고, 이를 상대에 대한 비난에 동원하는 이전 세대 정치인의 싸움과 닮아 있다.
시민이 처한 두 가지 상황
나쁜 싸움과 이상한 싸움 속에서 시민들은 두 가지 상황에 처한다. 먼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상대 정치인에 대한 과격한 분노와 우리 편 정치인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당원들이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SNS 활동은 점점 사나워지고, 또 사나워지도록 조장된다. 상대 당 정치인에 대해서는 비속어를 동반한 분노가 표출되고, 심지어 같은 당 내에서 이견을 말하는 정치인을 욕하기도 한다. 사나워진 분노와 맹목적 옹호 속에서는 합리적 토론이나 이견의 표명이 힘들어진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러한 종류의 싸움이 만드는 격렬함 속에서 노동 하는 시민들의 삶과 관련 된 의제가 발 놓을 곳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지방선거 이후 필자는 지역에서 일 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의 연구조사를 수행했다. 한 차례는 요식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였고, 또 한 차례는 중소규모 기업의 노동조합이었다. 일 하는 시민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성격을 지닌 두 연구 대상에게서 나타난 공통적 모습은 정치와의 거리감이었다.
요식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지지하는 정당을 갖지 않거나 밝히지 않았다(민주당 4.2%, 정의당 1.0%, 무응답 94.8%). 또한 정당 정치에 대한 관심도 거의 없었다(당원 가입 1.0%, 무응답 94.8%). 심지어 조사 당시 상황이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던 시기였지만, 지역의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도 최저임금을 받는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노동조합의 응답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노동조합들은 "아무 정당과 연계가 없다", "선거 때 찾아오기는 하지만 그 이후는 연락이 없다", "노동조합의 민원을 전달하기는 하지만 별 관심 없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격렬해진 정치적 싸움 속에서 시민들은 두 가지 선택에 처하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정당성이나 깨끗한 정치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상대를 적대화 하는 격렬함에 몸을 싣는 선택이 한 가지이다. 반면, 그러한 의제들을 자신들의 삶의 문제와는 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여기고 정치적 싸움의 바깥에 위치하는 것이 또 다른 한 가지 선택이다. 그리고 대부분 보통의 일 하는 시민들은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정치적 싸움은 격렬함에도 그 싸움은 이들의 삶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한국 정치가 벌였던 싸움의 특징들
사실 위에서 얘기한 지역정치 속 싸움이 갖는 특징은 한국 정치 전반에서 일어난 현상이기도 하다. 촛불시위 이후 한국 정치를 격렬함으로 몰아간 싸움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상대를 축출하기 위한 싸움이었다. '적폐청산', '평화냐 반평화냐', '친일 청산', '조국수호'와 같은 구호가 동원된 싸움 속에서 상대는 적폐, 반평화세력, 친일세력, 반개혁세력 같이 체제 밖 세력으로 규정 되었다. 이로 인해 체제 안에서 서로 다른 내용을 두고 싸우는 경쟁보다, 체제 밖으로 상대를 몰아내려는 적대적 전쟁이 벌어졌다.
둘째, 구호가 표방한 목적과는 반대의 결과를 만든 싸움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기의 자의적인 청와대 권력을 지적하며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를 외쳤지만,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지금의 청와대는 다시 자의적 권력이 되었다. 결국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는 진짜 적폐청산을 위해서 쓰였다기 보다는 상대를 규정하는데 쓰였다고 볼 수 있다. 평화냐 반평화냐라는 구호 역시 그렇다. 남북한 사이의 평화 정착은 시민들을 향한 호소에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정치 질서 에서 좋은 전략을 유지함으로써 달성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오히려 야당과의 장기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냐 반평화냐의 구호는 시민들을 향해 외쳐졌다. 결국 이 구호 역시 평화를 목적으로 외쳐졌다기 보다는 상대를 전쟁세력으로 규정하는데 쓰였다.
셋째, 시민들 사이의 적대감까지 동원한 싸움이었다. 최근 정치 싸움의 특징 중 하나는 상대 정치인에 대한 조롱이나 모욕을 수단으로 시민들을 동원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최근 정당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의 모습을 담아 유포하는 SNS영상 속에서 잘 드러난다. 지지자들에게 전달되는 이러한 영상 중 상당 부분은 상대 정당과 정치인을 향한 사이다 같은 호통을 담아내는데 주력한다. 상대 정치인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를 호소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적극적 지지를 유도 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서로 다른 정치적 의향을 가진 시민들 사이의 적대감 또한 증폭시킨다. 그러한 적대감 속에서 시민들 역시 어느 쪽이 광장에 더 많이 모이는가, 혹은 어느 쪽이 청와대 청원에 더 많이 참여하는가를 둘러싸고 경쟁을 벌이게 된다.
넷째, 보통 시민들의 경제적 삶을 개선하는 문제를 외면한 실체없는 싸움이라는 점이다. 적폐청산, 친일청산, 공수처 설치, 선거법 개정 등 그 간의 격렬했던 정치적 싸움 중 그 어디에서도 시민들의 삶을 다뤘던 싸움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내용없는 싸움들이 격렬해지면서 시민들의 경제적 삶과 관련된 주제는 정치로부터 밀려났다. 일 하는 시민들을 대표하여 정치에 진입하려는 노동조합 출신의 정치인들은 지금의 싸움 구도 속에서 노동의제를 얘기하더라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였다. 또한 그간의 싸움은 정치 진영 사이의 감정적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의견을 설득하는데 데 필요한 공감대와 접촉면은 줄어 들었고, 경제문제처럼 복잡한 대화와 타협을 필요로 하는 의제는 심도 깊게 논의하거나 타협되기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졌다.
한국 정치의 그 간의 싸움을 좋은 싸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싸움을 막는 나쁜 싸움이자, 결과가 공허한 이상한 싸움으로 보는 것은 이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싸움이 문제가 아니라 싸움의 내용이 문제다.
나쁜 싸움이 낳는 격렬함과 이상한 싸움이 만드는 결과의 공허함이 좋은 싸움의 등장을 막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무엇 때문일까? 여기에 대해서 여러 진단이 있을 수 있다. 상대를 적대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정치관과 이를 표현한 언어, 혹은 여론과 적극적 지지자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져 책임 있는 결정을 만들지 못하는 정당, 경제적 삶의 문제를 정치 의제로 만들 여력이 부족한 노동조합의 상황 등을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 진단에 앞서서 그 간의 싸움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는 것마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간의 정치적 싸움은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격렬했지만, 정작 우리의 삶에는 변화를 만들지 못한 나쁜 싸움이었다. 또 무엇이 발단이 되었고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알 수 없음에도 매우 격렬했던 이상한 싸움이기도 했다. 좋은 싸움은 늘려나가고, 나쁜 싸움은 줄여나가며, 이상한 싸움은 설명 될 필요가 있다. 선거를 앞둔 지금이야말로 그 간의 정치적 싸움이 무엇을 둘러싼 싸움이었는지 규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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