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건강 염려증
아내는 무척이나 예민한 사람이다. 병에 걸리거나 몸을 다치는 일에 특히 더 그렇다. 연애 시절엔 잘못 느꼈는데, 결혼 후 함께 살아보니 조금이라도 아프거나 다치면 곧장 약국이나 병원으로 달려간다. 아침에 내가 크게 재채기라도 한 번 할라치면 당장 창문 닫고 옷 두툼히 입고 병원 가보란다. 그러다 정말 감기라도 걸려 골골대면 불 같이 화를 낸다. 아마도 압권은 담배를 끊지 못해 법원까지 갔던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한 날 아내는 나뿐 아니라 나와 늘 함께 지내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으라고 했다. 궁지에 몰린 나는 마지못해 그러마고 했다. 아내는 담배 피다 걸리면 이혼이라고 위협했다. 알았다고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달 후엔가 가정 법원으로 끌려가 이혼 직전까지 갔다.
그런 아내에게 전염병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체력도 약한데다 방학 때부터 아이들 돌보느라 진을 뺀 아내에게 중국발 코로나 확산과 두 아들의 개학 연기는 말 그대로 재난과도 같은 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집안일과 육아 스트레스를 죄다 남편에게 풀었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번엔 정부로 화살이 돌아갔다. 아내는 코로나 바이러스 발견 초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와 대통령을 나무라기 시작했고, 그 '짜파구리' 먹던 날 대통령의 웃는 얼굴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직후 코로나 확진자가 대거 발견되자 처음의 정부 비판은 비난을 넘어 분노로 나아갔다. 거의 날마다 코로나 대응과 마스크 보급에서 보인 정부 실책에 관한 보도들을 수십 개씩 내게 톡으로 보내며, 지금 대통령과 정부는 어느 나라 대통령, 어느 나라 정부냐며 독설에 가까운 비판을 쏟아냈다. 고백컨대 이번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참고삼아 말하면, 아내는 그 나이 또래 사람들 다수가 그렇듯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지지했고 지난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다. 그 열정이 유별나 집회 참가를 꺼리고 투표하기도 싫어했던 나까지 붙들고 광화문으로, 투표장으로 데려갔던 걸 생각해보면, 이 정부에 꽤나 큰 애정을 갖고 있던 사람으로 봐도 좋겠다. 그런 아내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100명을 넘은 날, 내게 죽음에 대해 물어왔다. 대통령은 코로나로 세상을 뜬 사람들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의 죽음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기는 어려운 걸까? 그러면서 내게 청와대 홈페이지를 보여주었다.
청와대 홈페이지: 드러나지 않는 책임 회피
3월 22일 오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대통령이 마스크 5부제 시행에 참여한 약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팝업 창이 떠 있었다. 당연한 것처럼 보였고, 나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생하는 약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팝업 창을 닫은 후 온전히 드러난 메인 화면을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 홈페이지는 그래프와 표로 가득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일일 확진자/완치자 추이'와 '누적 완치자/치료 중 환자 추이'를 보여주는 두 개의 그래프였다. 왼편 그래프에서 일일 확진자는 2월말부터 3월 중순까지 급격히 줄어든 후 3월 21일 현재까지 낮은 수치를 유지하고, 일일 완치자 수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었다. 오른편 그래프에서도 치료 중 환자 수가 3월 중순까지 크게 늘어난 후 줄어들지 않는 동안, 누적 완치자 수는 확연히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래프 아래 표들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왼쪽 첫 번째 표를 보면, 검사 건수가 일본은 물론 사망자 수가 가장 많다는 이탈리아보다 많은 반면, 확진율은 거꾸로 이탈리아나 일본보다 낮았다. 다음으로 발생 특성을 밝힌 표에서는 집단 발생 현황이 80%를 넘고, 그 중 신천지와 관련된 비율이 57.2%임을 큰 글씨체로 보여주었다. 그 다음 지역별 현황이 나와 있고, 마지막 오른쪽 끝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사망률, 사망자 수와 함께 그보다 더 큰 글씨체로 주요 발생국 평균 사망률이 제시되어 있었다.
내가 괜한 편견에 사로잡혀 삐뚤게만 본 것일까? 청와대 홈페이지의 그림과 수치 모두는 코로나19에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으며, 그 실적 또한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우수하고, 감염자의 과반수 이상은 신천지와 관련되어 있음을 알리는데 초점을 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대통령 비서실이라는 청와대 홈페이지 전면에 왜 이런 그래프와 표가 있어야 하는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것은 누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다른 나라 대통령실, 총리실 홈페이지도 이런 내용들로 국민을 안심시키는지 궁금해 미국 백악관, 영국 총리실 홈페이지를 찾아가봤다. 자기 자랑이 격하기로 소문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홈페이지도 이런 내용들로 채워져 있을까? 트럼프만큼은 아니지만 포퓰리스트 기질을 숨기지 않는 보리스 존슨 총리실의 홈페이지는 또 어떨까? 놀랍게도 이들 홈페이지는 한국과 매우 달랐다.


백악관 홈페이지 화면 상단에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방역 대책을 책임진 인사들 사진과 함께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한 자료, 최신 정보, 알아둬야 할 내용으로 들어가는 아이콘이 있었다. 바로 아래 왼편에는 국가 긴급 상황을 선포하는 대통령 담화문이, 오른편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해 대통령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보였다. 그 다음 아래 칸에는 맥시코와 미국 간 여행을 제한한다는 백악관 공식 트윗과 “어떤 것도 우리의 길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뉴스 레터가 있었다. 잠시 후에 다루겠지만, 확진자 전국 분포 같은 통계 수치는 <코로나 바이러스 자료> 아이콘을 누른 후에야 찾을 수 있었다.
영국 총리실 홈페이지도 다르지 않았다. 사진 이미지가 하나도 없어 황량함마저 느껴지는 홈페이지 한 가운데는 "총리가 영국 정부의 리더이며, 정부 정책과 결정에 대해 궁극적인 책임을 진다"는 책임에 관한 내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다음 칸에는 현재 총리가 보리스 존슨임을 알리는 내용이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된 내용은 맨 위 빨간색 칸의 <코로나 바이러스: 행동 수칙> 아이콘과 맨 아래 총리 담화문 두 개가 다였다. 이 곳 역시 적어도 첫 화면에서는 확진자에 관한 통계 수치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영국이나 미국 정부 수장의 홈페이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코로나 관련 통계가 왜 한국에서는 전면에 부각되어 있을까? 청와대 홈페이지에 나와 있지 않은 대만은 코로나 발견 초기 중국인 입국 금지와 마스크 수출 금지 같은 적극적 조치로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혹여 대통령 비서실이 대만과 같이 대응하지 못한 책임과 그에 대한 비난을 회피하려 한 것은 아닐까?
정부 기관 홈페이지: 드러나지 않은 권력 관계
홈페이지 내용이 책임과 비난 회피의 방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섣부른 판단으로 정부의 노력을 폄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우리나라는 코로나 사태가 한참 진행 중에 있고, 미국이나 영국은 이제 시작 단계라 그런 것은 아닐까? 청와대의 그림과 수치가 시민들에게 안도감을 주며 정부에 대한 믿음과 함께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내기 위함은 아닐까? 지금 내가 아내 때문에 정부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것은 아닐까?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10년 넘게 공무원으로 일하며 미국과 영국도 가본 적 있는 친구에게 청와대와 백악관, 영국 총리실 홈페이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친구의 답이 더 놀라웠다. "내가 아는 한 한국 공공기관 홈페이지는 실무자가 관리자(상급자)한테 보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영미권 홈페이지는 이용자가 화면에 있는 서비스를 선택해 관련 정보를 얻도록 하는 타일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음"
그러고 보니 청와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행자부 홈페이지도,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도 청와대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모두 유사한 표와 그래프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이지 그들 수치와 그림은 시민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관리자가 보기에 적합한 내용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지나치게 냉소적인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웠던 공무원 친구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다른 나라 홈페이지와 우리나라 것을 비교해봤다.


영국 총리실 홈페이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행동 수칙> 아이콘을 클릭해 들어가면, 코로나 관련 내용만 다루는 홈페이지가 나온다. 여기서 큰 제목의 행동 수칙 바로 아래 "집에 머물라"는 말과 함께 구체적으로 "음식, 건강, 필수 업무를 위해서만 밖에 나가고, 다른 사람과 2m 이상 떨어지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손을 씻으라"는 지침들이 있다. 그 아래로 담화문 아이콘들이 있고, 맨 아래에는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 고용 및 금융 지원, 휴학·교육·보육 등이 죽 나열되어 있다. 확진자 수와 전국 분포를 알려주는 자료는 맨 마지막 영국 코로나 바이러스 사례를 클릭해 들어가야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코로나 관련 아이콘을 클릭해 들어가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홈페이지가 나온다. 여기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당신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과 <당신이 아프다고 생각한다면>이라는 두 아이콘이다. 그 다음 '당신이 알 필요가 있는 것들'이라는 제목 아래 증상, 노령자와 질병, 가족을 위한 준비가 나와 있고, 맨 아래 전국적인 확진자 분포를 보여주는 그림이 있다.
미국이 연방제 국가임을 감안해 실제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주정부 홈페이지도 들어가 봤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확진자가 많이 나타났을 뿐 아니라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대책 실행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뉴욕주 홈페이지를 살펴봤다. 뉴욕주 역시 다른 홈페이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첫 화면 전면부터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뉴욕주 병원 수용력 증가"에 관한 주지사 담화문이 크게 나와 있었다. <코로나19 업데이트> 아이콘을 클릭해 들어가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뉴욕주 잠시 멈춤이라는 제목이 나오고, 그 아래 "모든 비핵심 분야 노동자들은 집에서 근무하고, 모든 사람들은 공공 장소에서 다른 사람과 6피트 이상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지침이 나와 있다. 다시 그 아래 뉴욕주의 코로나 관련 10대 정책과 핵심 업무를 설명하는 아이콘이 있다. 뉴욕주 내 코로나 확진자 분포를 알리는 자료는 <당신이 알아두어야 할 것들>과 핵심 서비스 안내, 유료 병가, 시민 협력 방법 등을 소개한 다음 거의 맨 마지막에 <확진자 사례 보기>라는 아이콘을 클릭하고 들어가야 볼 수 있다.


그에 반해 한국 홈페이지는 환자 현황과 시도별 확진자 현황이 전면에 크게 제시되어 있고, 오른쪽 아래편에 작게 '공적마스크 일일 공급 현황', '선별진료소 및 국민안심병원 찾기', '대상별 피해자 지원 정책'이 놓여 있다. 물론 3월 23일까지 보이지 않던 주홍색 <공지사항 바로가기>를 클릭하면 ‘사회적 거리 두기’ 등에 관한 지침을 알기 쉽게 소개한 카드 뉴스, 스토리툰, 이미지, 포스터 등을 찾을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위 <바로알기>, <홍보자료&FAQ>, <피해자지원정책> 등의 아이콘을 클릭해서 나오는 내용들을 보면 일반 시민들을 위한 안내 사항이라기보다 공무원들을 위한 회의 자료 내지 보고 자료라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코로나 사태와 같은 국가적 재난 속에 질변관리본부를 비롯한 많은 공무원들이 시민들의 건강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폄훼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지금도 확진자들 동선이나 물리적 거리두기를 위한 행동 지침이 문자 메시지를 통해 연일 제공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살펴본 홈페이지만큼은 시민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하기보다 정부 관리자가 전체 코로나 피해 상황이 어떻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파악하거나 그런 실적을 홍보하는데 적합한 내용들로 보였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이 희귀한 전염병에 대처하는 데서 미처 깨닫지 못한 국가 주도, 관료 중심의 정책 집행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책임 있는 정치만이 위기를 낭비하지 않는다
사실 아내가 청와대 홈페이지를 보여준 까닭은 그 한쪽 귀퉁이에 숫자로 나와 있는 사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한 사회의 도덕성은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는 것 아니냐며, 지금껏 사망한 사람들은 생계에 바빠 마스크 구하기도 쉽지 않고 이미 걸린 병이나 노환으로 자기 한 몸 챙기기도 어려운 사람들 아니냐고 물었다. 그런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임종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경제 살리기도 좋고 영세 자영업자와 프리랜서 등 취약 계층 돕기도 중요하겠지만, 대통령이 그들 사망자와 가족에 대해 어떤 조문도 위로도 표하지 않는 것이 몹시나 서운하다는 뜻이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사망자가 많지 않은 것은 안타깝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코로나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두고 정부만 탓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지금과 같은 위기의 규모와 심각성을 감안하면, 정부가 아무런 실책도 없이 모든 면에서 효과적인 대책을 마련해 신속히 집행하기는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아내의 인색한 평가와 달리 현 정부가 잘한 일도 적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지난 메르스 사태와 세월호 사건을 통해 재난 대응 시스템을 잘 정비한 측면도 있고, 그런 경험을 통해 재난 대처법을 숙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아내와 같은) 시민들이 기여한 바도 크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 사례와 비교를 통해, 특정 집단의 부주의한 행태를 부각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대응 실적 우위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같은 맥락에서 일부 대통령 지지자들이 지난 메르스 사태와의 비교를 통해 현 정부가 지난 정부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올바르지 않다. 야당의 비판과 일부 언론의 보도가 지나쳐서 그에 대한 반박으로 그런 자료를 제시했다면 더더욱 수긍하기 어렵다. 우리는 지난 세월호 사건에서 정부가 자기 잘못을 회피하며 그 책임을 선장과 선주 등에게 돌리는 듯 했던 태도를 이미 지켜본 바 있다. 야당과 언론의 비판이 지나치다고 느꼈던 정부는 어떻게든 보도 방향을 바꾸려 했고, 그들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며 함께 대안을 모색하지도 않았다.
아내가 나무랄 때마다 나는 다른 집 남편들 얘기로 대꾸하곤 했다. 다른 집 남자들은 화장실 청소도 잘 안 한다더라, 담배도 마음껏 피더라. 그러면 아내는 그렇게 꼭 좋지 못한 행실을 보이는 남편들과 비교하고 싶냐고, 그렇게 나쁜 방향으로 가고 싶냐고 정색을 하며 더 크게 나무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 말이 틀린 경우는 없다.
위기가 닥치면 피해가 발생하고, 피해가 생기면 슬픔이 따르고, 슬픔이 지나가면 성찰의 시간이 찾아온다. 공동체가 큰 피해를 입으면 희생양을 찾는 경우가 많다. 위기와 혼란의 시기에는 보다 더 과격한 레토릭과 보다 더 파격적인 정책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자 하는 정치인들도 많다. 그러나 위기는 또한 우리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반추해보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지금과 같이 양극화된 진영 간 대립의 정치, 국가 관료에 의존하는 정치, 무책임이 난무하는 정치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공동체의 진정한 구성원으로 대우하기 어렵다는 사실일 것이다.
미국 정치인 가운데 피오렐로 라과디아(Fiorello La Guardia)라는 사람이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뉴욕 시장으로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민주당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 뉴욕에는 이 사람 이름을 딴 공항도 있다. 그 라과디아가 했던 말들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센트럴파크에 참새 한 마리가 죽을 때조차도 나는 책임감을 느낀다"(If a sparrow dies in Central Park, I feel Responsible.)
코로나 위기 가운데서도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로 바쁘다. 민주주의는 참여(participation)와 대표(representation)와 책임(accountability)의 원리로 작동하는 정치체제라고들 한다. 많은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선량한 대표를 뽑는 것도 좋지만, 요즘 같아선 사태를 설명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정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공동체가 대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가감 없이 밝히고, 그에 대한 자기 대안을 분명하게 말하며, 그 정책 실행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고 설명하는 정치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래야만 위기를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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